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꼭 같지만은 않다. 모든 비극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https://img.theqoo.net/jBBdr
나는 개인적으로 안감독 조재중 트라우마의 가장 큰 피해자가 채치수라고 생각한다. 채치수는 안감독의 부재로 인해 나이에 비해 과중한 짐을 짊어져야 했다. 출산 휴직으로 감독이 자리를 비워 감독이자 선수를 겸해 이름조차 김수겸이 된 상양의 주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북산의 감독 부재는 슬램덩크를 통틀어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 격투 농구의 명가 풍전조차도 노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김영중 감독이 그 뒤를 이어 공백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노감독의 영향을 받은 풍전 선수들이 김감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심지어 재단에서도 이리저리 농구부를 흔드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김감독은 풍전 선수들의 곁을 지켰다. 반면 북산은 농구부가 유명하지도 않은 데다 선수층도 두텁지 않은데 감독마저 수시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인다. 채치수의 발목을 잡던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북산의 농구부를 이끌어왔던 것은 채치수와 권준호 그리고 한나 이 세 사람이었다.
농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좋아하는 것을 제일 잘하고 싶다.
이 단순한 바람이 채치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타이밍이 엉망진창이다. 강백호나 송태섭이 각자의 사정으로 농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의 충족이 지연된다면 채치수의 문제는 자신이 아닌 온전히 팀과 타이밍에 있었다.
북산 입학 초반 이미 완성형 천재였던 정대만에 비해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지만 실력은 다소 어설픈 상태로 등장한 채치수. 스크린이 뭔지도 몰라 정대만에게 농구 초짜라는 평을 듣던 채치수가 불과 1년도 안 돼서 중학 MVP 정대만을 거의 봉쇄하고 투닥거릴 정도로 성장했던 걸 보면 이는 그동안 그가 적절한 코치나 감독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북산 입학 이후 안 감독의 (방임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과거 맹장답게 기초 훈련이나 연습은 체계적으로 진행시켰을 거라는 정도는 믿어보겠다 이 영감탱..) 관리와 시합 출전 경험의 축적이 그를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일찍 채치수의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고교 리그 데뷔가 얼마나 화려해질 수 있었을지를 아쉽게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됐든 채치수는 체계적인 농구 교육 없이 북산에 입학했고 안 감독이 강백호와 서태웅을 만나기 전에는 거의 의욕상실 상태였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그를 2년 동안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역시 다름 아닌 수많은 실전 경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산의 경기력을 감안해 봤을 때 어떤 팀을 매치업하더라도 하나같이 상대적으로 강자였을 확률이 높다. 아마도 채치수는 자팀 내의 연습과 경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열망을 타교와의 실전 경기를 통해 쏟아냈을 것이고 자체의 기본 멘탈과 자기 확신이 꽤 강고한 편이라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경기력도 함께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확률이 높다. 경기를 치를 수록 그는 성장한다. 그것도 쾌속으로. 바로 그 정대만이 초조함을 느낄 만큼.
월등한 피지컬과 자신의 장점을 빠르게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두뇌 그리고 성실함. 채치수를 볼 때면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인재가 단지 함께 뛰어 줄 동료가 없어 성장이 지체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능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북산이 약체로 빌빌거릴 때조차 다른 학교 감독들에게 북산은 채치수가 멱살 잡고 끌어가는 원맨팀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뛰어난 재능. 그러나 정작 그가 속한 팀 사정은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은 상황 앞에서는 채치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패스조차 어려운 팀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좋은 채치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북산의 문제점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
(후략)
원문 링크 : https://brunch.co.kr/@soulandu/56
https://img.theqoo.net/jBBdr
나는 개인적으로 안감독 조재중 트라우마의 가장 큰 피해자가 채치수라고 생각한다. 채치수는 안감독의 부재로 인해 나이에 비해 과중한 짐을 짊어져야 했다. 출산 휴직으로 감독이 자리를 비워 감독이자 선수를 겸해 이름조차 김수겸이 된 상양의 주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북산의 감독 부재는 슬램덩크를 통틀어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 격투 농구의 명가 풍전조차도 노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김영중 감독이 그 뒤를 이어 공백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노감독의 영향을 받은 풍전 선수들이 김감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심지어 재단에서도 이리저리 농구부를 흔드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김감독은 풍전 선수들의 곁을 지켰다. 반면 북산은 농구부가 유명하지도 않은 데다 선수층도 두텁지 않은데 감독마저 수시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인다. 채치수의 발목을 잡던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북산의 농구부를 이끌어왔던 것은 채치수와 권준호 그리고 한나 이 세 사람이었다.
농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좋아하는 것을 제일 잘하고 싶다.
이 단순한 바람이 채치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타이밍이 엉망진창이다. 강백호나 송태섭이 각자의 사정으로 농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의 충족이 지연된다면 채치수의 문제는 자신이 아닌 온전히 팀과 타이밍에 있었다.
북산 입학 초반 이미 완성형 천재였던 정대만에 비해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지만 실력은 다소 어설픈 상태로 등장한 채치수. 스크린이 뭔지도 몰라 정대만에게 농구 초짜라는 평을 듣던 채치수가 불과 1년도 안 돼서 중학 MVP 정대만을 거의 봉쇄하고 투닥거릴 정도로 성장했던 걸 보면 이는 그동안 그가 적절한 코치나 감독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북산 입학 이후 안 감독의 (방임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과거 맹장답게 기초 훈련이나 연습은 체계적으로 진행시켰을 거라는 정도는 믿어보겠다 이 영감탱..) 관리와 시합 출전 경험의 축적이 그를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일찍 채치수의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고교 리그 데뷔가 얼마나 화려해질 수 있었을지를 아쉽게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됐든 채치수는 체계적인 농구 교육 없이 북산에 입학했고 안 감독이 강백호와 서태웅을 만나기 전에는 거의 의욕상실 상태였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그를 2년 동안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역시 다름 아닌 수많은 실전 경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산의 경기력을 감안해 봤을 때 어떤 팀을 매치업하더라도 하나같이 상대적으로 강자였을 확률이 높다. 아마도 채치수는 자팀 내의 연습과 경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열망을 타교와의 실전 경기를 통해 쏟아냈을 것이고 자체의 기본 멘탈과 자기 확신이 꽤 강고한 편이라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경기력도 함께 비약적으로 향상됐을 확률이 높다. 경기를 치를 수록 그는 성장한다. 그것도 쾌속으로. 바로 그 정대만이 초조함을 느낄 만큼.
월등한 피지컬과 자신의 장점을 빠르게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두뇌 그리고 성실함. 채치수를 볼 때면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인재가 단지 함께 뛰어 줄 동료가 없어 성장이 지체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능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북산이 약체로 빌빌거릴 때조차 다른 학교 감독들에게 북산은 채치수가 멱살 잡고 끌어가는 원맨팀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뛰어난 재능. 그러나 정작 그가 속한 팀 사정은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은 상황 앞에서는 채치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패스조차 어려운 팀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좋은 채치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북산의 문제점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
(후략)
원문 링크 : https://brunch.co.kr/@soulandu/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