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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한국은 눈치를 많이 보는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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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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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뉴욕 타임즈에는 <한국인들이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비밀(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이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재미교포 2세인 저자 유니 홍이 밝히는 그 비밀이라는 건 바로 '눈치(Nunchi)'입니다. 저자는 '눈치'가 한국인 특유의 문화라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눈치가 (한국인들에게) 집단주의와 내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눈치 보느라 늑장 퇴근하는 '직장 미생'들, 정형화된 취업·결혼·출산의 로드맵, 상황에 맞는 옷차림, 획일화된 외모 기준이 팽배한 SNS… 언뜻 생각해보면 한국인들, 끊임없이 자기 모습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경향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유독 한국에서 심한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눈치 더 많이 보는 사회'일까요? 여기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실증 연구가 있어 소개합니다.

눈치 보게 만드는, '빡빡한 사회(tight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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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문화 심리학자인 미셸 겔팬드(Michele J. Gelfand) 교수는 지난 10년 가까이 '~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와 같은 무형의 규범들이 각 국가에서 얼마나 강요되는지 조사해 꾸준히 논문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녀는 연구 과정에서 '빡빡함(tightness)'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사회적 규범이 엄격하게 준수될수록 '빡빡한 사회(tight culture)', 자유로울수록 '느슨한 사회(loose culture)'입니다. ('tightness'를 '빡빡함'으로 번역했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빡빡한 사회'는①성문화(成文化), 즉 문자화되지 않은 사회적 규범들이 매우 강하고 ②소위 '튀는 행동'에 대한 관용이 낮은 사회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눈치 많이 보게 만드는' 문화라는 얘깁니다. 반면 '느슨한 사회'는 규범이 약하고 개인의 일탈 행동에 대해서도 관용도가 높은 공동체입니다. 개인 자유도가 높은 사회겠죠.

한국은 '빡빡한 나라' 세계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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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얼마나 빡빡한 사회일까요? 겔팬드 교수는 33개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한 설문을 통해, 한 사회가 얼마나 '빡빡한지'를 수치화했습니다. 한국은 33개국 중 5위입니다. 파키스탄(1위), 말레이시아(2위), 인도(3위), 싱가포르(4위)의 뒤를 이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8위, 중국은 9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 중국인들보다 개인을 옥죄는 문화적 규범들이 더 많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23위입니다.

65개 국가를 대상으로 '빡빡함'을 조사한 연구도 있습니다. 한국은 65개국 중 9위였습니다. 모로코·인도네시아·이집트·요르단·방글라데시·터키·나이지리아·알제리 바로 다음입니다. 일본, 중국, 미국보다 빡빡하게 나타났습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사상적 토대로 한다는 우리나라, 문화적으로 개인을 옥죄는 정도가 상위 13~15% 정도입니다.

이 연구들을 통해 우리 사회 '눈치'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개인행동의 적절성을 따지는 엄격함이 매우 강한 사회이고, 이것 때문에 개인은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되고, 그래서 알아서 눈치를 보는 일도 많아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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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빡빡하면 개인은 우울하고, 자살도 많이 한다"

'빡빡한 사회'는 '개인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결론은 지나치게 빡빡한 사회는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한 연구(Harrington, J. R, 2015, Culture and National Well-Being: Should Societies Emphasize Freedom or Constraint?)에서는 각종 규범이 개인을 옥죌수록 행복도는 낮아지고, 우울장애가 많아지고, 자살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체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빡빡한 사회에 살수록 심혈관 질환 사망률은 높아지고, 당뇨병도 많이 걸립니다. 기대 수명도 줄어듭니다. 요약하자면, 눈치 많이 보게 하는 사회에 살면 구성원은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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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왜 설리의 '노브라'에 화가 날까?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설리 씨, 생전 인터뷰에서 "내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 중 하나가 눈치 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리 씨는 브래지어 때문에 자주 구설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노브라'는 끊임없이 기사화됐고 악성 댓글이 달렸습니다. 설리 씨는 여기에 대해 "개인의 자유가 아니냐"면서 "브라 자체가 건강에도 좋지 않고 와이어가 있어서 소화 불량을 일으킨다. 편안해서 착용하지 않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빡빡한' 한국 사회, 여성의 건강권을 위해 장려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노브라를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속옷을 안 챙겨입어서, 나이 많은 사람과 연애를 해서, 몽롱한 표정을 지어서… 남에게 별로 피해를 주지 않는 이유들인데도 설리 씨는 지탄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순응적이고 무해한 태도, 그간 우리 사회가 여성 연예인들에게 가해왔던 무형의 규범입니다. 앞서 소개한 연구들을 다른 표현으로 요약하자면, '빡빡한 사회일수록 동질성에서 벗어난 사람을 감당해 내는 그릇이 덜 됐다'입니다.

설리 씨는 눈치 보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눈치 볼 것을 요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잘못 딱히 없는데 삶이 힘들다면…

남한테 피해 주는 잘못 안 하고 사는데도,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한 번쯤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꽤 빡빡하단 사실을. 어쩌면 잘못은 끊임없이 '눈치 보게 만드는' 우리 문화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느슨해지면, 우린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참조문헌>
-Gelfand et al. (2011) Differences between tight and loose cultures: A 33-nation study. science, 332(6033), 1100-1104.
-Harrington, J. R., Boski, P., & Gelfand, M. J. (2015). Culture and national well-being: Should societies emphasize freedom or constraint?. PloS one, 10(6), e0127173.
-Uz, I. (2015). The index of cultural tightness and looseness among 68 countries.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 46(3), 319-335.

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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