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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울긋불긋 등산복 입고 해외여행 가는 어르신들,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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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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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1)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렸을 때 자식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땐? “아무 일 없고 안 아파”, “그냥 편안히 쉬는 중이야” 이런 말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은 “야들아 우리 여행 중이니까 바뻐. 전화 끊어. 하하”라는 톤 높은 말이라고 한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자식들은 부모께 무엇 하나 해 드리지 못해 마음 아프고 미안하다. 평생을 투덕거리며 사는 부모가 함께 여행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내가 잘살아줘서 편안한 인생을 사시는 것 같은 착각에 힘들던 일도 덜 힘들다고 한다.


우리 집 담 끄트머리에 있는 시골버스 정류장이 왁자지껄 시끄럽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니 몇몇 부부가 버스를 기다리며 웃음꽃이 핀다. 어디 가시냐고 물으니 단체로 옷 사러 간단다. 한동네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도 함께 다니며 객지 한번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분들이다. 어느새 칠순이 넘으셨는데 요즘은 부부모임으로 여행을 잘 가신다. 그런데 한 번도 한 부부만 따로 가 본 적은 없단다.

노는 것도 배워야 잘 논다며 일밖에 무엇 하나 해보지 못한 지난날이 아쉽다. 그나마 요즈음 친구 부부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함께 다니신다. 봄에는 강원도로 국내 여행을 며칠 다녀와서는 여름 내내 자랑하셨다.

농사짓는 어른들은 봄이 오는 것이 두렵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해도 힘든지 모르던 젊은 시절도 다 지나가고 이제는 봄이 오면 올해 농사를 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땅을 놀리지 못하는 부지런한 근성 때문에 또 삽을 들고 나가신다. 얼마 전부터 죽도록 일만 하지 말고 남은 인생 가까운 곳이라도 세상 구경 해보자며 일 할 땐 열심히 일하고 적금도 넣어 봄, 가을 여행을 하기로 했다. 목표가 있으니 일도 덜 힘들다고 하신다. 이제까지 생각한 것 중에 최고로 잘한 결정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다.

이번엔 조금 멀리 가신다. 며칠 후 해외여행을 가는데 날마다 분주하다. 초등학생 소풍날짜 받아 놓은 듯 설레신다. 이제껏 질끈 묶은 머리도 보글보글 파마하고 살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아 아침마다 장 보러 나가는 게 며칠째 일과다.

오후가 되니 울긋불긋 원색의 등산 잠바에 모자는 교복같이 동일한 색으로 쓰고,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들어오신다. 신문엔 여행 가서 등산 잠바를 입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뿐이라며 무식하다 핀잔을 주지만 ‘아무려면 어떠냐. 낯선 땅에서 우리끼리 잃어버리지 않고 뭉쳐 다닐 수 있는 표시는 요것뿐’이라며 행복해하신다.

앞집 언니가 옷 가방을 들고 패션쇼를 하러 들어온다.
“내가 여름엔 깡통만 차면 거지꼴이지만 말이야. 어때, 이 옷 예쁘냐?”
“버스가 동네 입구까지 와서 우릴 태워서 공항 가고 다녀와서도 동네 앞까지 딱 데려다준단다.”
“자식들이 농사일 할 땐 잔소리만 하더니 놀러 간다니 돈을 모아서 두둑이 주네.”
나도 덩달아 한 마디 한 마디에 “정말요?”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못 먹어보는 딴 나라 음식도 많이 먹어보고 오라고 하려는데 그가 또 자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음식 때문에 모두 걱정을 하니 집에서 먹듯이 된장, 김치찌개에 불고기랑 한식으로만 삼시 세끼 다 차려 주기로 했데. 호호호”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여행하다가 남은 1달러짜리 열 장을 봉투에 넣어 잘 다녀오시라고 드리니 너무 행복해하신다. 아무쪼록 어르신들 모두 아름다운 가을 여행으로 기억되길 기원해본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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