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생활에 있어서의 태도>
대본을 정말 많이 읽어요. 대기 시간에도 항상 읽고 있어요. 촬영분만 읽는 게 아니라, 매일 1회부터 그날 분량까지 다 읽어요.
전반적인 흐름을 꽉 잡고 있으려고 해요.
과거의 행동을 다 알고 있어야 전체적인 연기톤도 일관되고, 애드리브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니까요.
<연기의 매력은 뭔가?>
가족들은 나한테 감정적인 결벽증이 있다고 한다. 옳고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거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걸 흐트러뜨릴 수 있는 공인된 자리니까 그게 좋다. 막 할 수 있어서. 평소에는 막 할 수 없으니까.
<자신에 관한 소문이나 평판에 대해 궁금한가?>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자신만 소문대로 그렇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소문들은 궁금하고, 듣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다지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연기가 안 풀릴 땐 어떻게 하나요?>
뒷 연기를 해요. 집에 가면서 다시 해본다는 말이에요. 드라마는 한 번 찍으면 끝이잖아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안 되면 우는 씬 다시 해보고 대사도 다시 해보고요. 미련이 남는 거죠.
<연기를 준비하는 아이돌들에게, 여유로워진 비결>
제 얘기가 도움이 될까요? 어짜피 부딫혀봐야 아는 거잖아요. 다만 '시련을 이기려하지 말고 버티라'고 하고 싶네요.
이건 비단 연예계에서 일하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뭔가 준비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해당되는 얘기에요.
견디다 보면 기회가 생기고 자신만의 무기도 보이더라고요.
저도 힘든 시절을 견디면서 사람이 귀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된 걸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당시엔 내가 잃은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잃은 건 없고 모두 얻기만 한 경험이었던 걸요.
작은 역이라도 좋아요. '수백향'을 하면서 조감독에게 '내가 다음 작품에서 주연을 맡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고 한 적 있거든요?
크게 욕심내지 않아요. 다만 제가 쭉 연기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래야 10년 뒤에도 계속 배우로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데뷔 18년차 연기 15년차의 고민>
한세계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여배우로서 공감할 수 있던 부분은, "그만두고 싶다. 도망가고 싶지만, 그만 둘 수 없다" 라는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더 잘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연기를 할 때, 그런 기분이 들어요.
항상 작품하기로 하고 첫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안 하고 싶다" 라며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대본 리딩 전이 가장 떨리기도 해요.
항상 만족할 순 없지만, 한 작품 속에서 2번 정도 스스로도 제대로 집중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늘려가고 싶어서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서현진은 어린 나이에 시작한 첫 사회생활에서 너무나 쓴 잔을 마셨다.
방황은 가을비처럼 차갑고도 당연하게 찾아왔다. 남들은 꿈과 희망을 품고 이것저것 해볼 시기에 바닥을 쳤다. 그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된다.>
공지영 작가의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책을 읽으면 이런 대사가 나와요.
'오물이나 하수구에 빠져본 적 있어? 뜨뜻미지근하다.'
제 심정이 이랬어요. 뜨뜻미지근했죠. 춥지도 그렇다고 덥지도 않은 삶이었어요. 재미없고 무의미한.. 뭘 몰랐죠.
방황의 끝자락에 있을 때 여행을 다녔어요. 머나먼 곳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빛도 없는 곳에서 다짐했어요. '나한테 솔직하게 살자', '뻔뻔하게 살자'.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기를 배웠어요. 대학 다니듯이 매일 연습시간을 정해놓고 했어요.
그 때 드라마 [황진이]와 [히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신통치 않았어요. 다시 방황했죠.
아예 다른 길로 진로를 바꿀까 싶었지만, 뻔뻔하게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죠.
그렇게 4년 동안 다시 연기 공부를 했어요.
2011년이 되었을 때 8.15 특집극 [절정]에 출연했죠.
그 이후로 [신들의 만찬], [오자룡이 간다], [불의 여신 정이] 까지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모두 다 출연했어요.
<남에 대한 신경을 쓰는 편인가?>
지금은 남 신경 별로 안 써요. 연예인이냐고 물으시면 '네 맞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러고 지나가면 그뿐이죠.
저도 낯가리는 편인데, 그렇다고 저만의 행복한 시간을 뺏기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20대때는 되게 소극적인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이 무서웠어요. 20대땐 예스걸이 되고 싶었고, 착해보였으면 좋겠고.
그래서 그땐 불특정 다수의 상대방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저를 해할 사람들이 아니라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었지만요.
더는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며 투쟁해왔어요.
이게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쉽지 않은 문제잖아요. 누구에게나 다 영향을 받으니까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도 한 번씩 생각하는 거예요. 나로 있겠다고,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있겠다고.
<본인에게 연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천직이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저는 이것 말고는 해본 게 없어요. 4살때부터 예체능계였거든요.
어렸을 땐 10년이 넘도록 무용을 했고, 가수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기를 했어요. 전 그래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천직이라기 보다는 이거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아요.
<결국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밀크 이후 대중에 서현진이란 이름을 알리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부모님도 7~8년간 열렬히 반대하며 이직을 추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취업은 남의 일 같았고,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었다.
네 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고, 줄곧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만 몸 담았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극복하지 않았다. 버텼다. 극복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극복을 했다면 강의를 해야 할 거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고, 다른 걸 할 용기가 없었다. (연기 이외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시간을 그냥 보내면 초라해질 것 같아서 연기 학원도 꾸준히 다녔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남동생이 취업준비생일 때 한번 물어보더라.
"누나는 어떻게 그토록 뚝심을 잃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뚝심을 잃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버틴 거라고 했다.
"난 그냥 버텼어. 버틴 거밖에 없어. 그런데 결국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버텨봐, 지금 이 힘든 시간을."
<식샤2 이후 인터뷰: 다른 캐릭터를 만났을 때는 어떤 연기를 보여주게 될 지 궁금해졌다. 그만큼 잘했다.>
다음에 못할까봐 무섭다.
늘 한 발 빼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든 이게 아닌 다른 걸 할 수 있어. 시골가서 농사 짓고 살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자연속에서 사는 걸 아주 좋아한다. 작년 말에 굉장히 아팠다.
그 와중에 미팅을 하고, 얼떨결에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된 드라마다. 하면서 이렇게 좋기만 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두 발 담근 작품이다. 아프면서 이 일을 더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연기 패턴은 아마 이전과 같을 거다.
다른 게 있다면 그건 두 발을 모두 담근 내 태도에서 온 것이다.
그동안 직업란에 배우라고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프리랜서. 몇 년 전까지는 학생 또는 무직. 배우가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궁금해해봐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요즘 그냥 잘한다고 하니까 무섭다. 다음에는 기대치를 못 채우면 어쩌지. 하던 거 했는데 잘한다고 했고, 하던 거 했는데 못한다고 하면 어쩌나.
다음에도 좋은 사람들 만났으면 좋겠다. 그건 천운인 것 같다. 자기 작품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고.
<롤모델이 있나?>
너무 많아서 한 명을 고르기가 어려워요. 요즘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모든 여배우는 다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올해로 만 서른인데 여배우로서 고민이 많을 나이에요.>
'여배우'로 고민이 많다기 보다는 그냥 '배우'로서 어떻게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제가 연기를 전공한 것이 아니라서 제가 연기하는 방식이 제대로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거든요.
<2015 신데렐라 인터뷰>
매 작품이 사실은 스트레스죠. 잘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다행히 아직은 잘하고 싶은 게 많아서.
어느 순간에 '이만큼이면 됐어'라는 생각을, 절대 할 것 같진 않지만, 그 순간이 제일 무서운 순간인 것 같아요.
<서현진이 장르다라는 소릴 듣는 요즘>
연기 경력이 10년이 넘었어요.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는 경력이죠.
제 문제는 여전히 자존감과 자신감 사이 균형이에요. 전 자존감이 낮아요. 아직도 쑥스러워하거나 쩔쩔매곤하죠.
신인도 아닌데, 리딩을 마치면 마치 준비해온 것들을 심판 받는 느낌이 들어서 얼굴이 시뻘게지고 심장이 귀에서 뛰어요.
인정받지 못할까봐 걱정돼서 인사불성 상태가 되죠. 대신 노력을 통해 자신감을 채우곤 해요. 어떻게든 연습량으로 메우는 거죠.
<'솔직하고 평범한 여자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각인된 것 같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기를 바라나?>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지 않다. 남을 수도 없을테고. 그냥 내 작품을 편하고 재미있게 봐줬으면 한다.
연기자가 특별한 직업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에디터가 인터뷰를 진행하듯, 나 역시 직업인으로서 연기할 뿐이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 연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또 오해영 종영 이후 서현진의 입지는 달라질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입지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달라지면 좋겠지만 안 달라져도 좋다.
난 촬영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시청률이 좋지 않았던 작품도 좋아한다.
지금의 인기가 분에 넘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사라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야 사는 게 재밌지 않나.
<또 다른 입지에 관한 인터뷰>
앞으로도 배우를 계속 하고 싶어요. 저는 촬영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지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또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입지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또 달라질 것도 같지 않아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