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글 주의
** 이 후기는 논리적 고찰이 아님.
주관적, 자기중심적 감상임.
*** 평론가의 해석과 매우 다를 수 있음.
http://m.youtube.com/watch?v=QF6P6BSPDRw
멤버들이 뛴다. 나는 뛰는 순서에 의미를 강하게 두기보다는 이 장면의 외부에서 바라볼 때 멤버들이 서 있는 날 지나쳐 멀리 가는지, 나와 같이 뛰고 있는지, 내가 뒤쫓아 달리고 있는지를 가늠해봤다. 왠지 내가 뒤를 바투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발 밑은 물, 해수인지 담수인지 모를 물이다. 수평선이 내 옆에도 앞에도 있다. 어디지, 싶을 만큼 몽환적인 하늘 색상과 멤버들의 표정을 한껏 감탄할 새가 없다. 깊지 않은 물이지만 육상동물로서 사람이면 겪듯 수면을 스치고 걸으려면 힘이 드니까.
숨차게 뛰다가 멈춰서는 멤버들에게 벚꽃비가 내린다. 봄인가? 내가 사는 현생도 물론 지금은 봄이다. 봄은, 달력에서는 세 번째 장부터 나오지만 겨울을 이겨낸 자연물들이 태동하는 시기다. 흔하디 흔한 비유처럼 내가 샤이니의 시작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 혹은 드디어 이 곡, 포엣 아티스트가 피어나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을 함께하는 느낌.
꽃이 지면 그 나무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실이 맺어지듯 벚꽃이 떨어지는 장면에 이어 ‘나를 기다려왔다 말해줘’ 가사가 시작된다. 벚꽃비가 잠시 멎어 멤버들의 비쥬얼을 한껏 감상할 수 있다. 고맙.
‘시적 허용이’ 가사 부분에 멤버들이 수면의 한 곳을 바라보면 흰 편지봉투가 떠있다. 발신인과 수신인은 알 수 없지만 내부의 잉크가 살짝 번져올라와 보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태민이가 놀토에서 ‘모키따’라고 한 말마따나 키가 제일 먼저 용단을 내려 손가락을 뻗는데 이 와중에 태민이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 연기가 훌륭. 키의 중지가 수면에 닿을 때 봉투는 사라지고 수면에서 물방울이 손가락 끝을 향해 거꾸로 올라온다. 시간이 되돌려졌나?
봉투에 샤이니라 적힌 편지들. 팬래터일까? 종현이 쓴 곡들일까? 편지를 읽는 멤버들에게 벚꽃비가 다시 내린다. 꽃잎을 애잔한 듯 즐거운 듯 바라보는 멤버들과 뒤이어 벚꽃 색상을 침범하며 강렬히 번지는 푸른 빛. 아까 수면에 떠 있던 편지봉투에서도 분홍빛과 푸른빛이 번져나왔었는데.
수면에 파문을 시원스레 일으키며 가나다라마바사아 파트를 소화하는 멤버들. 이제야 숨을 고른 내게 잘 보이는 하늘도 분홍빛과 푸른빛이 오묘하게 섞여 있다. 종현이가 수려하게 쓴 가사들과 멤버들 특유의 가뿐하고 상쾌한 안무가 딱 필요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종현이와 했던 음악 작업들이 이토록 환상적이고 유쾌했었구나, 너희.
나도 같이 흥겹게 웃고 있었는데 종현이 없이 멈춰서서 바라보는 수면에 동심원의 파문이 인다. 키의 손가락에서 물방울이 아래 수면으로 다시 떨어진다. 중력과 표면장력이 제대로 적용되는 현실로 왔구나. 어? 어둡다. 비다. 속수무책으로 뛴다. 케케묵은 은유 때문에 우산 없이 비를 맞는 멤버들이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고 나는 느낀다.
왜인지 옛날 사람들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지구는 넓은 원반이거나 사각기둥 모양이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낭떠러지가 있다는. 비를 맞던 멤버들이 낭떠러지까지 만나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 걸까....
비를 피하려던 멤버들을 아늑해보이는 노란빛의 2층집이 맞아준다. 예술가의 방 안에서 포근히 쉴 수 있다. 방 안은 방 주인이 멤버들을 감싸는 마음처럼 따스하고, 무질서해보이지만 가사를 읽고 음악을 듣기에 딱 좋을만큼 어질러져 있다.
방 안을 둘러보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가 떠오른다. ‘짐노페디’를 작곡한 피아니스트인데, 딴소리지만 내 인생의 주요 채용 시험 직전에 나는 짐노페디를 듣는다. 과한 긴장감을 풀어줘서. 사티의 사후에 사람들이 생가에 들어가봤더니 먼지투성이인 작은 방에 가구도 없고 망가진 피아노 두 대가 있었는데 피아노 뒤 벽에 미발표곡 악보들이 수십장 끼어있었다고 한다.
멤버들이 편지의 형태로 적힌 종현의 곡들을 다정히 쓰다듬듯 읽고, 그걸 이야기로 나누고, 반짝이는 추억들을 벽에 붙이는 표정을 보니 나까지 아늑한 느낌. 2층의 열린 창밖에서 종현과의 추억이, 혹은 종현의 예술 작업들이 무한히 쏟아져 들어온다. 집밖에서 창문으로 멤버들을 보니 ‘준비된’ 표정이다.
키가 제일 먼저 창문을 건드리는 것으로 휴식처의 ‘틀이 무너진다’. 무너진 집터에서 멤버들은 어떡할까? 내 걱정이 무색하도록 온세상에 금가루가 흩날리고 하늘엔 금빛으로 빛나는 큰 별이 떠있으며 멤버들은 다 모여모여 가볍게 노래하고 춤춘다. 이제, 샤이니는 더 넓은 우주로 간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샤이니의 활동과 무대마다 희한하게 종현이가 어떠한 형태로든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멤버들의 행보와 태도에서 늘 종현이가 같이 있는 걸 본인들도 안다는 게 느껴졌다.
만약 종현이가 우주의 별이 되었다면, 이렇게 멤버들이 모이고 노래하고 춤출 때마다 바라보고 있었을까. 무한 팽창 중인 우주에 여러 차원이 있으니 멤버들이 틀을 부수고 나와도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에서 종현이는 멤버들에게 빛을 보내고 있었을까. 우주적인 시간 개념으로는 지구의 1분1초가 티끌이니 10만광년 정도의 시간대에서는 종현이와 물리적으로도 함께 있는 것 아닐까.
멤버들은 이제 날 뒤쫓아오게 두지 않고 오히려 내 쪽으로 가까이 걸어온다. 더 편한 차림새로. 덜 신비스럽다해도 더 솔직하고, 어떨 때는 약간 날것이고, 있는 마음 그대로. 급속히 발전한 정보기술과 스마트기기. 멤버들은 이제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멤버들도 샤월들도 축포를 떠트렸다. 우리가 터져올린 축포가 밤하늘 전체에 불꽃놀이처럼 꽃피도록.
분홍빛을 침범하던 푸른빛이 조금씩 거두어질 때, 멤버들은 이제 종현의 목소리에 맞춰 기존의 틀을 오히려 기반으로 단단히 다져가며 춤춘다. 모두 중앙을 향해 서로 바라보고 추는 안무에서 멤버들의 신체보다 그림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떠오른다. 내 몸이 진짜 나일까, 그림자가 진짜 나일까? 그림자와 붙어 있는 곳이 이곳인데, 그림자를 떼면 불확실한 벽이 있는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림자가 없는 나만 비현실의 도시로 갈 수 있다면 현실의 나는 단지 그림자잖아. 그런 가정의 소설이다.
멤버들의 그림자는 지금 붙어있다. 저 그림자가 진짜일까? 그림자가 모이고 겹치고 어우러질 때, 그 곳에 종현이가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니, 종현이의 그림자인가?
이때 다른 차원에서 멤버들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 시도한다.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던데.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잡기를 성공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종현과의 사랑을 이루었다.
나는? 나도 종현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나에게 자격이 있을까? 왜? 늦덕이라서? 종현에 대해 아직 많이 몰라서?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과 내용이 천차만별인데, 내가 내 방식대로 종현‘을’ 사랑하거나 종현‘과’ 사랑하는 데에 자격이 필요할까?
내가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다 치자. 우주의 별들도 생몰을 반복하고 그 별들은 날 모를지라도 나는 별들을 사랑하는 데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치 않다.
덕질도 머글이 보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사랑의 방식이다. 최근에 내 머글 친구가 나혼산의 ‘즐거운 키의 집’ 에피를 보고 나한테 키 집들이를 직접 못 가서 속상하지 않냐 물었다. 나는 그 질문 내용에 엄청 놀랐다. 아니, 직접 가고 싶지 않다. 내 덕후자아와 현실자아가 별개이고 잘 양립해야 두 자아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나도, 기범이의 개인시간을 ‘해치고 싶지’ 않다. 내 답변에 머글 친구도 역시 엄청 놀랐다.
멤버들은 과연 이 노래를 작업할 때 대중들이 종현의 예술작업을 사랑해주는 데에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전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도, 벚꽃잎을 잡았다.
또 멤버들이 뛴다. 이제 나는 숨차게 뒤쫓아가지 않고, 나란히 같이 뛴다. 태민이의 눈동자에 항상 별빛처럼 담겨있는 종현이와의 사랑. 마지막으로 아마 포엣아티스트 곡 작업이 담겨있을 종현이의 편지가 멤버들에게 날아오고 멤버들이 다 함께 편지를 잡기 위해 날아오른다.
멤버들은 애도의 단계 중 다른 단계로 옮겨간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애도의 5단계를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으로 본다.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쓰지 않고 다른 단계로 옮겨갔다고 쓴 이유는, 내가 죄책감을 덜 느끼기 위해서이다. 이번 뮤비를 보고 후회와 자책을 할 시간에 더 많은 사랑을 만들어내야겠다고 느꼈다.
심리학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마음에 관한 학문이기에 당연히 늘 의문이 남는다. 애도의 단계도 당연히 개인차가 있고 반드시 다 정확히 거쳐야 하는 게 아니다. 애도의 단계를 빨리 진행한다고 꼭 성숙한 인간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래도 멤버들이 뛰고 달리고 비 맞고 마음을 열어 나누고 틀을 부수어 나오고.... 하며 진심을 다해 애도해온 날들이 모였다. 샤이니는 매일 김종현과 함께 더 높이 날아오른다.
샤이니는 이제 시작이다.
ㅡ 우뭇가사리 후기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