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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선재 업고 튀어’ 우리가 사랑한 모든 아이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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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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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일 중 뭐가 더 고마울까? 흔히 간과하는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드라마가 <선재 업고 튀어>다. 이 드라마에는 고맙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이 세상에 존재해줘서 고맙다… 청춘 로코에서 이토록 비장하고 절절한 감정 표현이 등장하는 건, 이 드라마의 연애가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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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임솔(김혜윤)은 고교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병원에서 죽음을 떠올리던 그는 우연히 라디오에 출연한 신인 아이돌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류선재(변우석)의 말에 솔은 심경 변화를 일으킨다. 15년 후, 서른네 살이 된 솔은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산다. 선재는 그의 ‘최애’가 되었다. 과거 ‘스타’가 별세계에 존재하듯 멋지기만 한 존재였다면, 오늘날의 ‘최애’는 팬들이 스스로 키우고 지켜내야 할 미완의 존재다. 솔은 자신의 최애를 위해 굿즈도 사고 콘서트도 간다. 선재의 이름이 들어간 머리띠를 두르고 동네방네 돌아다녀도 부끄럽지 않다. 휠체어 때문에 인턴 면접에 탈락해도, 그 면접 때문에 콘서트장 입장을 못해도, 솔은 웃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웃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살기로 결정한 사람처럼. 반면 선재의 현실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는 콘서트장에서 그룹 탈퇴를 선언하더니 그날 밤 갑자기 빌딩에서 추락사한다. 언론은 우울증 때문이라 발표한다. 슬퍼하던 솔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2008년으로 타임 슬립 한다. 솔이 아직 하반신을 다치기 전, 선재가 아이돌이 아니라 옆 학교 수영 유망주인 시기다. 솔은 최애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에게 돌진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유치함은 단점이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대중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구현할수록 쾌감이 증폭되는 장르다. 팬이 ‘최애’와 사적 관계로 발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유치한 판타지고, 이 드라마는 그것을 내숭 떨며 심각하게 풀어갈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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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소녀 같은 현실성에 넓은 연기 폭을 겸비한 김혜윤은 이 소재에 시청자의 이입을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배우처럼 보인다. 밝게 고조된 감정선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는 그의 연기가 드라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의 또 다른, 그리고 어쩌면 가장 큰 매력은 이 드라마가 만인의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극 초반 타임 슬립 한 임솔이 시청자에게 해방감을 줄 만큼 시원하게 직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선재를 한동네 사는 또래가 아니라 ‘최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돌 팬덤은 자주 유사 연애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최애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진짜 연애가 따를 수 없는 확신과 자유로움이 있고, 때로는 그 자체가 ‘덕질’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능성과 모호함이 제거된 이 관계에서는 재거나 따질 것 없이 마음껏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 애정의 방식이 추종, 우정, 보호, 때로 모성애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지만 요는 각자의 스타일로 정체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과하여 암묵적 전제인 ‘가능성의 결여’를 부인하거나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대상을 통제하려 들면 문제가 되지만 대개의 팬들은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대상이 거기 존재하는 목적인 인기, 성공, 일 따위를 돕는 길이고, 이 달콤한 애정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반 연애 관계에서처럼 상대방을 독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기쁘겠지만 그게 드라마로나 소화될 판타지임을 충분히 이해하는 팬들을 위해 섬세하게 고안된 선물이 바로 <선재 업고 튀어>다. 이런 유형의 감정이 삶의 활력이 될 뿐 아니라 궁극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이 드라마는 이야기하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 1화, 최애의 우울증이니 자살이니 하는 소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솔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사건이 있다. 우리가 사랑했으나 지켜주지 못했던 연예인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솔이 타임 슬립 해서 최애의 비극을 막을 기회를 얻게 된다는 상상이 더욱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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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솔은 선재 옆에 붙어서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걸로 문제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솔의 최선은 그게 아니다. 2023년에도, 2008년에도, 최애를 사랑할 때도, 지켜주려 할 때도, 솔은 그 감정과 행위의 주체다. 반면 선재는 객체다. 많은 연예인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삶의 통제권을 상실하는 대목에서 발생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는 건 물론 달콤한 경험이지만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대상에게서 화답을 받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아니다. 하필 선재가 사랑했으나 사고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던 솔이 타임 슬립이라는 행운에 당첨된 것은 그래서 필연이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솔이 선재에게서 얻은 삶의 의미, 즉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조력하는 즐거움을 선재에게 돌려줌으로써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완성되는 것이다.



일방이든 쌍방이든 인간은 사랑이라는 걸 하도록 생겨먹은 동물이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할애할 수 없어서 생겨난 게 아이돌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정작 그 아이돌에게도 건강한 사랑의 주체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전제 위에 ‘그 상대가 나였으면 좋겠네’라는 팬들의 욕망을 투사한 이야기다. 변우석처럼 생긴 남자의 첫사랑이 될 일도 없고 300만원 주고 산 최애의 소장품이 타임머신일 일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이 드라마는 훌륭한 길티 플레저가 될 것이다.


https://www.vogue.co.kr/?p=47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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