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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나는 정부에 속았습니다"…어느 中企 사장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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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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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기업의 눈물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
2015년 세종시와 MOU 맺고
中서 돌아왔지만 곧 후회

투자조건으로 담보 요구하고
공장 짓고 신청한 고용보조금
'신청기한 지났다'며 거절당해
사업 제대로 못한 채 '빚더미'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세종시 공장에서 회한에 젖은 표정으로 재고로 쌓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 공장은 한 대기업이 물류창고로 임차해 쓰고 있다. /민경진 기자
“20년간 중국에서 모은 돈을 한국에 돌아와 모두 날렸습니다.”

5일 세종시 소정면 세종첨단산업단지에서 만난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사진)은 “유턴기업을 적극 지원한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왔지만 사업 시작도 제대로 못 한 채 수십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토로했다.

중국 칭다오에서 공기압축기(에어컴프레서) 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민 사장은 2015년 6월 세종시와 ‘유턴기업 지원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세종시는 근로자 1인당 1050만원의 고용보조금 지급을 비롯해 입지보조금 40%, 설비투자 보조금 24% 지원 등을 당근으로 내걸었다. 이로부터 5년 뒤 회사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다. 민 사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약속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금계획이 꼬여버린 게 사업 실패의 주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MOU를 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복귀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종시가 투자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국내 사업 이력과 담보물이 없는 민 사장에게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다. 그는 보증료 1억6000만원과 예치금 3억5000만원 등 약 5억원을 급히 빌려야 했다.

민 사장은 62억원을 들여 2017년 7월 공장을 준공했다. 준공 후 바로 고용보조금을 신청했지만 뜻밖에 ‘지급 거절’을 당했다. 유턴 MOU를 체결하고 석 달 안에 40명을 고용하는 것을 전제로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는데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였다.

민 사장은 “듣도 보도 못한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MOU 협약서나 사업설명서 어디에도 ‘MOU 후 3개월 내’라는 조건은 없다”고 주장했다. “공장을 착공하기도 전에 직원 40명을 고용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도 따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KOTRA 등에도 읍소했지만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민 사장은 “유턴기업 유치 때와는 너무 달라진 공무원들을 보고 정부에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년 5월 칭다오에 있던 공장이 생산중지명령을 받으면서 반제품 공급이 끊겼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폐업이 속출한 가운데 민 사장의 중국 공장도 타깃이 됐다고 한다. 은행에서 빌린 28억원의 원금 상환을 6개월 앞둔 때였다. 그는 다른 대출처를 찾아 헤맸다. 국내 사업 이력이 거의 없는 그에게 수십억원을 빌려주겠다는 금융회사는 없었다. 그의 유일한 선택지는 법정관리 신청이었다. 민 사장이 국내에서 사업을 벌이며 진 빚은 52억원에 달한다.
"유턴하면 파격지원 약속했던 지자체
황당한 조건 내밀며 보조금 지급 안해"


민덕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국내 복귀를 결심한 건 2013년 한국에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군산, 전주, 원주, 세종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기업 유치를 희망한다며 앞다퉈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생산하면 중국산에 비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유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후회했다고 한다. 까다로운 지원 조건이 발목을 잡아서다. 그는 당초 공장 한 동을 먼저 짓고 사업이 안정되면 나중에 한 동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종시는 투자계획서에 명시된 공장 두 동을 모두 지어야 약속한 보조금을 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민 사장은 가동하지 않는 공장 한 동을 다른 업체에 임대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막혔다. 투자완료보고서를 제출한 뒤 5년간 임대를 금지하는 조건 탓이었다. 그는 “2018년 중순부터 직원 수를 40명에서 23명으로 줄일 정도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았다”며 “생산을 멈춘 공장은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 사장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에 앞서 정부 기관과 지자체 등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기업회생절차라는 제도도 이미 사업이 망해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던 한 유턴업체 사장을 통해 알았다”고 푸념했다.

그는 유턴기업이 해외에서 쌓은 실적을 국내 금융회사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점도 걸림돌로 지적했다. 민 사장은 “은행 원금상환 시기가 6개월만 유예됐더라도 생산 정상화를 거쳐 충분히 재기가 가능했던 상황”이라며 “수십 년간 해외 사업을 벌이느라 한국에서 신용 또는 담보 용도의 부동산이 거의 없는 유턴기업은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기업가는 평생 사업을 일굴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오는데 담당 공무원은 1~2년마다 교체되며 안면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턴기업을 유치하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달라”고 하소연했다.

세종=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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