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 “사랑을 느끼는 게 사람이 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웰컴투 삼달리> <그녀가 죽었다>에 이어 <나의 해리에게>까지. 정말 꽉 찬 2024년을 보내고 있어요. 언제나 일하는 중이라 언제 쉬냐는 말이 나올 법한데 ‘일’과 ‘쉼’을 잘 조율하고 있나요
공교롭게도 작품 시기가 겹쳤어요. 작품이 연달아 나오는 걸 보고 제가 소처럼 일만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분이 계신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정말 잘 쉬고 있고, ‘워라밸’도 잘 지키고 있거든요.
쉴 땐 뭘 하나요
원래 저는 일이 없을 때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연기도 10년 넘게 해오다 보니 제 인생에 새로운 자극을 줘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새로운 경험 없이 기존에 있는 것만 꾸역꾸역 꺼내 쓰는 건 이미 바닥이 났다는 거죠. 다음 10년을 위해 내 안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근엔 다양한 취미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결과적으로 다양한 취미로 ‘쉼’을 꾸미려는 건 연기를 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겠네요
맞아요. 저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거든요. <철인왕후>에 이은 1인 2역이에요.
<철인왕후>가 한 육체에 두 영혼이 동거하는 이야기였다면 <나의 해리에게>는 한 육체에 두 개의 인격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라서 시청자 입장에선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반면 연기하는 입장에선 차별화가 신경 쓰이지 않았을까요
역할을 떠나 연기 톤이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늘 있어요. 쾌활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나면 다음번엔 감정이 짙은 캐릭터를 찾는 편이에요. <철인왕후>와 <나의 해리에게>의 경우 1인 2역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는데, 네 명의 캐릭터 모두 너무 달라서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어요. 그보다 이번 드라마에서 세심하게 살핀 건 주은호와 주혜리가 시청자에게 소중한 존재로 각인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둘 다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처럼 다른 인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안고 살잖아요. 아직 내 안에 발견되지 않은 내가 있나요
분명히 더 있을 거예요. 있었으면 좋겠고요.
배우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자신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데 더 유리한 입장이지 않나요? 연기한 캐릭터들이 신혜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너무 그래요. 연기하면서 다양한 성격을 꺼내 표출해 볼 수 있으니 너무 좋아요. 이 캐릭터는 이런 성격적인 부분이 좋네, 저 캐릭터는 이런 부분이 훌륭하네 하면서 배울 수도 있고요. 제가 신인 때는 사람 눈을 잘 못 쳐다봤어요. 괜히 부끄럽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연기할 땐 어쩔 수 없이 상대 눈을 쳐다봐야 하잖아요? 참, 신기하지. 연기할 땐 너무 편하지 뭐예요. 그게 좋았어요. 타인 앞에서 부끄러움을 덜 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는데, 연기를 빙자한 카메라 앞에선 그게 가능했으니까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일상에서도 사람 눈을 쳐다볼 수 있더라고요.
지금도 제 눈을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네요
어머(웃음)! 연기는 성격 치유에 좋은 직업 같아요. 실제로 제 울퉁불퉁한 부분을 많이 치유하거나 개선해 줬죠.
극중 은호의 직업이 아나운서라는 소식을 듣고 ‘딕션 요정 신혜선’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어요
직업이 아나운서라는 게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직업은 직업일 뿐 저는 인물이 지닌 서사에 더 집중하거든요. 다만 아나운서는 발음과 발성이 중요하기에 그에 대한 걱정은 했죠. 많은 분이 제 발음에 좋은 평가를 해주지만, 저는 제 발음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여러 시도를 했어요. 발성과 호흡법을 바꿔보고, 목소리 톤도 낮추는 연습을 했죠. 초반엔 힘들었어요. 원래 쓰던 성대 위치를 벗어나니 목이 엄청나게 쉬더군요. 그 순간을 극복하고 나선 무척 보람찼어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저에겐 의미 있는 도전이었어요. 보시는 분들은 잘 모를 테지만요.
남들이 몰라봐도 혜선 씨는 그걸(변화를) 잘 알잖아요
오! 그렇네요. ‘내가 아는 게’ 가장 중요하죠.
목소리 변화를 팬들도 알아채지 않을까 싶어요
알아차려주시면… 진짜 ‘찐팬’입니다(웃음)!
<나의 해리에게>에서 ㅇㅈㅇ 배우와는 ‘8년 장기 로맨스’를, ㄱㅎ 배우와는 ‘첫사랑 로맨스’를 그린다고요. 인간 신혜선은 사랑을 지속하는 것과 사랑을 시작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렵나요
지속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 유지되고 있는 사랑이 없는, 솔로라는 증거이기도 하죠. 그리고 뭐랄까… 사랑의 시작은 ‘기적’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같다? 그건 너무 기적이고, 신나는 일이고,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죠. 그에 반해 지속은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죠. 결혼도 마냥 해피 엔딩이 아닌 게, 많은 부부가 권태와 지속의 어려움을 토로하니까요
맞아요. 사랑을 평생 지속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대단한 일이에요.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현장에서 감독님이나 배우들과 “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대본에서 보여지는 감정 라인이 분명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더 극대화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여러 의견을 나누면서 ‘와, 사랑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렵지만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요
제일 재밌는 것! 지구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랑은 또 사람을 변화시키잖아요? 이성 간의 사랑뿐 아니라 많은 사랑이요. 사랑을 느끼는 게 사람이 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나의 해리에게>도 그렇고, 혜선 씨 행보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이가 많아요. 많은 기대와 마주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나요
부담이라기보다 내가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거든요. 사랑하는 내가 만들어낸 작품이 내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은 거죠. 시청자 입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봐도 좋은 작품을 하는 것. 저에겐 그게 중요해요.
연기를 막 시작하던 시기엔 어땠나요
그땐 오히려 즐거웠죠. 신인 때는 저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값이 없으니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캐릭터 그 자체로 봐줬어요. 그래서 부담이 없었어요. 거침없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한가람 작가가 <나의 해리에게>를 통해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행복에 대해 질문하자면 행복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그렇기에 행복의 스위치를 켜주는 소소한 습관들을 삶 속에 많이 포진해 두는 게 좋다”고 했어요. 혜선 씨는 어떤가요. 행복의 스위치를 켜주는 습관이 있는지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저는 행복을 느끼는 압정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행복의 반대말을 불행이라고 한다면 불행보다 행복의 빈도 수가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가령 아침에 눈이 잘 떠지면 기분이 좋아요. 머리를 감았는데 샴푸 향이 좋으면 그것도 행복하고, 먹어보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골랐는데 너무 맛있으면 그것도 기분 좋고요. 오, 말하면서 저도 알았네요. 난 행복한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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