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이 열린 30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 다닐 메드베데프(26·러시아·세계 2위)와 라파엘 나달(36·스페인·5위)가 마주보고 섰다.
2세트가 끝났을 때 대회 조직위가 알고리즘으로 계산한 우승 확률은 메드베데프가 96%였다. 그가 1·2세트를 모두 따냈기 때문이다. 반면 나달의 우승 확률은 단 4%.
나달은 나달이다. 나달은 포기를 모른다. 그는 3세트 게임 스코어 2-3 상황에서도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를 허용해 게임을 내줄 위기에 몰렸다. 자칫 경기가 0대3 완패로 끝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런데도 나달은 공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 끈질기게 받아냈고 온 힘을 실어 코트 구석을 공략했다. 결국 듀스로 승부를 끌고갔고, 기어이 방어에 성공했다. 그는 오히려 게임 스코어 4-4에서 메드베데프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해 3세트를 따내며 추격을 시작했다.
기세는 4세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게임 스코어 3-2로 앞선 상황에서 메드베데프의 서브게임을 또 브레이크해 4-2 리드를 만들었다. 자신의 남은 서브게임을 착실히 지켜 4세트를 따냈다. 세트 스코어 2-2. 승부는 원점이 됐다. 5세트로 향했다.
메드베데프는 나달보다 열살이 더 어리지만 지친 기색은 더 역력했다. 휴식 시간마다 허벅지 마사지를 받으며 근육을 풀었지만 메드베데프의 움직임은 3세트부터 눈에 띄게 느려져있었다. 5세트는 오히려 나달이 주도했다. 그는 코트 좌우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스트로크로 지친 메드베데프를 더욱 뛰게하며 괴롭혔고, 게임 스코어 2-2 상황에서 메드베데프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해 기세를 올렸다.
나달이 막판 5-4 상황에서 서브게임을 내줘 위기를 맞닥뜨리긴 했지만, 5-5에서 시작한 메드베데프의 서브게임을 듀스 접전끝에 빼앗아 6-5로 앞서갔다. 마지막 서브게임은 서브 에이스 1개를 포함해 러브 게임으로 완벽하게 끝냈다. 세트 스코어 3대2(2-6 6-7<5-7> 6-4 6-4 7-5) 나달의 승리. 그렇게 나달은 21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쟁취했다. 남자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는 최초다.
나달은 유독 호주오픈과 인연이 없었다. 2009년 로저 페더러(41·스위스)를 꺾고 한 차례 우승했지만 이후엔 준우승만 4번(2012·2014·2017·2019)했다. 하지만 13년만에 호주오픈 트로피를 다시 들면서 ‘더블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에 성공했다.
작년 US오픈에서 우승한 메드베데프는 이번 호주오픈을 우승하면 남자 프로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첫 메이저 우승 이후 연달아 우승을 추가하는 첫번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 새 역사를 메드베데프는 한때 손에 반쯤 넣었지만 결국 놓쳐버렸다. 그는 2년 연속 호주오픈 준우승에 만족했다.
나달은 우승을 확정짓자 라켓을 팽개치고서 코트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17년 전 발바닥 관절이 변형돼 고통을 야기하는 ‘뮐러-와이즈 병’이 왼발에 생겨 통증과 끝없이 싸워왔다. 불과 두달 전만해도 투어를 중단한 채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자신과의 투쟁을 선택해 호주에 왔고, 그는 스스로를 이겨냈다.
나달은 메드베데프와 5시간 24분간 싸웠다. 결승 경기가 다 끝났을 때 호주오픈의 시계는 오전 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기 내내 “바모스 라파(Vamos Rafa)!”를 외쳤던 로드 레이버 아레나 관중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고, 더러는 나달과 같이 울었다.
나달은 이번 우승으로 상금 287만5000호주달러(약 24억3000만원)를 받는다. 준우승자 메드베데프는 상금 157만5000호주달러(약 13억3000만원)을 받는다.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는 이번 호주오픈에 참가만 했다면 우승 후보 0순위로 거론됐을 테지만 백신 거부와 코로나 확진 증명서 조작 논란을 빚다가 대회 개막 전날 호주에서 추방됐다. 그는 나달이 새 역사를 쓰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봤다. 메드베데프가 전년도와 똑 같은 성적을 내 추가 랭킹 포인트를 만들지 못한 까닭에 현 세계랭킹 1위는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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