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사코는 196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쿄대학 출신의 외교관이며, 어머니는 화학기업인 치소 사 회장의 딸이다. 마사코가 2살 때 아버지는 모스크바로 발령을 받아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5살 때부터는 뉴욕에서 살면서 영어를 배웠다. 8살 때 귀국한 마사코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일본에서 다녔다. 마사코는 우수한 성적에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중3 때는 소프트볼 팀을 조직하여 대회에 나가 우승까지 하는 등 운동능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고1 때 담임교사는 마사코에게 의대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마사코가 고1 때 아버지는 다시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매사추세츠 주의 Belmont 고등학교 1학년에 편입했다. 마사코는 하버드 대학교에 합격하여 경제학을 전공했다. 마사코는 국제 무대에서 일할 꿈을 가지고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도 공부했다. 그리고 1985년 6월,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에서 좋은 기회가 많았지만, 어린 시절의 많은 기간을 외국에서 자라난 마사코는 일본을 더 잘 알아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귀국했다. 그 기회들을 다 뿌리치고…
도쿄대학 법학부에 편입하여 다니던 마사코는 외무고시를 준비, 1986년 10월 단 한 차례로 당당히 합격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무성에 입성하게 되었다. 부녀(父女) 외교관의 탄생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사코는 "외교관이 된 이유는, 일본에서도 남녀가 차별을 받지 않고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본을 남녀 차별이 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딱 부러지게 대답하였다.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당시.
이렇게 화려한 집안배경에 본인의 출중한 능력까지 갖춘 마사코는 촉망받는 엘리트였고, 그녀의 성공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1986년 10월 스페인 엘레나 공주의 영접식에 참석한 신입 외교관 마사코는 그 자리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그는 쇼와 덴노의 장손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 나루히토 친왕은 그 자리에서 마사코를 보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나루히토 친왕은 마사코에게 연락을 지속하였고, 그녀에게 청혼하였다. 그러나 마사코는 외교관으로서 커리어우먼의 인생을 살고 싶었기에 청혼을 거절한다. 게다가 마사코의 외할아버지가 미나마타병 추문을 일으킨 치소 사(社)의 회장이었기 때문에, 마사코는 신붓감 후보 목록에서도 사라지게 된다. 그 외에 나루히토 친왕보다 키가 크다는 점, 딸만 낳은 가정 출신이라는 점도 흠이 되었다.
나루히토 황태자는 단념하고 새로운 신붓감을 물색하였으나 결국 마사코를 포기하지 못하였고, "마사코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 황실은 뒤집어졌고, 마사코는 주변의 엄청난 직간접적 압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황실의 끈질긴 청혼과 압력에 못 이겨 시집와서 모진 시집살이를 겪은 점은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와도 비슷하다.) 나루히토 황태자는 몇 번이나 더 청혼하였고 결국 마사코는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약 7년간 청혼하고 거절당하고 청혼하고를 반복했다고 하니 그저 흠좀무.
참고로 나루히토 황태자가 마지막으로 프로포즈할 때 했던 말이 "전력을 다해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였다고. 이 말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엄청난 유행을 불러왔고, 1990년대 일본 남자들이 프로포즈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되었다. (요즘도 쓰는 사람이 있다!!)
1993년 1월 19일 일본 황실이 두 사람의 약혼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였고, 같은 해 6월 9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기자회견 당시 모습.
결혼식 기자회견에서 마사코는 여자가 감히 자기 주장과 의견을 이야기하였다고, 게다가 신랑감인 나루히토 황태자보다 길게 말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뭐 이런 미친…
"이렇게 남편을 깎아내리는 여성은 일본 여성이 아니다!!" "나루히토 황태자가 3마디를 말하면, 마사코는 1마디만 말해야 한다!!"는 등등.
참고로 나루히토 황태자보다 길게 말한 시간은 불과 19초(…) 길게 말했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다른 서양의 왕족들처럼 황태자비로서 해외 순방 등을 통하여 일본의 외교에 보탬에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 황족들의 해외 순방은 서양 왕실의 그것보다 형식적인 성격이 더 강했다. 거기에 일본 황실은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 남존여비가 심해서, 여성 황족들의 사회 생활은 엄격히 금지되며 단순히 남편을 내조하는 역할만을 요구받았다. 서양에서 오랜 시간을 성장하며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졌던 마사코 황태자비에게는 넘을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였다.
마사코 황태자비가 했던 단순한 행동, (외국인이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함 그 자체인) 인터뷰 등이 오만한 것으로 지적받았다. 그녀가 나루히토 황태자보다 키가 조금 더 큰데, 그것을 옳지 못하다고 지적받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로 마사코 황태자비는 황실과 계속 충돌,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마사코 황태자비를 더 괴롭혔던 것은 바로 아들 출산의 문제였다. 만세일계의 혈통을 이을 후계자, 즉 황태자의 아들을 낳는 것은 황태자비의 가장 큰 의무였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에 결혼한 황태자 부부에게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고, 그럴수록 주변의 심한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임신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궁내청에서 마사코 황태자비의 해외 순방을 허용하지 않는 등 생활을 엄격하게 제약하자, 마사코 황태자비는 대상포진과 우울증 등 스트레스성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여러 번 유산을 했으며, 2000년에는 유산 후유증 때문에 시할머니인 나가코 태후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했다. 오랜 불임 끝에 그러다 결국 2001년, 임신이 되었다. 전 일본이 마사코 황태자비의 임신에 주목하였고 아들의 탄생을 바랐지만, 딸이었다. 아이코 공주를 낳은 후에도 마사코 황태자비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임신을 권유(라고 쓰고 '강요' 라고 읽는다)당했으나, 아이코 공주를 낳을 때도 노산이었던 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니 임신이 될 리가 있나(…). 이후에는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하였다.

1998년 무렵의 마사코 황태자비. 그녀의 표정에서 고뇌가 다 느껴질 정도(…).
마사코 황태자비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약받고 아들 출산을 강요당하면서 각종 스트레스성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우울증을 이유로 모든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장기간 칩거에 들어간다. 나루히토 황태자는 일본 황족으로서는 드물게 "황실 내에 황태자비의 인격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아내를 음해하는 세력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사하고 마사코를 지켜주려고 하였다. 이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며 마사코 황태자비의 호감도가 하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의 질책까지 들어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게다가 시동생 부부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가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이 바로 히사히토 친왕.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 후 황태자 일가는 쩌리 신세가 되어버렸다. 모든 황족들과 국민들의 관심은 히사히토 친왕과 차남 일가에게 집중되었고, 황실전범 개정 움직임은 쏙 들어갔다. 세인들은 마사코 황태자비가 아들 출산의 압력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확실히 찍힌 사진 같은 것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얼굴이 좋아진 게, 차라리 본인은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 이후 본인에게 지워진 부담과 긴장을 덜어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 모양. 그러나 아이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 2~3학년 시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여 등교 거부를 하는 등 순탄치 않은 학교 생활을 하였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일본의 모순에 희생당한 전형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일본은 부락민 항목에서 알 수 있듯 과거의 악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민당 1당 정권의 유지 등에서 알 수 있듯 이념 성향 자체가 매우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특히 일본 황실은 '살아 있는 일본 전통의 상징'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마사코 황태자비는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사고 방식의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었고, 애초부터 일본 황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여성이었다. 어찌 보면 황태자와의 결혼이 한 촉망받는 여성 외교관의 일생을 망쳐버린 것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다. 사실 커리어나 능력으로만 보면, 나중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일본 사회에서도 마사코 황태자비를 안타깝게 여기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보수성이 강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지는 않는 모양. 오히려 그녀에 대한 동정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측은 외국 언론들이다. 독일과 일본의 언론인이 집필한 <일본 왕실에 갇힌 나비 마사코>라는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 출판되어, 일본 황실을 비판하고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동정 여론을 펴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한줄요약 - 똑똑하고 집안좋고 리더십있고 능력까지 다 갖춘 알파걸 여자가 시집 한번 잘못가서 인생 망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