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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타카야나기 아카네 2nd 사진집 「언젠가, 떠올리고 싶은 것」 인터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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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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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Interview

 

11개의 키워드로 돌아보는

타카야나기 아카네, SKE48에서의 11년간


2009년 3월 29일, 「SKE48 2기생 오디션」에 합격.

그 이래로 약 11년간, 그룹을 견인해 온 츄리의, SKE48 멤버로서의 라스트 인터뷰.



1. 오디션

 

ー 1st 사진집의 인터뷰에서는 SKE48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여기서는 들어갔을 때부터에 이야기를 해 봅시다. 오디션에 응모한 건, 고등학교 3학년에 진급하기 직전의 봄방학이었죠?

 

 네. 요리 전문학교에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음식에 관계된 일에 취업하고 싶었기 때문도 있고, 아직 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SKE48 오디션에 응모한 건 엄마께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돌이 유행하고 있지 않았던 시대였고, 아빠는 연예계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정말 괜찮겠어?" 라며 걱정해 주셨지만, "나고야에서 활동할 수 있고, 마지막 기회니까 응모해 보고 싶어." 라고 설득했습니다. 저는 고향으로부터 별로 나가지 않고, 나고야역에도 거의 가 본 적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고향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오디션에 응모했습니다.


ー 오디션에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력서의 의지를 쓰는 란에, 'SKE48을 이끌어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썼습니다. 그건 1기생 오디션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아키모토 선생님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강하게 가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2차 면접에서 "타카야나기 씨와 만날 일은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라는 질문을 들은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웃음). 아마 저를 시험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ー 최종 심사는 어땠나요?

 

 댄스 심사는 <만나고 싶었어>였는데요, 그 무렵 AKB48 분들이 <10년 벚꽃>을 발매하셨기 때문에 주위의 아이들은 <10년 벚꽃>을 추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서 이미 안무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한순간 위험해, 라고 생각했지만, <만나고 싶었어>라서 안심했습니다(웃음). 저는 안무가 바로 몸에 들어오는 타입이라서 마을 내의 나루코오도리나 봉오도리도 바로 외울 수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어>도 바로 외워서 주위의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라이벌이지만요(웃음).


ー 댄스 심사 후에는 가창 심사였습니다.

 

 <하나미즈키>를 불렀습니다. 정말로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아키모토 선생님의 얼굴을 확실히는 기억하고 있지 않아서요(웃음). 눈 앞에 계시면서 발로 리듬을 타셨던 분이 선생님이셨습니다. "와! 리듬을 타면서 들어 주고 계셔!" 라고 감격해서, 차분하게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ー 그런 아키모토 선생님이 센터 후보로서 38번을 들었다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38번은 타카야나기 씨의 번호였습니다.

 

 그건 다른 분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앞에서 노래한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와 노래방에 가도 탬버린을 치거나 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여서(웃음). 유일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게 <하나미즈키>였기 때문에, 제 어디가 선생님의 인상에 남았던 걸까 모르겠네요.


ー 가족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합격해 버렸어..." 라고 엄마께 전화했더니, "에에~~!" 라고 놀랐습니다. 문제는 아빠께 말씀드리는 거였습니다. 일단은 말씀드리지 못했었지만, 처음으로 며칠간 집을 비우는 타이밍에 이야기했더니, "그거 정말로 괜찮겠어?"라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엄마가 "예전으로 말하자면 오냥코클럽이야"라고 설명해 주셔서 어떻게든 납득은 해 주셨습니다.



2. 레슨

 

ー 초기에 있었던 일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첫 피로는, AKB48 분들의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SKE48 1기생의 백댄서로서였습니다. 곡은 <SKE48>. 댄서이기 때문에 마이크를 잡는 일도 없이, 그저 오른손을 들 뿐이었습니다. 그 때는 고등학교 졸업이 걸려 있어서 학교를 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업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나오고서는 레슨에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2기생과 1기생의 첫 만남에 저는 참가하지 못했어요. 제대로 만났던 것은 보텀 라인의 <첫 과외 수업>의 회장이었습니다.


ー 레슨은 마키노 안나 선생님?

 

 전부 봐 주신 건 아닌데요, <SKE48>을 체크해 주셨습니다. "안무를 하지 않고 이 곡을 표현해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관람차 흉내나 미소카츠나 키시멘을 먹는 포즈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배웠던 건, '어디까지나 안무는 가사를 표현하기 위핸 것. 무엇도 전하지 못한다면, 그 안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원이 춤추고 있는 중에,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나누는 레슨도 있어서, 바야흐로 전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해해서, 참가했습니다.



3. 동기

 

ー 2기생은 연령이 각각 많이 다르네요.

 

 제게는 동갑 멤버가 없었습니다. 최연소는 12살에, 최연장은 23살. 2기생은 중학생이 많고, 성인인 멤버는 몇 명 정도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쪽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말을 걸어 주었던 것은 (사이토)마키코와 아카에다 리리나. 오디션에 합격했던 순간부터 절친 같은 감각으로 말을 걸어 주어서, "○○라고 불러 줘~" 같은. 사교성이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ー 지금도 교류가 있는 동기는?

 

 (후루카와)아이리와 (무카이다)마나츠와는, '마나츄링(まなちゅりん)'이라는 그룹이 있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이시다)안나가 나오는 부타이를 보러 간 적도 있습니다. 2기생은 24명이 합격했는데요(이 중 2명이 활동 사퇴), 유대가 강해진 건 마지막 6명이 되었을 때부터였으니까, 최근 3년 정도일까요. 저, (우치야마)미코토, 마키코, 안나, (카토)루미, 쿙(이소하라 쿄카)가 되었을 때부터 겨우 2기생이 서로 마음을 터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고생이었습니다. 2기생은 초기부터 싸우는 일도 없이, 평화로운 기수였습니다. 1기생은 싸움도 잦고, 선생님께 혼나가며 유대를 키워 가는 모습이 동영상에 남아있지만, 2기는 그런 게 없어서. 어른 멤버는 어린 멤버를 아이로서 보고 있었고, 어린 멤버는 어른 멤버를 어른으로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말다툼할 일이 없었습니다.


ー 1기생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1기생은 SKE48을 자신들이 만들어 세웠다는 프라이드가 있어서, 2기생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별로 웰컴은 아니었습니다. 상냥하게 대해 주었던 분은 (마츠이)쥬리나 씨와 (오오야)마사나 씨 정도였으려나. "귀엽네~"라고 2기의 어린 아이들을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마사나 씨는요(웃음). 그 밖에도, 정신적으로 어른이었던 타카다(시오리) 씨, 데구치(아키) 씨, 오노(하루카) 씨도 잘 대해 주셨습니다.


ー 1기생은 댄스에 관련해서 2기생에게도 어느 정도의 레벨을 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스테이지에 서고부터는, 여기까지는 해 줬으면 좋겠다는 허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가끔 팀 S와 같이 춤추는 일이 있었는데요, 레벨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엄청나게 연습했었네요. 무서웠지만, 이쪽에도 '나가고서부터는 해 보일 거야' 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오기로 했습니다. 잃을 것이 없었던 무쌍기였네요.


ー 당시의 2기생은 1기생과 비교되었었네요.

 

 팀 S의 오리지널 공연 「손을 잡으면서」를 2기생이 하게 되면서부터는, 특히 비교되었습니다. 그게 나쁜 추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저희들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느낌은 있습니다.


ー 추억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만나고 싶었어」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레슨입니다. <JESUS>를 한 명이라도 틀렸다간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연습으로, 하루 종일 <JESUS>였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틀린 아이는 "죄송합니다, 틀렸습니다!" 라고 선생님께 신고했습니다. 선생님께 들키지 않았는데도요. "오오, 지저스..."라는 느낌이었습니다(웃음).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에, 2기생 10주년 공연(2019년 3월)에서도 <JESUS>를 했습니다.


ー 1기생에서는 마츠이 레나 씨와 사이가 좋아졌네요. 어떤 경위였나요?

 

 같이 선발에는 들어갔지만, 레나 씨는 혼자 있는 타입이었습니다. 저는 동기와 같이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깊은 관계는 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오키도키> 때, 사이가 좋았던 동기 두 명이 선발 탈락하게 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으니 저는 혼자서 있었습니다. 선발 멤버와 잘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따금 이동하는 버스에서 레나 씨와 옆자리가 되어서 "지금이라면 상담할 수 있을지도" 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레나 씨는 "나도 그래" 라고. 그 때부터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공통의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컸네요. 프라이빗을 같이 보낸 선배는 레나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츄리쨩, 츄리쨩" 이라고 말을 걸어 주게 되었을 때부터 저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습니다.


ー 레나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누구와도 묶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귀여운 후배가 생겼을 때는 "귀엽네~"라고 아껴 주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달랐습니다. 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스토익한 타입으로, 누군가와 장난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블로그를 쓰는 시간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서비스 정신 왕성하게,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동갑이긴 하지만, 생각하는 방법은 어른이었네요.


ー 졸업 이야기도 전했었죠.

 

 몇 년도 전에 이야기는 했었어서, "졸업하면 여행 가자"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레나 씨와는 프라이빗의 이야기는 하지만, 일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4. 선발총선거

 

ー 총선거에 관해서는 꽤 많은 추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전부 참가하셨었죠.

 

 여기까지 길게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총선거가 있었으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선발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으니까요. 자신이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했던 건, 4회째(2012년=24위)와 5회째(2013년=23위)입니다. 맨 처음 해(2009년)에는 랭크인도 하지 못하고 끝났지만, 2회째(2010년=35위)는 랭크인을 할 수 있어서 그 이후에도  순조롭게 순위는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4회째와 5회째에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에 빠졌습니다. '내 무엇이 좋지 못했던 걸까, 전력으로 하고 있는데 말야...'라고 반성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구해 주는 숫자에 이번에는 휘둘리고 있는. 투표로 순위가 정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되고 있었습니다.


ー 첫 랭크인은, 팀 KII의 멤버로서 첫 랭크인인 것도 있었네요.

 

 제 팬 분들뿐만 아니라, "KII의 누군가를 랭크인시키자"라고, 다른 멤버의 팬 분들이 단결해 주셨던 거였어요. 당시에는 아직 팀의 리더는 아니었는데요, 모두가 저를 밀어 주신 것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ー 3회째에는, "저희들에게 공연을 하게 해 주세요!" 라는 명언이 탄생했었죠.

 

 저는 큰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KII는 오리지널 공연을 시작하게 될 거라고, 쇼니치의 일정도 발표되어 있었지만, 연기의 연속. 좀처럼 곡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연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키모토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편지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여기밖에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모두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당시의 KII는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공연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골이 보이지 않아서……. 당시는 48그룹의 막내 팀이 KII로, 48그룹에서 2년 이상 오리지널 공연을 받지 못한 유일한 팀이었기 때문에, 그건 저희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키모토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라고. 총선거에서 부탁해서 안 된다면 그만둘래, 그런 최종 수단이었습니다. 저도 어렸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오리지널 공연은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ー 가장 기뻤던 총선거는?

 

 선발에 들어갔던 해(2015년=14위)입니다. 팬 분들도 멤버도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억이 선명한 건 3년째일지도 모르겠네요. 총선거 후의 악수회에서 이런저런 분이 와 주시게 되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SKE48을 알게 되었다는 분도 늘었네요. 다른 그룹의 팬 분들까지 반향이 있었다는 건 그 해가 제일이었으려나.



5. 「라무네를 마시는 법」 공연

 

ー 2011년, 총선거에서의 어필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시작된 것이 「라무네를 마시는 법」 공연이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받았던 곡은, <조짐>이었습니다. 곡은 집에서 들었는데요, 엄마도 울었습니다(웃음). 잠시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들으면서 울어 버렸습니다. 졸업 콘서트의 타이틀에도 들어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이 곡에 지탱받았고, 가사도 멋져요.


ー 그 후도 차례로 곡이 보내졌습니다.

 

 네. 쇼니치를 맞을 때까지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12곡을 3일 안에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무대에서는 멤버와 서로 이야기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겨우 받아낸 곡이니까, 안무를 외울 때는 한 곡 한 곡 마음을 담았습니다. 연애곡이 없고, 우정곡이 많은 것이 특징이네요, 각각의 곡이 우리에게 쌓아올려지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위닝 볼>은 고시엔에 첫 출장이 결정된 야구부의 곡인데, 우리가 나갈 순서가 왔다는 의미가 겹쳤고, <기다렸던 Set list>는 그런 저희의 모습이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기다렸던~>에는, 오리지널 공연이 갖고 싶어서 선생님께 편지를 썼을 때의 말들이 조금씩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혹시 (그 말들을)써 주셨던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ー 무대에 나가기 전의 기분은?

 

 댄스 선생님이, "전혀 안 돼!"라며 나가 버리셨던 것이 추억입니다. 그런 해프닝이 공연 전에는 자주 있지만, 거기에 따라 기합이 들어갔습니다. 멤버끼리 이야기를 나눈 것은, '팬 분들이 앵콜을 외치고 싶어지는 퍼포먼스를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것이었습니다. 라는 것은, 공연의 타이들에 앵콜 후의 곡명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앵콜이 있는 마지막까지 노래할 수 없다면, 타이틀의 곡을 노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ー 타카야나기 씨의 대명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크로스>도 이 공연의 유닛곡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유닛곡은 <핀란드 미라클>이었습니다. 그 후에 도착한 <크로스> 쪽이 더 와닿았던 걸까요, 변경이 되었습니다. 쇼니치 전에는 엄청나게 불안했습니다. 이 곡을 능숙하게 노래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귀여운 유닛곡을 담당해왔던 제게는 <크로스>의 멋진 이미지가 없고……. 라고 생각해 버려서. 댄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 주셨던 움직임이 무척 멋져서, 더한 불안에 습격당했습니다.


ー 공연 쇼니치는 대성공으로, 당시의 최고 배율이었네요. 그런 시절을 되돌아본 때는 있나요?

 

 당시 쪽이 모두 더 팽팽하게 열심이었네요. 2기생은 평화로웠지만, KII에 3기생도 들어왔기 때문에. 지금은 팽팽한 느낌은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무대 뒤에서는 평화로운 거예요. 예전에는 멤버끼리 더 많이 싸웠습니다. 선발 다툼에 있어서도 그렇고, 모두 '내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블로그 같은 곳에 숨기지 않고 전하는 일이 많았으려나. 지금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마음을 숨겨가며 적는 시대가 되었네요.



6. 리더

 

ー 2010년, KII의 리더에 취임했습니다.

 

 2회째의 총선거 당일의 일이었습니다. 랭크인할 수 있을까 모르니까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 본방 직전, 멤버에게 집합이 걸렸습니다. 유아사(히로시) 지배인(당시)로부터, "오늘부터 타카야나기를 리더로 하려고 하는데, 어떤가?"라는 발표가 있어서. 사전에 알림도 없었고, "이 타이밍에 그런 큰 일을 발표하는 거야?" 라는 것도 있고(웃음). 저는 KII의 윗세대와 아래세대를 묶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지명의 이유였습니다.


ー 스스로도 리더가 될 거라는 예감은 있었나요?

 

 그렇게 되려나, 라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다만, 취임의 타이밍이 최악이라서, 그 후, 회장의 비상구로 나가 오열(웃음). 그런 모습을 멤버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매니저 분이 찾으러 오셔서 "이런 곳에서 울어서 어쩔 거야!" 라는 말을 하셔서, 과호흡이 되었습니다(웃음).


ー 왜 눈물이 나왔던 걸까요.

 

 당황이라고 생각해요. 불안한 타이밍에 발표되었다는 것도 있고, 게다가 멤버는 제가 리더라는 것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는 두려움이 겹쳐졌던 거겠죠. 본방 직전, 스타트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매니저 분에게서, "아카네답게 하면 돼"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괜찮은 상태로 돌아와서 본방을 향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KII로서 처음으로 랭크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자신이 리더로서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ー 리더가 되어서 좋았나요?

 

 좋았습니다. 리더로 지명받고부터는 경치가 달라졌습니다. 레슨할 때도, 자신이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다른 멤버도 지적할 수 없고, 평소와 상태가 다른 멤버는 없는가 어떤가 신경쓰게 되었습니다. 부활동에서는 부장은 맡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세계였기 때문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ー KII에는 1기생의 사토 미에코 씨와 사토 세이라 씨도 있었죠.

 

 리더는 미에삐(사토 미에코)가 할 일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팀이 발족하고 1년 정도 리더가 없었는데, 그 기간 동안 미에삐가 원진의 목소리를 내 주었기 때문에. 리더에 취임하고 첫 공연에서, 미에삐는 "오늘부터 아카네가 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탁했지만, "1년간 봐 왔잖아. 스스로 생각해 봐"라는 상냥한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저 나름의 방식을 발견하길 바랐던 거라고 생각해요.


ー 납득할 수 있는 팀은 만들 수 있었나요?

 

 「라무네를 마시는 법」을 받을 때까지는, 어딘가 어설프게 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미에삐는 '사토 미에코 씨'라고 불렀고요(웃음). 1기생 두 분은 2기생이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기생은 의견을 말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으니까. 「만나고 싶었어」 공연의 쇼니치 후, 두 분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들, 나쁜 일 한 걸까"라고 생각해 버려서……. 처음에는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었네요.


ー 그런 상황이 변화한 것은…?

 

 역시 「라무네」를 받고 나서부터네요. 자신의 포지션이 있고, 자신의 곡이 있고, 자신의 의상이 있는. 조금이라도 좋은 공연을 만들자며, 모두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라무네」가 KII를 동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ー 「라무네」에 따라, KII의 이미지도 바뀌었죠.

 

 S가 「제복의 싹」 공연을 시작할 때 게네프로(총연습)를 보러 갔는데요, 무척 감동했습니다. 이것이 신공연을 시작하는 순간이구나, 라고 두근두근거렸네요. '우리들도 언젠가……'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라무네」의 게네프로를 후배들이 보러 와 준 것에 감동했습니다.


ー 리더로서의 다른 추억은?

 

 S와 KII, S와 E라는 느낌으로 두 팀으로 돌았던 투어네요. 어떤 팀도 다른 팀에게 지고 싶지 않으니, 리허설에서도 팽팽했습니다. KII는 "아자, 우리가 나갈 시간이다. 제대로 보여주자!" 같은(웃음). "우리, 좋은 팀이지?" 라며.


ー 2013년 4월에 SKE48이 조각을 발표하고, 신생 KII가 탄생했습니다. 7월부터 시작한 신공연에서도 리더였네요.

 

 거기서 바뀐 기분이 들어요. 그 때까지의 KII는 오리지날 공연이라는 보물을 소중히 하자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깨끗하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조각 후의 팀은 「시어터의 여신」 공연에서 자유로운 연출이 많았던 것도 있고, 그 때까지 고집으로 지켜 왔던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다 아카리와 오오바 미나가 와 주어서, 착실하게 장난치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테이지를 즐기는 법이 넓어진 건 그 때의 KII였습니다. 모두 자신의 팀을 좋아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7. 무대(부타이)

 

ー 처음으로 부타이에 출연한 것은?

 

 2012년의 낭독극 <꼬리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사무소에 소속된 후 바로 생긴 일이었습니다. 매니저 분께 "뭐가 하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받아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답했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러면 부타이를 찾아보자고 이야기가 되어서, 낭독극에 참가시켜 주셨습니다.

 이 경험은, 무척 공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본에 쓰여 있는 구두점에도 전부 의미가 있다'든가, '이 대사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라는 것을 연출가 분께 배웠습니다. 대본의 메모는 그 때 배운 것을 지금까지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ー 10개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셨는데요, 인상에 남아 있는 부타이는?

 

 <AKB49>는 인상적입니다. 낭독극 이외의 첫 무대가 그거였기 때문에. 연출가이신 사노 이사무 씨에게 혼이 났습니다(웃음).

 48그룹이 한 번 했었던 무대의 재연에서, 저는 그걸 보고 감동했기 때문에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카링(스다)가 했었던 오카베 아이 역을 제가 연기하게 되어서. 무척 임팩트 있는 역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구나!' 라며 무척 기뻤습니다.

 다만, 연습은 정말로 하드했습니다. 3분의 신에 3~4시간씩 걸리거나 해서 '이게 부타이의 세계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노 씨가 특별할 뿐이었습니다(웃음). 호통은 일상에, 페트병이 날아다닌 적도 있었고. 그 때의 SKE48에게는 화를 내 주시는 스탭 분도 없어져 있어서, 그런 상황이 저는 싫었기 때문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도 "목소리 내!" 라는 말을 들어서 힘들었지만, 감사밖에 없습니다. 그 경험을 한 멤버는 지금도 꽤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어린 멤버들에게도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ー 당시, 목 상태가 좋지 않았었죠.

 

 부타이에서 큰 소리를 냈던 탓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했다면 나을 수 있었을 거예요.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게 목에 데미지를 주어서, 악수회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힘들었네요. 그 결과, '시오대응'이라는 말도 듣게 되어, 풀이 죽었습니다……. 택시에 타서도 목적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싱글 녹음에서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담당해주시는 분께 울며 사과했습니다. 그 상태로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대결절 수술을 했습니다.


ー 부타이로부터 얻은 것은?

 

 부타이의 세계에는 정말로 다양한 분이 계셨습니다. 아이돌도 있고, 성우도 있고. 물론 부타이 배우도요. 같이 식사하러 가면, 모두 연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시간이 정말로 즐거워서,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온 부타이를 보러 와 주신 것이 계기로,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되신 팬 분들도 많이 계셔서. 그것도 기쁜 반응이었습니다.



8. 졸업

 

ー 졸업을 생각하게 된 건 5년 정도 전이라고 들었는데요,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차세대'라는 말이 들리게 될 때부터였습니다. 저는 21살, 22살 정도였는데요, '나는 필요가 없구나' 라고 생각해 버려서. 그러면, 여기에 있는 의미는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 계기입니다. 여배우라는 꿈도 있으니, '내년에는 졸업하자'고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타이밍에 NMB48과의 겸임이 발표되어서 '아직 48그룹에 있어도 괜찮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ー 총선거에 나갈까, 나가지 말까 흔들렸던 시기(2014년)도 있었죠.

 

 한 번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선언해서, 팬 분들이 질려버릴 각오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를 버리는 일 없이 언더 걸즈(31위)에 들어가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일에 마음을 자극받아서, '좋아, 내년은 앞만 보고 가자'고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2015년의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선발 진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포기할 뻔했는데도, 팬 분들은 포기하지 않았던. 그 무렵에, 팬 분들과의 유대가 강하게 된 건. 더욱 팬 분들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해서 팬의 모임을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 전반의 5년은 자신을 위해 달려왔지만, 후반의 5~6년은 팬 여러분과 달린 감각이 있습니다. 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SKE48이 9주년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10년까지는 있자는 마음이 되어 졸업 시기가 조금씩 미뤄지고 있었어요(웃음).


ー 졸업에 관해서, 부모님은?

 

 아빠에게는 직접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웃음). 엄마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이것저것 뒤섞인 틈을 타, "내년 봄에 졸업할 거야"라고 전했더니 "정한 거야?!"라고 놀랐습니다. 졸업을 하는 날에는 제대로 직접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요.


ー 졸업 발표는 2019년 10월 4일 심야의 미드나이트 공연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멤버가 졸업발표를 할 때는 사전에 알리고 하지는 않더라도 발표를 할 장소와 마주하고 싶은 거네요. 미드나이트 공연은 들어 주었으면 하는 멤버가 많이 출연하기 때문에, 그 장소를 골랐습니다. 에고상(에고 유나)가 없었던 것은 걸렸지만……. 현역 멤버 누구에게도 사전에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애에게 말하면, 그러면 이 애에게도...' 가 되어버리니까. 다만, 제 졸업은 언제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졸업할 의사가 있는 것 자체는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팬 분께도, '내년 여름에는 없으려나~' 라고는 말하고 있었고요.


ー 발표하고 나서의 반향은 어땠나요?

 

 트위터에서 졸업 발표를 알렸는데요, 그렇게나 '좋아요'를 눌러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많은 멤버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이 왔고, 트위터에서도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당신입니다' 라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해 주시는 분이 많은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아이돌에 흥미가 없었던 분이 저를 보고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셨다니 대단한 일이죠.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게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 중에는 이제 저로부터 멀어져버린 분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이란, 자신의 팬은 악수회에서 눈 앞에 늘어서 계신 분들밖에 없는 걸까, 하는 착각에 항상 빠져버리기 십상이에요. 그렇지만, 결국 그렇지는 않아. 직접 만날 수 없어도 저를 봐 주시는 분이 이렇게나 계시는구나, 라고.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좀 더 자신을 가져도 좋구나, 라고. 그러니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9. 엄마

 

ー 어머니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집에서는 일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진집이 결정됐어'라든가, 가끔 기쁜 일을 알리는 정도. 선발 안에서 포지션이 떨어지면 '이번에는 뒤쪽이네' 라고 말을 거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때는 솔직해질 수 없어서 '그런 시대니까' 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어서. 엄마는 저보다 저를 더 생각해 주십니다. 제가 걱정되는 거겠죠.


ー 따님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요.

 

 엄마는 제가 연예계에서 살아가는 걸 중시하고 있지 않아요. 이대로 나고야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마저 생각하고 계셔서.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아" 라는 말도 들어요. 그렇지만 저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고, 상담해도 엄마에게 걱정을 끼칠 뿐이니까 집에서 일 이야기는 안 하는 거네요.


ー 지금도 가족과 川 자 모양으로 주무시고 계시죠.

 

 제게 있어서는 그게 당연한 거라서요.


ー 당연한 게 아니에요!

 

 그러려나~ (웃음) 제 방이 창고가 되어서 잘 곳이 없는 것뿐이니까요!


ー 무언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저, 집에서는 정말로 느릿느릿한 인간이에요. 아침은 엄마가 깨우러 와 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고, 밤중까지 거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얼른 자!" 라고 혼나고요. 그런 모습을 언제나 보여 주고 도쿄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었으니까, 외로운 기분이 들게 했을지도 몰라요. 졸업하면 도쿄로 나가게 되어서 더욱 외롭게 하는 게 됩니다. 그래도 역시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서 잘 됐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가장 큰 효도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선은 어딘가에 여행을 데려가고 싶네요. 그것과, 평범히 텔레비전을 틀면 제가 나오는, 그 정도의 활약을 하고 싶습니다.



10. 앞으로

 

ー 졸업 후에는 어떤 자신으로 있고 싶나요?

 

 제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자신으로 있고 싶습니다. 이 11년간, 한 번도 자신에게 납득한 적이 없습니다. 그 때마다 베스트는 할 수 있는 만큼 해왔지만, 그게 일본 전체에 닿았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닝구 무스메 분들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보이지 않는 날은 없었습니다. 계속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긴 아이였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싶습니다. 여배우로서 작품에 나오는 것은 물론, 버라이어티도 나오고 싶고, 드라마의 삽입가를 부르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그런 걸 말하고 있으면, 평생 만족하지 못할 것 같네요(웃음). 팬 분들이 그 때 응원해서 좋았다고 생각해 주실 수 있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결혼하니까 그만둡니다!" 같은 일은 없어요(웃음).


ー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은?

 

 먼저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좋아하기 때문에, 혼자서 해외에 가 보고 싶습니다. 술도 마셔 보고 싶어요! 아이돌일 때는 마시지 않는다는 결심을 저 스스로에게 지워 왔기 때문에,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전하고 싶은 것

 

ー 멤버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저는 같은 스테이지에 서서, 시간을 공유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KII의 후배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요, 그 외에도 멤버와 졸업까지 더 사이좋게 지내고 싶네요. 그렇지만, 단순히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것만으로 마음을 자극받고, 저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나 씨가 졸업할 때, 이제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멤버는 생기지 않는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동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멤버는 후배에게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퍼포먼스의 SKE48〟로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ー 팬 분들께 메세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나 사랑해 주시는구나, 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팬 분들은 저보다 저를 사랑해 주시고 계실 지도 몰라요. 더울 때도 추울 때도, 먼 곳의 이벤트에도 찾아와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무상의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네요. 이렇게나 사랑받을 줄이야, 11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병으로 입원하고 있었을 때, SKE48의 DVD를 보고 삶의 희망이 생겼다는 분도 계십니다. 누군가의 인생의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존재로, 한 명의 여자아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에 감동해서 눈물이 나요……(울음). 

 아이돌이란 좋구나, 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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