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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가난 때문에 친구랑 절교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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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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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pann.nate.com/talk/347619980



Ldnbn



지인들한테 털어놓기 좀 그런 이야기라 익명을 빌어 잠시 여기에 풀어 놓겠습니다.
판에 글 써보는게 처음이라 조금 길고 형편없어보일지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고 조언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목 그대로 제가 가난한 것 때문에 친구랑 절교해야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물 초중반의 장녀입니다. 다음 생에선 만나기 싫은 부모와 여동생, 남동생과 살았었습니다. 저희 집은 부엌이랑 방의 구분이 없고 겨울에는 찬바람 부는 창문이 뚫려있는 화장실, 쌓아놓은 짐들 때문에 자는 것 이외엔 별다른 쓰임이 없는 작은방이 전부입니다. 원래 하얀색이었지만 때가 타 구질구질한 벽지는 허구한 날 벌이는 부모님의 싸움 때문에 더 난장판입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 동생 둘 다 집을 나가고 없어서예요. 여동생은 고딩때 가출해서 이모할머니 댁에서 지냈고 지금은 친구들이랑 지내나 봐요. 남동생도 군대갔다오고 나서 바로 집을 나가 지인이랑 지낸다고 합니다. 둘 다 부모님이랑 연락은 끊고 가끔 저한테만 안부를 보내옵니다. 이 지하실 같은 지긋지긋한 집에서 아직까지 남은 자식은 저뿐이에요. 가족들한테 하도 시달려서 그런지, 지인이던 친구던간에 남들이랑 같이 사는게 진절머리가나 혼자 살려고 돈 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집안이 이 모양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처음으로 가난을 인지한건 초등학교 일학년쯤이었을 거예요. 여태 어디 놀러가자는 말을 한 번 안하던 부모가 웬일로 놀이공원을 가자고했었습니다. 지하철타고 버스타고 놀이공원에 갔다가 매표소 앞에서 입장권 가격이 비싸다고 그냥 다시 돌아왔던 기억이 머리에 콕 박혀있네요. 기대했었는데. 그날부터 지금까지 원하는 게 있어도 부모에게는 잘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준비물로 리코더 하나 살 돈 못 쥐어주는 부모에게 무슨 기대를 더 할까요.


일평생을 저런 집안에서 컸고 밖에 나가서 놀 돈이 없다보니 집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성적은 좋았고 대학 등록금이랑 학비는 돈 많은 외삼촌이 빌려주셨습니다. 우리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외삼촌은 저희 부모님을 엄청 싫어하지만 제가 불쌍하다고 해서 선뜻 빌려주셨어요. 동정은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의 표본을 잘 보여주시는 분이라 나쁘지 않게 생각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친구. A랑 만난 건 대학교에서였습니다. 제 친구B의 지인이었던 A는 저보다 어렸지만 말이 잘 통했어요. 제가 남자였으면 반했을 정도로 귀여워서 주변에 사람도 많았고요. 제가 돈 벌려고 휴학을 했던 탓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B밖에 없게 되어서 B랑 친했던 A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종강하고 다 같이 놀러갔을 때 길에서 넘어져서 못 걷는 A를 업어주었는데 그때부터 굉장히 친근하게 굴었습니다. A는 우리 중에 제일 키가 작고 가벼웠고, 저는 걔랑 10센티 이상 차이나며 잡일을 많이 해서 힘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보고 부축하라고해서 도와준 것뿐인데 갑자기 단짝처럼 굴어서 당황스럽긴 했어요. 그만큼 A가 붙임성도 좋았습니다.


아무튼 매일 연락하고 지낼 만큼 친해지고 저도 A랑 있다 보면 즐겁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네 집이 잘산다는 점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냥 잘사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들과도 너무 화목했습니다.


A네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였고 위로 오빠가 하나 있는데 오빠랑도 사이가 매우 좋아 보입니다. 저는 가족이 싫어 미치겠는데 A는 가족 없으면 못살겠대요. 가끔가다 저희 부모님 욕을 할라하면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인데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부모를 어째서 싫어하는지 이해를 못해요...


그리고 일상 대화중에서도 안 맞는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코스트코라던가 백화점 같은 이야기들... 전 솔직히 한 번도 코스트코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백화점에서 물건 사본적도 없습니다. 돈은 늘 없는데 어떻게 가나요... 그럴때마다 대충 둘러대며 맞장구 쳐줍니다. 가난한건 사실이지만 제 입으로 인정하면 비참해지거든요.


제가 알바하는 것도 있지만 무의식중에 돈을 아끼려는 경향이 있어서 잘 놀러 다니지 않는 편입니다. 돈 아껴서 어서 이 집을 벗어나고 싶으니까요. 그에 반해 A는 놀러 다니는걸 좋아하고 어딜 갈 때마다 꼭 저를 데리고 가야 속이 시원한가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A랑 있으면 즐거운게 맞긴 하고 저도 노는거 좋아해요. 노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나요. 하지만 한 달에 정해둔 여가비용이 빠듯해서 A가 원하는 만큼 놀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A가 노는데 쓰는 비용을 다 내겠다고 하지만 부담스러워요. 저보고 부모님한테 잘 말하면 용돈 주지 않냐고 하는데 쓴웃음만 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용돈 받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돈달라고 했다가 울때까지 혼난 뒤로는 용돈의 용자도 안 꺼냅니다. A는 이 나이에도 꼬박꼬박 용돈 받는다고 하네요.


까놓고 말해서 부러운거 맞습니다. 질투도 나고요. 하지만 A는 제 집안 사정 따위 모르니까요. 바닥이 대리석으로 된 A네 집에 슬리퍼 신고 처음 들어간 순간부터 제가 살고 있는 집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초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괴감 느껴지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나날이 즐거움과 함께 스트레스도 쌓여갔습니다.
제가 술마시면 주정으로 죽고싶다 죽고싶다 노래부르고 다니는데 A는 그럴때마다 왜 벌써부터 죽을 생각을 다하냐고 저를 나무라기도 하고....ㅋㅋㅋㅋ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아이라 사랑을 주는 법도 잘 아는지 계속 저한테 언니는 좋은 사람이다, 나도 언니를 무척 사랑한다. 주변 사람들도 언니를 좋아하지 않느냐~ 응원해주는데...글쎄요.
저는 예전부터 무척 지쳐있어서 감정싸움하기 싫어 웬만한 거 다 받아주고 물질적으로 손해보는 거 아닌 이상 다 눈감아 준 것뿐인데. 다들 제게 부처같다, 마음이 넓다면서 편안해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판에 글을 올릴 계기가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A를 알게 되고 아직 대면대면했을때 둘 다 생일이 지나가서 이번해의 생일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는 선물을 안 주고 안 받는 타입이라 괜찮다고 했는데도 끝내 우겨서 시계를 받았습니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 손목을 좀 긁어놔서... 자세히 봐야 보이는 옅은 흉터가 있습니다. 그거 가리려고 맨날 천원짜리 팔찌나 머리끈을 주렁주렁 달고다니는데 제가 손목에 뭐 차는걸 좋아하는 줄 알고 시계를 선물했더라고요. 시계는 처음차보고 잘 몰라서 그냥 어디 대형 마트나 전자제품 취급하는 곳에서 파는 만 얼마짜리 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그렇게 속앓이를 하고도 아둔했죠... B가 가격 찾아줬을 때 머리가 터질 뻔했습니다. 뭔 시계가 20만원이 넘나요... 저는 선물받고 입 싹 닦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에 상응하는 선물로 돌려줘야 맘이 편한데 순간 이걸 어떻게 갚나 눈앞이 컴컴해졌습니다.


그날 바로 A를 찾아가 이거 너무 비싸서 못 받겠다, 돌려주겠다고 하자 자기는 안 돌려받겠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한 티를 냈는지 그렇게 비싼거 아니라고 자기가 주고싶어서 그런거라 하는데 그 순간 왜 그렇게 서러웠던지. 머릿속이 백지가 된 기분에 알았다고하고 그대로 편의점가서 술마시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선물을 기쁘게 못받는게 슬프고 이십만원이 아무렇지 않는 태도가 부럽고 이 와중에 처박혀서 울 수 있는 내 집이 없다는게 서러웠습니다.


A랑은 생일이 몇 주차이라 걔 생일에는 몇 만 원짜리 목걸이 선물해줬습니다. 고맙다고 받아주긴했지만 고작 이것밖에 못하는 게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저 목걸이 하나면 밥이 몇 끼냐는 생각을...하는 저도 진짜 싫었고요.


같이 놀며 이야기하면 즐겁고 A한테서 나오는 긍정적 기운에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이렇게 서로 별세계에서 태어났다고 느낄때면... 내가 한심해지고 비참해지고 왜이런 집안에서 태어났나 원망도하고 그냥 마냥 슬퍼집니다. 어쩔 때는 행복하면서도 그만두고싶다는 생각만 들때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A랑 친하게 지내면서 내가 가난하단걸 다시 한 번 느끼는 횟수가 그리 많진 않지만 그 한번 한번이 너무 시리고 아픕니다.


그래서 이번 방학동안 연락 횟수를 일부러 줄이고 천천히 멀어져볼까 했습니다. 초반엔 A도 제가 알바하는걸 알아서 그러려니 했나본데 계속 톡도 씹고 전화도 잘 안 받으니까 나중에 가선 울면서 전화하더라고요. 자기 왜 피하냐고,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이유도 안 알려주고 멀어지는 거 정말 싫어하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해서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진짜 착하고 좋은 애인데 덜컥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냥 다 속상하고 지치고 피곤해져서... 요즘 힘든 일 있어서 그러니 다 끝나면 알려주겠다 둘러대고 끊었습니다.


이제 진짜 A한테 다 말해야할텐데 너무 복잡합니다. 이거 쓰면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사람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구나 싶습니다. 처음엔 내가 가난하다는걸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쯤되니 그냥 다 털어놓고 홀가분해지고 싶기도 합니다. A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절교하자고 해야할까요? 좋은 애라 상처주고 싶지는 않은데 저도 힘들고... 잘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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