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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데메테르의 딸> 후기 (말 많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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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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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테르의 딸 | 박슬기 저

#신화 #그로신 #모험 #불멸×필멸 #여성서사

0. 서론
1. 초반 줄거리
2. 소감 (이하 스포일러 포함)
3. 좋았던 장면/대사 
4. 아쉬웠던 점
5. 총평 (스포일러 X)


※ 2. 소감부터 중요한 스포일러가 필터 없이 나와 있다. ※



0. 서론

<데메테르의 딸> 개인지를 소장하게 되어 며칠 간의 독서 후에 후기를 쓰게 되었다.

내가 이 개인지를 구매한 이유는 첫째로 내가 신화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개인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한정판과 예쁜 책만 보면 소장하고 싶어 사족을 못 쓰는 나기에, 정신을 차려보니 손은 이미 재고 판매 폼을 입력하고 있었다. 


https://img.theqoo.net/hHggW
https://img.theqoo.net/wWRsC
https://img.theqoo.net/BKywr

사실 나는 강경 이북 파이기에(재밌게 읽은 이북만 소장용으로 종이 책을 구매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종이 책을 읽어 보았다. 예쁜 양장에 종이를 한 장 한 장씩 사락사락 넘겨가며 읽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던지라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박슬기 작가의 책 중에서는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를 읽은 적이 있었다. 마크다운에서 50%로 구매했었는데, 다 읽고난 후에는 내가 이 책을 반값으로 본 게 미안해질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다. 재탕한 후에는 고민 없이 종이책을 결제해 (책갈피가 가지고 싶어서 세트로 구매했다) 소녀순수 종이책 또한 소장하고 있다.

글이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쯤 되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원덬은 투머치토커다. 안 그래도 말이 많은 작자가 원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썼으니, 이 후기는 길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길기도 하다) 또한 생각날 때마다 단락별로 작성했더니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 짜임새와 맥락이 없는 글이 되었다. 유감스럽지만 양해를 구한다.



1. 초반 줄거리

여주 - 아스테릴 (#다정녀 #능력녀)
: 데메테르의 3왕녀이자 코퀴나스 대신전의 대신관. 뛰어난 치유력을 가져 '코퀴나스의 기적'이라 불리움. 정령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음.

남주 - ??? (#초월적존재 #소유욕)
하이데스의 왕.


데메테르 왕국은 조약에 따라 하이데스 왕국에 일종의 공녀인 '페르세포네'를 보내게 되어있다. 

하이데스는 '데메테르의 왕녀'를 아홉 번째 페르세포네로 요구하고, 코퀴나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3왕녀 아스테릴은 하이데스로 향하게 된다.

죽음의 땅에 도착한 아스테릴은 하이데스의 궁에서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왕과 여러 나라의 왕녀들,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별궁의 주인을 만나게 되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아스테릴은 하이데스에 위치한 성목, '아스포델로스'가 다 죽어 가고 있으며 지난 페르세포네들이 모두 이 나무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실종으로 아스포델로스가 시들면서 신들의 영과인 암브로시아를 얻을 수 없게 된 것.

놀랍게도 아스테릴은 자신에게 아스포델로스를 소생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2. 소감


 제목부터가 <데메테르의 딸> 이었기에 나는 내가 익숙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조금 당황했다. 내가 생각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아닌 그 전 세대 신들 (가이아, 우라노스, 닉스, 폰토스, 아난케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로신 기반 신화물을 여럿 봤으나 원초 세대의 신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라 굉장히 새로웠다.

 또 새롭고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점을 말하기에 앞서 책 속에 나오는 왕국들의 이름을 나열해보겠다. 데메테르, 하이데스, 포세이도니아, 아프로디시아스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만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나와 있는데, 그로신을 소재로 한 글에서 처음 보는 변형이라 새로웠다. 각 국가들의 지형과 문화, 역사도 아주 세세하게 설정이 되어 있어 정말 실존했던 국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로신 기반의 창작물을 종종 찾아보기는 하지만, 신화에 대한 지식은 사실상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작 내에서 생소한 단어와 소재를 꽤나 마주하게 되었는데, 각주가 상세하게 달려 있어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작가가 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는 게 글의 이모저모에서 보였다. 위에서 말했듯 생소한 소재를 양껏 사용하면서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을 썼고, 부록에서는 작가가 글 속 인물들을 조형하고 여러 설정을 부여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러스트 표지를 보았을 때 의구심이 들지 모른다. 1, 2권 표지는 어떻게 보아도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이며, 6권의 표지는 에로스와 프시케로 보이기 때문이다.

https://img.theqoo.net/pbpVt

어떻게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에로스와 프시케가 된단 말인가?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의 서막인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각색은 꽤나 신선했다. 처음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여주의 이름이 아스테릴이기에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처음 그 이름이 나왔을 때 놀랐다. 책 속에서, 페르세포네는 하이데스 왕국에 끌려가게 되는 데메테르 왕국의 공녀를 의미한다. 하데스에게 납치 당해 지하 세계로 끌려간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이렇게 비틀어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고, 케톤을 사랑하는 필멸과 인간을 안테로스로 삼은 신 등 불멸×필멸의 구도가 보다 더 짙어지면서 이야기 기저에 에로스×프시케 서사가 있었다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두 가지 서사가 적절하고 신선하게 조합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스테릴이 칼리안과 만나 둘이 사랑에 빠지고 안테로스가 되는 부분과 아스테릴이 새로운 아스포델로스에서 암브로시아를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부분. 파트 1과 2 모두 재밌었으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아스테릴 출생의 비밀이 나오면서부터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데메테르의 딸은 여성 서사에 많은 힘을 준 글이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계몽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두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해보겠다. 첫 번째는 여신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책 속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번째로, 이 책에서 여신을 어떻게 그렸는가를 이야기해보겠다. 책의 후반마다 있는 부록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확히는 과거 모계 사회일 적 위상이 높았던 여신들이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그리스의 문화 아래 어떻게 격하되고 지위를 빼앗지며 지워졌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해석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화로 처음 접했던 나로서는 아주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었다. 

 특히 나는 판도라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판도라'라고 하면 흔히들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릴 것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온 사람들을 불행에 빠트린 어리석은 여자의 이야기. 나 또한 판도라를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또다른 해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선 판도라의 상자는 항아리가 잘못 해석된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웃음지었고,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신화를 수정하며 긍정적인 이미지였던 판도라가 불행의 원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놀랐다. 그 외에 신들의 여왕인 헤라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두번째는 책 속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이데스의 궁에서 만난 왕녀들과 프시케. 사실 처음 하이데스의 궁에서 왕의 후궁이라도 되기 위해 모인 왕녀들을 보았을 때는 이 작품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들이 모국과 자신들의 평안을 위해 온 것도 아니었으며 진짜 후궁 후보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마음 편하게 읽기 시작했다. 사실 하이데스의 궁에서 만난 왕녀들은 하이데스의 궁 에피소드를 살려 주는 조연들로서 큰 비중은 없을 거라 내심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이 왕녀들 -테티스, 암피크리테, 레우케, 멜리노에 등-이 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것 아닌가. 초반에 했던 추측들이 다 틀리게 되어 조금 머쓱했었다.

 레우케의 서사 중에는 모녀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고(3대에 걸친 모녀 서술이 좋았다. 언제나 딸인 여자들에 대한) 테티스 서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역시 사형식이었다. 군중들이 탈라사를 연호하며 왕으로 군림하는 장면이 아주 짜릿했다. 멜리노에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왕녀(사실상 왕)라서 최고의 장면을 고르지 못했다...

또한 프시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얄밉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인물 조형이 입체적이라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다. 내가 살면서 처음 보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프시케 서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결말이라 하겠다. 상상도 못한, 정말이지 충격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마무리였다. 아, 유일한 모계 중심 국가였던 데메테르의 국왕 암피사와 1왕녀 키아네 또한 정말 매력적이었다. 여성 캐릭터와 그들의 서사에 상당히 많은 노력이 들어갔음을 읽으며 새삼스레 실감했다. 각기 다른 과거와 장애물을 거쳐왔음에도 꿋꿋하게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해 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책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했다.


 그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들 매력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위에서 왕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 까닭에 생략하도록 하겠다) 케톤과 정령들 굉장히 개성있었다. 언제나 귓가에서 조잘대던 노도스, 짖궂은 히메로스, 부드럽고 따듯한 제피로스 등. 케톤 중에서는 아난케와 아리스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운명의 여신인 아난케가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아난케가 타르타로스에서의 칼리안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장면과 술 취한 칼리안을 보고 즐거워 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말을 많이 하다보니 하마터면 로맨스는 짚지도 못할 뻔 했다. 작 내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참 좋았다. 태어나고 자라며 언제나 마음 속에 거대함 외로움을 품고 살던 아스테릴과 삶의 모든 것에 무관심하던 칼리안이 만나는 것, 언제나 다른 이들의 빛이 되었던 아스테릴이 처음으로 빛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것. 신 중에도 가장 강한 남신이 오직 아스테릴에 대한 사랑을 연유로 미물이라 여기던 인간을 궁금해하고, 종내에는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칼리안이 서툴게나마 사랑을 느끼고, 수많은 감정을 알아가며 웃음과 눈물을 배우는 장면 장면들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제 고작 두 번째 챕터인데 말이 너무 길었으므로 나머지 소감은 빠르게 이야기하겠다.

 1) 정말 많은 신화의 이야기들을 아낌 없이 사용했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을 비틀었다. 신화를 제 식대로 손질하는 데에 하도 거침이 없어 경이롭다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신화의 비하인드 같은 재료들을 가져다가 이야기에 적절하게 녹여내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같으면서도 읽을수록 기존의 신화가 밑배경에 은은히 깔려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2) 코퀴나스의 신전, 하이데스의 궁, 포세도니아의 도시, 산맥, 니사의 동굴 등 모든 장소들의 묘사가 기막히다. 어느 한 곳에 대한 묘사를 한 글자씩, 한 줄씩 읽을 때마다 머나먼 과거의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는 느낌이라 진정 내가 신화 속 어느 장면 속에 들어와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문체 또한 신화물과 어울리는, 무게감 있으면서도 고풍스러운듯한 것이라 분위기가 한층 더 살았다.

 3)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흥미를 끌었다. 다 풀린 설정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에 아직 풀리지 않은 자물쇠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고, 크고 작은 충격과 반전이 여럿 있어 읽으며 지루하지 않았다.



3. 좋았던 장면

전체적으로는 가이아의 서사가 좋았다. 혼돈과 질서의 아이, 혼돈이 낳지 않은 혼돈의 딸, 불과 항아리의 여인, 의 안테로스, 아스테릴의 어머니. 사실 그런 가이아에게 집착하던 닉스도.. 좋았다. 닉스 재질의 남주도 원래는 좋아라 하는데.. 카케이도스가 너무도 따듯한 사람이라 아주 잠깐 보았음에도 그를 안테로스로 삼은 가이아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인상깊던 장면은 칼리안이 아스테릴 없는 세상에서 마지막 신이 되는 부분이었다.

"……일족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난케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간의 문명을 내다보았고 그 앞에 쇠퇴하게 될 일족의 운명을 엿보았다.
 (중략)
 "상관 없다."
 그는 중얼거렸다. 설령 혼돈과 질서가 겨루던 이 세계에 남는 케톤이 자신 하나뿐이 된다 하여도.
 "유일한 신으로 살면 되겠지."
- 4권 394p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간의 문명과 그 앞에 쇠퇴하게 될 일족의 운명을 운명의 여신이 내다 보았다는 문장이 정말정말정말 좋았다 진짜로 정말 아주 많이.. 비루한 어휘력 때문에 이 문장이 이리도 좋은 이유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를 제대로 설명치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나는 믿음을 가진 신도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 비로소 신의 존재가 멸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더이상 신보다는 다른 것들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인류의 역사에서 케톤 일족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이렇게 신화물 내에서 확인받는다는 것은 상상치도 못했기에 정말이지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세세하게 깔린 복선들과 그것이 촘촘하게 회수되는 부분들 또한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태피스트리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커다란 직물과도 같지.
- 4권, 79p

그대의 삶이 담긴 태피스트리는 아난케의 손 안에서 순간순간의 여흥에 따라 올되게 짜이고 있다. 경거망동하지 말지어다. 운명의 신이 앉아 있는 베틀 앞이다.
- 4권 164p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태피스트리가 거대하게 펼쳐졌다. 운명의 실이 촘촘하게 엮여 마침내 완성된 그림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4권, 425p

마지막 부분에서 아스테릴과 칼리안의 태피스트리를 짜낸 주체가 그들이라 생각하자 지난 4권 동안의 대장정이 쭉 스쳐 지나갔다. 기적처럼, 혹은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만나 스스로의 생을 짜넣으며 하나의 태피스트리(=삶)로 엮어 낸, 운명을 뛰어 넘은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이제 좋았던 문장을 쭉 적어보겠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기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부분이다. 종이책으로 읽게 되어 좋았던 문장이 나온 부분은 카메라로 찍어 놓았는데, (이래서 책은 이북으로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종이책은 어디까지나 소장을 위한 것..) 나중에 보니 찍은 사진이 총 309장 정도 되었다. 그 사진들을 다시 살펴보며 특히 좋았던 문장들을 골라내 보았다.



 "나의 안테로스가 되어라, 그대.
 그대에게 내 모든 숨결을 주겠다."
- 2권 316p


 불현듯 깨달았다.
 이곳은 외로운 사자가 양을 보고 반한 언덕이었다. 붉은 머리칼의 판도라가 항아리를 이고 내려온 비탈길이었다. 달의 여신이 활을 쏘던 청년을 발견한 숲이었다. 어미의 말을 어긴 처녀가 검은 수선화를 꺾고 만 절벽이었다.
 그렇게 비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된 사랑이 찬란히 부활하듯 새겨지는 곳이었다.
- 2권 332p


 운명은 탄생과 소멸처럼 거스를 수 없기에 숙명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아득한 쾌감부터 시작해 불현듯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끝나는 무곡이었다.
- 2권 356p


 서릿발 같던 내 영혼에 쏟아 내린 그대, 나의 이 부정한 욕망을 부디 눈감아 줄 텐가? 
 감히 사랑한다 속삭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그대여.
- 2권 358p


 나는 최초의 케톤 가이아다.
- 3권, 427p


 "내가 감히 그대를…… 더 없이 연모해."
- 4권 90p


 이곳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낮과 어둠이 사랑에 빠져 입을 맞추는 땅이다. 여러 번 허물을 벗은 뱀이 그대의 죄와 욕망을 삼켜 비늘 속에 감춰 둔 보화로 답례하는 장소이다.
 허나 그것은 네 것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라. 독니가 노리는 건 탐욕에 지고 만 너의 손목일 테니. 델포이에서는 모든 것이 관문이고 모든 것이 시험이다.
 (중략)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 절을 올리고 너의 바람을 신중하게 질문하라.
 (중략)
 이제 연기와 가스로 가득 찬 무녀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라.
 이것이 델포이의 신탁이다.
- 4권, 165p


"너는 필멸의 몸이니 필멸의 삶을 살 것이다. 불멸의 피니 불멸의 사랑을 할 것이다. 그러니 생명의 시작과 끝을 느껴라. 죽음의 공허함과 탄식을 이해하라."
- 4권 268p


"위대한 케톤, 대지가 낳은 기적, 가이아의 유일한 딸이여. 나 아난케는 그대에게 생명의 아스테릴이라는 칭호를 내린다. 올림포스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한다."
- 4권, 352p


 "나의 안테로스.
 그대의 안테로스 곁으로 오라."
- 4권, 425p



4. 아쉬웠던 점


 개인적으로 글을 읽으며 크게 두 가지가 아쉬웠다.

 하나, 주인공의 사랑이 너무 빠르게 완전해진 점.

 글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적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칼리안의 결계 이후 완전함에 가까워진 그들의 사랑이 로맨스 부분에서 올 수 있는 답답함은 완벽히 차단하였으나 대신 독자에게 거리감을 준 것 같았다. 그들의 사랑을 이해한다기보다는 구경한다는 감상이 들었는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둘, 여러 남성 등장인물들이 여자 주인공을 사랑한 점. 

 물론 여주인공은 능력있고 아름다우며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그러한 부분이 여러 남성 캐릭터의 성애로 나타는 부분이 아쉬웠다.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드러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면에서 특히 아리스라는 캐릭터의 쓰임새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5. 총평

아쉬웠던 점에 대해 서술하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었다.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복선 회수가 잘 되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가 돋보였으며 이야기의 규모가 방대했음에도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중심을 잡으며 보여주고픈 서사들을 모두 쏟아냈다.

 풍부하게 잘 짜여진,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여성 서사에도 중점을 둔 글이고,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글은 아닌지라 독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에는 잘 맞았다. 

 데메테르의 딸을 가장 간단히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신화의 재해석과 재구성'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읽어본 신화를 기반으로 한 모든 이야기 중에 가장 특색있는 글이었다. 새로운 관점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 해석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데메테르의 딸이 로스트 헤븐의 프리퀄이라던데, 마침 로스트 헤븐도 소장하고 있으니 (구매한지 몇 년은 된 듯 한..) 이 기회에 읽어보아야겠다.


 며칠간의 만족스러웠던 독서를 회상하며, 이 길고 장황한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있다면 말이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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