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영화->원작 루트로 접한 일본 기자분이 원작 읽으면서 한권씩 리뷰글 올린 블로그에서 가져옴
~농최날~


정대만, 최악의 남자. 동정의 여지 없음

이렇게 착한애가 왜

이거 명장면이잖아
~상양전~

아 왠지 정대만 응원하고 싶어졌어.........
그렇게 무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양호열과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나....!
~능남전~


정대만의 안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좋다!
어라 나 정대만 좋아하네 이거 뭐야

정대만이 귀여워 보여 뭐야
사실은 다정하고 좋은 애잖아


이런 거 좋아.........
~산왕전~

이제 그냥 완전 정대만 좋아함


정대만의 존재가 눈부시다
이노우에 선생님, 정대만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까지 읽은 후 각 캐릭터 리뷰 중 정대만 부분

정대만
최악이었던 첫인상에서, 정말 정말 좋아하는 존재가 된 캐릭터.
한 캐릭터에게,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가진 적이 없었다.
과거를 뉘우치고,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좋아하는 농구를 놓지 않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왜 난 그렇게 헛된 시간을..."
"여기서 무언가 해내지 못하면 난 그냥 어리석은 바보에 지나지 않아"
그에겐 유약한 남자가 발하는 신기한 색기가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고나서 정대만에 대한
장문의 리뷰를 또 따로 쓰심ㅋㅋ

용서받은 남자, 정대만
정대만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받은 남자다. 일찍이 성대하게 저지른 복귀에서, 주변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용서받으며, 다시 농구를 하고 있다. 무리하게 좋은 경기 결과를 내려고 하지만, 잘될 때도 있고,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본인은 늘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한다. 슬램덩크를 읽으면서, 정대만을 용서하고 받아준 북산 농구부가 좋았고, 농구부로 돌아와 악착같이 만회를 하려는 정대만의 마음가짐이 좋았다. 그의 약하고 못난 부분이, 나는 좋다.
놀라운 점은 슬램덩크의 주요 캐릭터인 정대만은 원래 농구를 할 예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싸움을 그리고 있는 사이에, 역시 좋아졌다"는 작가 본인의 말을 생각해보면, 정대만이 불량집단을 이끌고, 농구부가 연습을 하고 있는 체육관에 왔을 때에도 정대만이 원래 농구부이고 사실은 복귀하고 싶어한다는 전개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대만의 체육관 사건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을 쓴 긴 이야기이다. 나는 굉장히 긴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노우에 작가는 "이상하게 싸움이 길어져서"라고, 왠지 남일처럼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싸움이 길어진 건 작가가 아니라 캐릭터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정대만이라는 캐릭터가 이노우에 작가에게 "나에게 싸움이 아니라, 농구를 시키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지 않아?"라고 어필한 결과, 그를 서둘러 기용한 것처럼 보인다. 체육관사건은, 정대만을 농구부에 넣을지 어떨지 정하는 오디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조차 예상치 못한 형태로 북산 농구부의 마지막 주전자리를 차지한 정대만. 그가 농구와 멀어진 이유도, 물론 나중에 추가된 설정이다. 그러나 정대만이 한때 농구와 멀어졌었다는 설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훌륭하게 이야기와 맞아떨어지고, 작품에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대만이 이렇게 깊이 있는 캐릭터가 된 것에 가장 놀란 사람은 이노우에 작가 본인이지 않을까.
다른 북산 멤버들 채치수,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는 처음부터 존재이유와 방향성이 확실히 정해진 캐릭터였지만, 정대만은, 출발직전 버스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한 승객, 늘 방황하는 뿌리없는 잡초 같은 인물로 보인다. 그 점이 나는 좋았다. 항상 과거의 자신을 나무라고 후회하면서 농구를 놓지 않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이노우에 작가가 정대만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슬램덩크 캐릭터들이 처음엔 별로였던 정대만을 점점 좋아하게 된 것도 마음에 남는다. 연습하는 정대만을 바라보며 "고집도 자존심도 버리고 농구부에 돌아온 거야. 언젠가 북산에 없어서는 안될 남자가 될 거라고 믿어, 난"이라고 생각하는 권준호. 관객석에서 북산의 시합을 보며 "그땐 화났었지만, 지금은 좋아해!"라고 외치는 양호열. 정대만에 대해 "예전엔 혼란을, 지금은 지성과 비장의 무기인 3점슛을"이라고 말한 안선생님.
나 자신도 만화를 보는 사이, 정대만은 최악이었던 첫인상에서 가장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로 크게 바뀐,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것은 정대만이 다른 네 사람과 달리 우연히 농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모브캐릭터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를 그린 것은 23세에서 29세 사이다. 만화가로서 가장 성장한 시기였고, 당시엔 그리면 그릴수록 잘 그려지는 한창 실력이 느는 상태였다고 한다. 만화가로서 이노우에 작가의 성장은, 이야기 속 강백호의 성장과 비례한다. 분명 이노우에 작가도 나날이 성장하는 자기자신을 느끼며 만화를 그렸을 것이다.
한편, "만약, 지금 나이(당시 41세)에 슬램덩크를 그린다면?" 하고 이토 시인이 묻자, 이노우에 작가는 "고등학교 부활동을 하는 이 아이들의 느낌을, 지금은 그릴 자신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넓어져 이 아이들처럼 '꼭 이긴다!'는 것이 믿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슬램덩크는 20대 만화가만이 그릴 수 있는 올곧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투지 넘치는 스포츠만화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재밌는 대목이다. 승리를 믿고 돌진하는 뜨거운 북산 멤버들 중에, 혼자, 방황하는 나약한 남자를 집어 넣는 균형감각이 20대의 이노우에 작가에겐 있었다. 그것이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노력, 승리라는 긍정적인 테마로 매듭지을 수 없는 무언가를, 정대만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노우에 작가는, 정대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보다 복잡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정대만이 자신을 탓하거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그늘을 가진 인물묘사가 좋다. 경기 중 체력이 다해, 포카리스웨트 캔을 딸 힘조차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왜 난 그렇게 헛된 시간을..."하고 고뇌하는 모습. 슬램덩크엔 정대만의 약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대만처럼 항상 멀리 돌아가기만 하는 나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이것저것 뉘우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등장인물이 주변사람들에게 용서받아 농구를 계속하며, 하나 남은 특기인 3점슛을 넣는 순간, 나는 왠지 나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전문 https://note.com/campintheair/n/ne2d336a562f4

용서받은 남자, 정대만
정대만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받은 남자다. 일찍이 성대하게 저지른 복귀에서, 주변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용서받으며, 다시 농구를 하고 있다. 무리하게 좋은 경기 결과를 내려고 하지만, 잘될 때도 있고,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본인은 늘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한다. 슬램덩크를 읽으면서, 정대만을 용서하고 받아준 북산 농구부가 좋았고, 농구부로 돌아와 악착같이 만회를 하려는 정대만의 마음가짐이 좋았다. 그의 약하고 못난 부분이, 나는 좋다.
놀라운 점은 슬램덩크의 주요 캐릭터인 정대만은 원래 농구를 할 예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싸움을 그리고 있는 사이에, 역시 좋아졌다"는 작가 본인의 말을 생각해보면, 정대만이 불량집단을 이끌고, 농구부가 연습을 하고 있는 체육관에 왔을 때에도 정대만이 원래 농구부이고 사실은 복귀하고 싶어한다는 전개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대만의 체육관 사건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을 쓴 긴 이야기이다. 나는 굉장히 긴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노우에 작가는 "이상하게 싸움이 길어져서"라고, 왠지 남일처럼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싸움이 길어진 건 작가가 아니라 캐릭터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정대만이라는 캐릭터가 이노우에 작가에게 "나에게 싸움이 아니라, 농구를 시키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지 않아?"라고 어필한 결과, 그를 서둘러 기용한 것처럼 보인다. 체육관사건은, 정대만을 농구부에 넣을지 어떨지 정하는 오디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조차 예상치 못한 형태로 북산 농구부의 마지막 주전자리를 차지한 정대만. 그가 농구와 멀어진 이유도, 물론 나중에 추가된 설정이다. 그러나 정대만이 한때 농구와 멀어졌었다는 설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훌륭하게 이야기와 맞아떨어지고, 작품에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대만이 이렇게 깊이 있는 캐릭터가 된 것에 가장 놀란 사람은 이노우에 작가 본인이지 않을까.
다른 북산 멤버들 채치수,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는 처음부터 존재이유와 방향성이 확실히 정해진 캐릭터였지만, 정대만은, 출발직전 버스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한 승객, 늘 방황하는 뿌리없는 잡초 같은 인물로 보인다. 그 점이 나는 좋았다. 항상 과거의 자신을 나무라고 후회하면서 농구를 놓지 않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이노우에 작가가 정대만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슬램덩크 캐릭터들이 처음엔 별로였던 정대만을 점점 좋아하게 된 것도 마음에 남는다. 연습하는 정대만을 바라보며 "고집도 자존심도 버리고 농구부에 돌아온 거야. 언젠가 북산에 없어서는 안될 남자가 될 거라고 믿어, 난"이라고 생각하는 권준호. 관객석에서 북산의 시합을 보며 "그땐 화났었지만, 지금은 좋아해!"라고 외치는 양호열. 정대만에 대해 "예전엔 혼란을, 지금은 지성과 비장의 무기인 3점슛을"이라고 말한 안선생님.
나 자신도 만화를 보는 사이, 정대만은 최악이었던 첫인상에서 가장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로 크게 바뀐,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것은 정대만이 다른 네 사람과 달리 우연히 농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모브캐릭터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를 그린 것은 23세에서 29세 사이다. 만화가로서 가장 성장한 시기였고, 당시엔 그리면 그릴수록 잘 그려지는 한창 실력이 느는 상태였다고 한다. 만화가로서 이노우에 작가의 성장은, 이야기 속 강백호의 성장과 비례한다. 분명 이노우에 작가도 나날이 성장하는 자기자신을 느끼며 만화를 그렸을 것이다.
한편, "만약, 지금 나이(당시 41세)에 슬램덩크를 그린다면?" 하고 이토 시인이 묻자, 이노우에 작가는 "고등학교 부활동을 하는 이 아이들의 느낌을, 지금은 그릴 자신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이 넓어져 이 아이들처럼 '꼭 이긴다!'는 것이 믿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슬램덩크는 20대 만화가만이 그릴 수 있는 올곧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투지 넘치는 스포츠만화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재밌는 대목이다. 승리를 믿고 돌진하는 뜨거운 북산 멤버들 중에, 혼자, 방황하는 나약한 남자를 집어 넣는 균형감각이 20대의 이노우에 작가에겐 있었다. 그것이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노력, 승리라는 긍정적인 테마로 매듭지을 수 없는 무언가를, 정대만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노우에 작가는, 정대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보다 복잡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정대만이 자신을 탓하거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그늘을 가진 인물묘사가 좋다. 경기 중 체력이 다해, 포카리스웨트 캔을 딸 힘조차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왜 난 그렇게 헛된 시간을..."하고 고뇌하는 모습. 슬램덩크엔 정대만의 약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대만처럼 항상 멀리 돌아가기만 하는 나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이것저것 뉘우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등장인물이 주변사람들에게 용서받아 농구를 계속하며, 하나 남은 특기인 3점슛을 넣는 순간, 나는 왠지 나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전문 https://note.com/campintheair/n/ne2d336a562f4
ㅊㅊ - ㅎㅇㄱ
퍼온 글이고 좋았던 문장에 볼드넣음..... 첨엔 존나 웃으면서 읽다가 스크롤 내릴수록 오열함ㅠㅠㅠㅠㅠ
기자라서 그런가 표현 다 미쳤고 내가 막연히 느끼던 생각들이 다 정리된 느낌임 띵문 대잔치ㅠㅠㅠㅠㅠㅠㅠ
이노우에 선생님, 정대만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2233445566778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