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회 (사진 = NFL.com)
[엠스플뉴스] 올시즌 한국계 선수가 NFL 무대에 등장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한 구영회가 주인공이다. 한국계 선수로는 NFL 사상 두 번째. 서울에서 출생한 기준으로는 4번째 NFL 선수다.
지난
8월 3일(이하 한국시간) NFL 32개 구단은 2017-2018 시즌을 앞두고 팀별 53인 로스터를 확정 지었다. LA
차저스는 지난 시즌 팀의 주전 필드골 키커 였던 조시 램보를 방출했다. 아울러 램보의 자리를 메울 선수로 구영회를 확정했다.
구영회는
조지아 서던대학 4학년이던 지난 4월 NFL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했다. 3학년 때 팀이 속한 선 벨트 컨퍼런스의 퍼스트
팀에 선정됐고 2016년 FBS(Football Bowl Subdivision) 올 아메리카 서드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프로팀에는 지명되지 못했다(올해 드래프트에서 프로팀의 지명을 받은 필드골 키커는 모두 3명 뿐이고 그나마 5라운드에서 1명,
마지막 7라운드에서 두 명이 지명 됐다. 그만큼 키커는 팀당 숫자도 적을 뿐 아니라 수명도 길다).
드래프트
지명에 실패하고 애틀랜타 팰콘스, 마이애미 돌핀스 캠프에 참가해 훈련하고 있던 구영회에게 차저스가 연락을 취했다. 비드래프트
선수로 계약하자는 제안이었다. 구영회는 차저스 캠프에 참가했고 이후 시범경기 동안 지난 두 시즌 동안 팀의 주전 필드골 키커였던
램보와 경쟁을 펼쳤다.
시범경기에서
램보는 2번의 필드골 기회를 모두 성공시켰고(53야드 필드 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가 필드골 기회 4번도 모두 성공했다.
킥오프 킥의 경우 7 번 중 6번이 터치백(찬 볼이 상대 골라인을 넘어 볼 데드가 되고 상대공격이 25야드 라인지점에서 시작되게
하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 필드골 성공률 81.3%, 추가 필드골 성공률 91.3%에 그쳤던 램보로선 분명 발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구영회 역시 27야드 필드 골 찬스를 살렸고 추가 필드골 3개를 모두 성공시켰다. 램보에 비해 구영회가 확실한 우위를 보인
부분은 킥오프 킥. 목표한 지점으로 볼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이면서 평균 킥오프 리턴 21야드를 기록했다. 이 부문에서 램보에
우위를 보여 53인 로스터 진입에 성공했다.
아메리칸 풋볼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소년
구영회 (사진 = 구영회 트위터)
구영회는
2006년 미국 뉴저지주로 이주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모친이 앞서 미국에 간호사로 와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부친은
대학 교수로 알려져 있다). ‘NFL.COM’과 인터뷰를 보면 구영회는 당시까지 이 세상에 아메리칸 풋볼이라는 운동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축구와 농구, 야구를 즐겼다.
현지 학교로 전학한 다음 날 구영회는 아메리칸 풋볼이라는 것을 구경하게 된다. 며칠 뒤에는 친구들 손에 이끌려 자신도 둥근 공이 아닌 길쭉한 타원형 공을 두 손으로 만지고 차게 됐다.
NFL.com에 소개된 구영회 영상 (영상 = 트위터 캡쳐)
고교
3학년 때 팀의 MVP가 된 구영회는 여러 대학들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왔던 조지아 서던대학을 선택했다.
대학시절 구영회는 모두 35번의 필드골 기회 중 31번을 성공시켰다. 88.6% 성공률은 학교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지난
해는 20번 중 19번을 성공시켜서 미국 전역에서 2위를 기록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 지명에 실패한 것은 키커라는 포지션
특성 뿐 아니라 조지아 서던 대학이 속해 있는 컨퍼런스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 대학이 속해 있는 선 벨트 컨퍼런스는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디비전 1에 속한 10개의 컨퍼런스 중 하나다.
하지만 컬리지 풋볼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5개의 컨퍼런스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아무래도 전국적인 지명도에서는 다른 5개의
컨퍼런스 팀 보다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만큼 대학에서의 기록도 인정받기 힘들다).
축구 DNA를 NFL로
구영회 (사진 = 구영회 트위터)
구영회는
차저스의 53인 로스터에 들어가는 이변으로 주목을 받게 됐지만 이미 온 라인에서는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던 동영상 때문이다. 어쩌면 구영회의 정체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동영상에서
양발로 풋볼을 마치 축구공 다루듯이 올려 놓은 뒤 세로로 선(이게 중요하다) 볼을 차서 그대로 필드 골을 성공시킨다. 이 영상은
5,700회가 넘게 리트윗 됐고 1만 여개에 가까운 ‘좋아요’를 받았다. 아메리칸 풋볼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소년이 한국에서
즐기던 축구 기술을 어떻게 아메리칸 풋볼에 접목시켰는지 알 수 있다(고교 시절 즐겨했던 기술인데 영상은 나중에 올렸다고 한다).
차저스는 올시즌부터 연고지를 샌디에이고에서 LA로 옮겼다. NFL이 여전히 한국은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도 낯선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구영회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NFL 최초의 한국인 선수
한국계
선수 최초로 NFL에서 뛴 주인공은 존 리(한국명 이민종)이다. 1986년 NFL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32번째)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됐다. 루키 시즌에 13개의 필드골 중 8개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고
결국 1987년 9월 팀에서 방출 됐다. 1988년 LA 레이더스와 계약했으나 시범경기에서 3개의 필드 골 중 2개를 실패한 뒤
더 이상 NFL 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NFL
생활은 짧았지만 대학 풋볼 명문 UCLA에서는 큰 활약을 펼쳤다. 세 번이나 로즈 보울에 출전했고 1984년에는 UCLA가 속한
퍼시픽-10 컨퍼런스 시즌 필드 골 신기록을 세웠다. UCLA 체육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 됐다.
서울에서 출생이라는 기준을 대면 두 명의 NFL 선수가 더 있다. 한국 팬들도 잘 아는 하인즈 워드(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카일 러브(캐롤라이나 팬더스)다.
워드는
모친이 한국인이므로 한국계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1998년 피츠버그에서 데뷔해 2011년까지 팀의 와이드리시버로
활약했다. 4차례 프로보울에 선정됐고 수퍼보울 MVP에도 올랐다. 개인 통산 1만 2,083리시빙 야드(팀 기록)과 85개의
리시빙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단순히 볼을 받아 달리는 와이드리시버가 아닌 동료의 공격을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이로 인해 터프한
태클도 마다하지 않던 마지막 리시버로 워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카일
러브는 부친이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할 때 태어났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지만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계약했고
루키 시즌부터 디펜시브 라인맨으로 경기에 나섰다. 2014년부터는 캐롤라이나 팬더스에서 디펜시브 태클로 뛰었다. 지난해는
10경기 출전해 색 1.5개를 기록했다.
글: 박승현 MBC SPORTS+ 해설위원
내일 아침 9시반 칩스와 패트리어츠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망의 17-18 시즌!!
올시즌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구영회 선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난 패커스 빠니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