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준이 난청을 앓고 있는 구조묘 쇼리의 파란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떠올린, 반려 가족을 대하는 마음.

바다처럼 깊고 푸른 눈으로 멀뚱멀뚱 어딘가를 살펴보는 하얀 고양이. ‘저 인간은 누구일까?’ 귀를 쫑긋 앞으로 세웠다 뒤로 젖혔다, 고민하는 표정으로 촬영장 구석구석을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녀석의 이름은 쇼리. 쇼리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남양주의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돼 유기묘 구조단체 ‘나비야 사랑해’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이로, 세상의 소리는 닿지 않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낯선 사람 틈에서도 태연히 걸음을 옮기고, 그늘 하나 없이 밝고 순수한 표정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그늘 없이 밝은 친구라 어디를 가도 사랑받을 것 같아요. 오늘 함께 멋진 하루를 보낸 쇼리는 꼭 희망 같아요. 사람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죠.”
촬영을 함께한 서강준은 쇼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소리를 못 듣는 건 큰 장애가 아닙니다. 야생에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오히려 안정에 가까워요. 놀랄 일도 적고, 생활하는데 제한이 덜해 더 편안하죠.” 서강준은 귀가 안 들리는 쇼리를 마냥 불쌍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평화, 세상과 맺는 또 다른 형태의 관계라고. 오히려 삶을 꿋꿋이 살아내는 존재로, 기꺼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등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쇼리는 불행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행복한 아이예요. 그래서 온전한 사랑으로 이 아이를 바라봐주는 가족을 만나야 하죠.”

서강준의 마음에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도키와 키키 그리고 오키. 세 친구는 서강준의 독립과 동시에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도키는 아홉 살, 키키는 여섯 살. 서강준은 인간 나이로 청년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지만, 그 관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가족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지 않아요. 굉장히 독립적이죠. 서로가 필요할 때만 찾아요. 그냥 같이 사는 존재들입니다. 동거가 딱 맞는 표현이네요(웃음).” 그의 말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서강준의 하루는 고양이들의 리듬에 맞춰 흘러간다. 아침이면 키키가 식탁 앞에서 울며 ‘나를 예뻐해 달라’고 재촉하고, 밤 12시만 되면 도키가 다가와 머리를 비빈다. 그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다. “필요할 때만 다가오고, 귀찮으면 떠납니다. 그래서 더 진심 같아요. 인간보다 솔직하죠.”


오키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함께한 세월이 가장 길고, 가장 많은 기억이 그 이름과 얽혀 있다. “오키는 아버지가 집에 놀러 오면 항상 어깨 위에 앉아 있었어요. 낯을 가리지도 않았죠. 그 장면이 기억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2년간 천식과 알레르기를 앓던 오키는 지난겨울 그의 품을 떠났다. 병원비만 1000만 원 넘게 들었고, 약이나 주사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결국 떠났다. “저는 그 아이의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모든 생명은 유한하니까요. ‘더 해줄걸’ 하는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까.” 서강준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오키에게 배웠다. 이 반려 가족은 서강준에게 사랑을 알려줬고, 그건 거창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문장에 그의 사랑관과 삶의 방식이 모두 담겨 있다. 사랑 앞에서 서강준은 어떤 사람이 될까? “강해집니다.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 사랑을 지키려면 내가 단단해야 하니까요.” 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꾸준히 밥을 주고, 귀찮게 쫓아가고, 때로는 거리를 두며 기다리는 일. 그런 평범함이 쌓여 어느새 ‘가족’이 됐다. “전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거웠어요. 그런데 함께 살다보면 당연해져요. 책임이 아니라 그냥 삶 자체가 되는 거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관계인 서강준과 도키, 키키 그리고 오키. 스스로를 ‘의연하려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 친구들 앞에선 어떤 사람이 될까. “글쎄요. 그건 애들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모습이 뭘까? 애들은 제가 다가가면 귀찮아서 피할 때도 많아요. 저는 원래 집착하지 않는 성향인데, 그럴 때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요. 쫓아가서 약간 귀찮게 하고, 그러다 적당하게 마음을 접어요. 너도 짜증 나겠다 싶어서(웃음).”


서강준은 배우 생활을 하며 자주 떠올리는 말에 대해 말했다. ‘유약함’. “생각보다 나는 약한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알아차린 게 다행입니다. 약함을 안다는 건 나를 지키는 첫걸음이니까요.” 삶을 ‘던져진 일’이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히어로처럼 그를 구원하러 오는 건 단연 고양이들이다. “삶이 어렵고 지칠 때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곁에 와요. 내 마음을 느끼고 와주는 건가 싶어 ‘확대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제 어깨에 두 발을 올리고는 가까이 코를 맞대고 냄새를 맡죠. 왜 그러지? 이 친구들도 무언가를 느끼나 싶어요.”


마지막으로 반려 가족과 쇼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즐겁기를 바라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 단순한 문장에 모든 사랑이 담겼다. 어떤 관계도, 어떤 존재도 결국엔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동물병원비가 조금만 덜 비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바람은 현실적이지만, 그 현실을 움직이는 건 늘 마음의 문제라는 걸 서강준은 잘 알고 있다.
“저는 우리가 감히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너희들과 내가 만났다는 건 운명 같은 일이고, 전생이 있다면 우리가 연이 있겠구나 싶어요. 전생에는 제가 고양이이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나를 키웠고요. 죽으면서 그들이 제게 ‘내가 너의 고양이로 태어날게’했던 건 아닐까요?” 덧붙여 다음 생에는 다시 한 번 역할을 바꾸고 싶다고 한다. 귀여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이 신비롭고 마법 같은 사랑이란 뭘까? 사랑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강준은 고양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통과했다. 책임이 당연해지고, 상실이 평화가 되고, 존재가 위로가 되는 시간들. 그리고 고양이는 알고 있다. 서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그저 옆에 있어주는 관계가 가장 완벽한 사랑의 형태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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