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
김연수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초반. 내가 사는 김천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시민축제의 일환으로 매계 백일장이라는 게 매계 조위 선생의 유택이 있는 봉계 지역에서 열린다. 학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리기 전에 글짓기 대회를 개최해서 백일장에 참가할 학교 대표들을 선발한다. 그런데 그 날은 조회 시간에 들어온 선생님이 즉흥적으로 백일장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백일장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슴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동안 선생님들의 보수적인 문학관에 막혀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내 실험적 문학이 드디어 빛을 발할 기회가 왔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백일장에 나가면 하루 수업을 빼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손을 든 것이다. 누구보다도 빨리. 왜냐하면 인생은 타이밍이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백일장이라는 것에 참가하게 됐다. 난생처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대략 예측해보자면) 내 생애 마지막으로. 그 날의 글감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내가 기억한다면 나는 진짜 천재였겠지. 글감 따위야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백일장 참가 목적이 하루 수업을 빼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빛의 속도로 글을 쓰고(그때나 지금이나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건 마찬가지여서 나는 초속필이다)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놀기 시작했다. 봉계의 조위 선생 유택 부근은 우리가 자주 소풍 가던 곳이기도 했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뛰어놀 만했다.
한창 놀다 보니 시상이 있다고 해서 다들 한 곳에 모였다. 단상에서는 낮은 상의 수상자부터 이름을 불렀다. 백일장이라는 게 학생들을 격려하는 상이다 보니 수상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간 학생들도 심심찮게 호명돼 앞으로 나가는 걸 보노라니 비록 첫 참가이긴 하지만, 은근히 나도 기대되는 바가 생겼다.
차하니 차상이니를 거쳐 장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나오면 표정을 어떻게 할까,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장원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이제 남은 상은 도지사가 주는 상인 대상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단상에서 사회자가 말했다.
"대상은..."
그 이름을 지금 내가 기억하면 정말이지 천재가 아닐 수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은 그날의 대상은 절대로 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루 수업을 빼먹는다는 건 참으로 달콤한 일이다. 하지만 수업을 빼먹으면서 상까지 받을 수 있다면 더욱 달콤할 것이다. 그게 도지사 상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다음에는 열심히 갈고 닦아 반드시 대상을 타서 매년 가을이면 공식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그런 초등학생이 되자! 파이팅!'
그런 생각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는데, 그냥 하루 수업을 빼먹으려고 나간 것일 뿐이었는데, 돌아오는데 며칠 동안 그런 기분으로 밖을 쏘다닌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더러워진 기분은 자기만 당할 수 없다는 듯이 내 생각을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글을 못 쓰나 보다'라는 쪽으로 이끌었다. 너만 더러워지면 그만 아니냐고, 내 생각은 반발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기분이 더러워지니까 생각도 꼬질해졌다. '그래, 나 같은 게 무슨 글짓기 상을 받겠어.' 꼬질꼬질한 생각들은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백일장이 열릴 때면 반에서 먼저 글짓기를 시켰다. 글을 쓰려고 원고지를 바라보면, 칸칸이 그날의 더러워진 기분과 꼬질꼬질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글을 쓰려고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고 생각이 꼬질꼬질해졌다. 어차피 상도 못 받잖아. 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넌 재능이 없어. 일찌감치 딴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무엇을 쓰려고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지고 생각이 꼬질해지는 상태로 몇 년이 지나고 나니까 인생을 선용하기 위해서라도 글 같은 걸 써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다른 대안을 마련했다.
내게 대안이 된 건 수학이었다. 글쓰기를 못한다면 수학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혼자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수학에 취미를 붙인 것이다. 노력하면 실력은 늘게 돼 있다. 실력이 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생각은 산뜻해진다. 인간은 역시 파블로프의 개인가? 점점 나는 수학을 좋아하고 국어를 싫어하게 됐다.
인간은 파블로프의 개도 되지 못한다.
파블로프의 개는 어쨌든 종이 울리면 먹는다. 종이 울린다. 개는 먹는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설사 종이 울린대도 기분이 더러워지거나 생각이 꼬질해지면 도저히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우린 개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개가 아니다. 사실은 개보다 못한 것이다, 그건. 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알아낸 법칙에 따르면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 다섯 배는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예컨대 ‘너는 못생겼어’라는 말을 한 번 들었다면, ‘너는 잘 생겼어’라고 다섯 번 이상 들어야만 마음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부정편향성은 우리가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치자. 친구들과 나는 며칠 굶주린 채로 황무지를 헤맨 까닭에 여차하면 서로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판국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까 못생기고 매사에 비관적이고 비뚤어진 내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 눈치다. 해서 빨리 먹을 것을 찾아야만 한다. 바로 그 때 정말 잘생기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사랑만 받고 자란, 대략 이름이 '쭝혀기' 정도 되는 내 친구가 주변을 살펴보고 오더니 거기서 십 분 정도만 가면 사과와 파인애플과 포도 등을 풀코스로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들이 앞다퉈 가서 과일을 따 먹자고 말할 때, 내가 나선다.
"뭔가 기분이 더러워지고 있어. 우림 말고도 다들 굶주렸을 텐데, 과일이 고스란히 달려 있는 나무가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 안 그래?"
하지만 누구도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 기분은 원래 자주 더러워졌다며.
다들 쫑혀기를 따라가고 나는 원시적으로 버림받아 혼자 남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한 비명 소리를 듣는다. 쫑혀기가 찾은 과일나무 숲은 사자들의 본거지여서 누구도 감히 그 과일들을 따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스란히 남은 것이라는 사실이 결국 밝혀진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원시 시대에는 비관적인 사람이 낙관적인 사람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분이 자주 더러워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가만히 놔두면 비뚤어진다. 노력하지 않으면 매사에 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게 돼 있다. 인생이 제대로만 풀렸던 인종들은 원시 시대에 다 멸종했고, 여기는 뭘 해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인종들만 남은 곳이다. 그러니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보다 못한 것이다.
우리가 원래 비관적인 정보,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건 무척중요하다. 부모나 선생처럼 우리의 유년시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가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그래서 너무나 결정적이다.
부정적인 영향은 긍정적인 영향의 다섯 배의 강도라는 연구 결과를 그대로 대입하자면, 잘못했다고 매를 한 대 때렸다면 다음번에 잘했을 때는 최소한 다섯 번은 잘했다고 말하며 그 학생을 안고 쓰다듬고 격려해야만 그 학생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열 대 정도 때렸다고 쳐보자. 그럼 그 학생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오십 번 정도는 스킨십을 해야만 할 텐데, 그러다가 잘못하면 스승과 제재가 사랑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애당초 체벌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말이 되나?)
체벌보다 더 나쁜 건 우연히 내뱉는 심한 말들이다.
체벌이야 지금 맞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정산하기가 쉽다. 한 대에 스킨십 다섯 번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중에 정산하기가 힘들다. 예컨대 담임에게서 "너는 돌대가리야"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 학생은 "네 머리는 정말 훌륭해"라는 말을 담임에게 다섯 번 정도는 들어야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스킨십도 어렵겠지만, 나쁜 말 한 번에 칭찬의 말 다섯 번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전국의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해서 약점을 잡히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평상시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협박처럼 들립니까? 협박 맞습니다.)
"넌 노래 안하는 게 좋겠다"라거나 "그림에는 소질이 하나도 없구나"라거나 "얼마나 멍청하면 이런 문제도 틀리니?"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들은 예전과 조금씩 달라진다. 그 아이들을 원래대로 돌리려면 그 다섯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애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자신이 없다면 애당초 원하지 않는 곳에 갖다놓지 않는 게 좋겠다. 혹시 실수로 그런 말이 나왔다면, 기억하시라. 다섯 번이다. "넌 노래를 정말 잘 불러." "어쩜 이렇게 색칠을 잘하니?" "이건 실수로 틀린 것이겠지." 민망해도 자기 실수니까 참고 다섯 번 그렇게 말할밖에.
설사 우리의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십대 내내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반복적으로 끼쳤다고 해도 우리는 그 영향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우리가 결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됨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영향에 맞서면서 점점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려 살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바로 사랑이다.
제대로 사랑한다면 그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건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경험이다. 사랑은 우리를 원래의 아이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유람선 같은 것이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원래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제대로 사랑했다면 유년 시절의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대부분 치유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유년을 보낸 사람들도 사랑에 빠진 뒤에는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체벌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에게 가장 적은 영향을 끼친다. 가까운 어른들의 부정적인 말들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어쨌거나 나중에는 극복이 가능하다.
문제는 완전한 나의 무의식 속에 있다.
다시 19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자면, 백일장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뒤로 나는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재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상을 못 받았다는 부정적 정보가 한 번 내게 들어왔다면, 자잘한 성취(예컨대 다섯 번 정도 글을 써서 칭찬을 받는다던가)를 통해 나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못 받았다는 게 재능이 없다는 걸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제출한 원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심사에 지친 심사위원이 반 정도 분량만 읽고는 수상자를 뽑은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다섯 번의 긍정적인 반응을 받으면 벗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소질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나는 십대 시절 내내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백일장에 나가서 상 한 번 타본 적이 없었고, 내게 글 쓰는 소질이 없고, 써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하고...” 그건 이렇게 상상하면 된다.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체벌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게 남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십대 시절 내내 글쓰기에 관한 한 스스로 학대하는 일을 반복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 배의 법칙에 따라 그 시절 내가 자신에게 한 그런 부정적인 말들의 영향을 없애려면 얼마나 많은 칭찬을 들어야만 할까?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최고의 작품만을 써서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다고 해도 나는 계속 목이 마를 것만 같다. (독자들은 오직 칭찬만 하라!) 이 모든 게 단 한 번 백일장에 나가서 빈손으로 돌아온 것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백일장 심사 같은 걸 보는 건 애당초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몇 번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난 뒤에 나는 자신에게 생긴 부정적인 일들을 ‘재능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십대 시절의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소설창작 시간에 관례대로 합평이란 걸 한 적이 있었다. 칭찬을 오천 번 정도는 받아도 원래의 밝고 창의적인 아이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서는 서로 다른 학생이 쓴 소설이 얼마나 후진지에 대해서 앞다퉈 얘기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말들을 듣는 학생들마저도 자신이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학생들은 아마도 글 쓰는 게 너무나 좋아서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 년 동안 그들이 듣는 이야기는 글을 얼마나 못 쓰는지에 대한 비판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고 원래 입학할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다섯 배의 긍정적인 영향이 필요하다. 친구나 교수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이 쓰는 글이 너무나 좋다는 말을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졸업할 무렵이 되면 그들이 쓰는 글은 정말 형편없어진다. 이런 흐름에 대한 그들 나름의 변명이 바로 ‘내겐 재능이 없다’는 말이다.
일단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는 일이 지속되기 어렵다. 더구나 그게 소설이나 시라면 더욱 어렵다.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작가나 시인도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듯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소설 쓰는 일을 그만 둘까 하고 혼자 고민하던 이십대 후반에 내게 크게 위안이 됐던 건 "소설 쓴 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힘들다" 던 박완서 선생의 말씀이었다. 거기 차이가 있다면 힘들다 하더라도 결국 쓰는 사람이 있고, 못 쓰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쓰지 못한다.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 그 비밀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에서 만난 학생 중에는 화면의 커서를 볼 때마다 재능이 고갈되어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건 이런 상황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누군가가 이제 막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넌 재능이 완전히 고갈됐기 때문에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을 거야.”
그런 말을 듣고 단 한 글자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이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를 저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면 그 학생에게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아무리 넘쳐나는 재능이라도 그런 말 앞에서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몇 번 정도는 괴롭더라도 글을 쓰기는 하겠지만, 결국에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서 듣는 저주의 말들은 실제로 실현된다. 그리하여 이제 글을 쓰지 않게 되면 거기 원래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에 그의 삶은 좀 비참해진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대신해서 사랑해줄까? 그러니까 “넌 정말 괜찮은 애야!”라고 위로해도 “그렇지 않아! 난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라고 반발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이십대 후반, 나는 원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이젠 소설 같은 건 그만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내 모습이기도 하겠다.
내가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삼 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한 뒤였다. 그 삼 년 동안 여러 잡지사를 다녔는데, 일이 일이다 보니까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매주 최소한 100매씩은 써야만 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게 좋은 점은 거기에는 무슨 재능 같은 게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체력만 있으면. 그게 없다면 끈기라도 있으면 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감은 하고 죽어야만 했으니까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앉아서는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볼 겨를은 없었다. 잡지사에 다니면서 나는 매일 다양한 종류의 원고를 썼다. 내 이름을 걸고 쓴 원고도 있었고, 익명이나 가명으로 쓴 원고도 있었다.
선배 기자들 중에서는 소설 쓸 때의 나처럼 정말 쓰기 싫다고, 나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소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고통 없이 글을 썼다. 주제와 형식이 제시되면 바로 썼다. 어차피 소설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써서 편집자에게 보여주면 편집장이 문장을 손봤다.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글을 못 쓰는지 지적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손본 문장을 보는 일이 괴로웠지만 편집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자 놀랍게도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쓰고 지적받고 다시 썼다. 또 쓰고 지적받고 다시 쓰고. 몇 달이 지나자 문장과 구성은 편집이라는 기준에 따라 조금씩 좋아졌다. 그건 내가 최초로 경험한,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세계였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칭찬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게 된다.
여전히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책상에 앉으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기대된다. 잘 쓸 수도 있고 못 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글을 쓸 수는 있다. 잘 썼다면 다들 잘 썼다고 말할 것이고, 못 썼다면 편집장이 빨간 펜으로 여기저기 지적해서 돌려줄 것이다. 그때는 다시 쓰면 된다. 다시 쓰면 좀 더 좋아진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잘하는 세계로 들어오면 모든 일들이 이처럼 명료해진다.
하지만 명료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려고 할 때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뭔가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스스로 내뱉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자신에게 그 말들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삶은 구원에 가까울 정도로 달라진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은연중에 퍼붓는다면.
나는 소설로도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해서 2002년 ‘월드컵 전 경기를 관람하고 싶어서’라는 핑계를 대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됐다.
경제적 어려움? 많았다. 나는 이것저것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산문을 쓰고 번역을 했다. 아무리 일해도 회사에 다닐 때에 비하면 수입은 너무나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소설을 쓰고 싶었다. 매일 소설을 써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소설이야 대단할지 안 대단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만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매일 소설만을 썼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매일 뭔가 쓰기는 썼다. 물론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끝나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고민에 대해서 썼다.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어떤 기자와 기나긴 인터뷰를 끝내고 난 뒤에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블록(Block, 작가에게 찾아오는 고갈상태)을 느낀 적은 없나요?"
생각해보니 글을 형편없이 쓴 적은 있었지만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없다고 대답했다.
"정말 글을 쓰기 시작해서 단 한 번도 블록이 안 찾아왔다는 말인가요?"
그 기자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날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로는 형편없는 글이라도 나는 썼다. 하지만 그 형편없는 글을 발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출판이 임박하면 죽자고 그 글을 고쳐야만 했지만, 형편없는 글을 쓰는 건 특정한 시기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 그 기자가 말하는 블록은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블록이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재능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듯이.
그렇게 해서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그 결과, 몇 권의 책이 출판됐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소설가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
그건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매일 연습한 셈이니까. 그 연습의 결과, 나에 대해, 나의 꿈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습관이 사라졌다. 그러자 모든 게 달라졌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그런 건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부주의한 비판들과 스스로 가능성을 봉쇄한 근거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뭔가 선택해야만 한다면,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넌 소질이 없어”라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모두 아이들이었다. 늘 밝게 웃으며 호기심에 가득 차 재미있는 일만을 찾아다니며 다른 이들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두려움 없이 원하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소질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매일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재능이란 지치지 않고 날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평생 그런 재능을 발휘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201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