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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우리는 ‘조주빈 자서전’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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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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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theqoo.net/TbWow

“30초 후에 나옵니다!” 1분 만에 중계된 '조주빈의 말'

지난달 25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경찰서 앞, 백여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한 사람을 향했습니다.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2백만 명이 넘게 참여할 정도로 국민적 분노가 쏠린 인물, 성착취물을 유포한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가 내뱉은 몇 문장은 뉴스 생중계를 타고 퍼졌고,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속보’ 타이틀을 달고 포털사이트를 뒤덮었습니다. 1,119건. 조주빈이 등장한 그 날 아침 8시부터 1시간 안에 쏟아진 온라인 속보량입니다.

https://img.theqoo.net/MfNyg

“난 얼굴에는 관심도 없어요. 사실. 사과한다고 하면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됩니까? 엄청 자극적인 사건으로 번지니까 언론이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악랄하고, 수법이 어떻고, 미성년자한테 뭘 시켰는지 쓰지 말고, 왜 제대로 처벌을 못 하는지나 좀 분석했으면 좋겠네요.”

같은 시각, 경찰서 앞에서 기자가 만난 시민들이 한 말입니다. '왜 가해자에게 마이크를 내어줘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가해자에게 '한 말씀만 해달라', '피해자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예상된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주빈은 뜻밖의 이름들을 내뱉으며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하루 쏟아진 조주빈 관련 보도량 3천2백여 건 중 4분의 1 이상은 '손석희 JTBC 사장'을 거론하고 있었습니다.

https://img.theqoo.net/MKRUO

이를 두고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는 “'JTBC 사장과 광주 시장의 이름이 왜 언급됐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기사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지적해야 할 것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그 발언의 의도였어야 하는데 그가 손석희를 보라 했더니 정말 보고, 손석희를 캐라 하니 정말 캐고 있었다. 자신의 파렴치한 범죄를 권력형 범죄처럼 과장하고 싶었던 성범죄자에게 언론이 놀아난 것이다. 조주빈이 언론의 교주가 된 것 같은 풍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주빈 자서전' 쓴 언론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공개된 뒤, 그의 모든 것은 뉴스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https://img.theqoo.net/ObVaZ

모아놓고 보니 마치 한 영웅의 일대기, 위인전 같기도 합니다. 흉악범의 삶에 서사를 부여하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패턴은 늘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 범죄자의 행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겠지만, 가해자의 삶에 하나의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사건 해결의 본질을 외려 흐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언론노조는 이번에 이례적으로 ‘n번방 긴급 보도지침'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엔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기에,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라고 명시돼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지난 28일 방송된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텔레그램 '박사'는 누구인가> 편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형 범죄로 덩치를 키운 일명 '팀 박사'를 추적한다'는 예고 문구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방영 후에는 그알이 담은 내용 자체가 불쾌하고 의아했다는 비판글이 잇따랐습니다. 조 씨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이 조 씨 친구의 인터뷰를 통해 강조됐고, 텔레그램 방에서 나왔다는 성착취 피해자들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도 수차례 들렸습니다. 정작 어떻게 집단 성착취 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 수 만 명에 이른다는 가담자들의 신원정보 확인이 가능한지, 정작 시민들이 궁금해했던 내용은 없었다는 겁니다.

‘J’에 패널로 출연한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가해자를 ‘괴물’로 표현하는 것은 성범죄를 비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정작 범죄는 일상적 공간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가장 많이 일어난다. '악마'의 특수한 범죄로 삼는다면 성폭력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면서 "이번 디지털 성범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 명의 가해자가 아니라, 그 방에 가담한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성범죄 보도 "데스킹"은 존재하나?

디지털 성범죄라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 문제를 두고 언론사 내부에서는 어떤 고민이 오가고 있을까. 'J’ 취재진이 현장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모 언론사 5년 차 기자는 “텔레그램 방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중에 가학적인 영상을 찍는 것을 즐긴 여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100% 가해자만의 범죄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겠냐’고 말하는 선배도 있었다”면서 “내 기사를 고치는 데스킹 과정에서 조회 수를 위해 선정적인 제목이나 가해자들의 수법을 묘사할 때마다 지적하기가 참 힘들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언론사의 10년차 기자도 “이슈를 큰 틀에서 발제하고 취재 방향을 결정하는 ‘데스크’들이 평소에는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 ‘n번방’처럼 큰 사건이 터질 때가 아니면 ‘지금 이런 걸 취재할 때나’는 얘기를 한다. 그러다 보니 사건사고성 보도처럼 쉽게 쓰는 기사들이 아니라, 처벌 강화같은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기사를 쓰려면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인 인권 보도 교육은 종종 이뤄지고 있지만, 비교적 입사 수년 차의 젊은 기자들을 대상으로만 이뤄지다 보니 정작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데스크급 기자를 포함한 조직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내부 불만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https://img.theqoo.net/NPqpq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성범죄 보도 준칙을 만들어 최소한의 원칙만이라도 지키자고 해야 한다. 영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출판물을 감독하는 독립기구(IPSO)에서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언론이 위반했을 경우 최대 100만 파운드(15억여원)의 벌금을 물린다. 언론의 자정 작용이 어렵다면 2차 가해를 하거나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성범죄 관련 보도를 줄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84회는 〈알권리 vs 장삿속...조주빈 자서전 쓰는 언론〉이라는 주제로 오는 5일(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 김빛이라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김빛이라 기자 (gl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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