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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욱한다면,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말에 ‘내가 무슨 자존감이 낮아?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난다면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욱하는 것과 자존감이 무슨 관계인가?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개념이다. 자신감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나, 이상한 사람과 섞여 있을 때나, 누가 날 공격할 때나 변화가 없다. 실패, 성공, 위기 상황에서도 별로 편차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좌절을 잘 이겨내고, 누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땡큐’도 잘하고, ‘쏘리’도 잘한다.
반면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난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는 자존감이 낮다는 증거다.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승복을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부정적인 타인의 감정이 나에게 왔을 때, 이걸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꾸 화를 낸다. 충고나 피드백도 잘 안 받아들인다. 내가 자꾸 욱하고 화를 낸다면 나의 자존감과 감정조절 문제를 잘 점검해 봐야 한다.”
-국어사전은 ‘욱하다’를 ‘앞뒤를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다’로 풀이한다. ‘욱’이란 무엇인가.
“딱딱하게 뭉친 감정의 덩어리다. 인간에게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모두 중요하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긍정적 감정’은 표현하는 사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편안하다. 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열 받고, 좌절하고, 불안하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은 느끼는 사람도, 그걸 표출할 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다. 그래서 잘 못 다룬다. 특히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억압, 억제하도록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남아서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그게 쌓이고 뭉쳐 있다가 압력솥처럼 폭발하는 게 ‘욱’이다.”
그는 ‘욱’을 보자기 같은 감정이라고 말한다. 분노, 섭섭함, 억울함, 화, 적대감, 비장함, 절망, 애통, 슬픔 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뒤엉킨 채 보자기에 싸여져 있는 게 ‘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욱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자기를 열어 그 안의 감정을 세밀하게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너무 척박하게 살았다. 밥 안 굶기고,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죽을 고생을 다해야 했다. 그런 부모에게 힘들게 얘기해봤자 노여워하고 섭섭해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감정을 수용 받지 못하는 경험을 또 하게 되면 더 상처가 된다. 하지만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그걸 소화하고 처리하는 것도 나다. 부모의 사과, 배려, 위로가 도움이 될지언정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내가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보자기를 열어 ‘나는 어떤 때 화를 내지?’ ‘이게 진짜 화야? 다른 감정이 화로 표현된 것 아닐까?’ ‘나는 왜 불안하면 화를 낼까?’ 등을 디테일하게 스스로 분석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