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소설로 분류할 수도 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님)
여인의 초상 끝까지 읽었는데, 여주랑 사촌오빠 관계가 정말 절절했다...
오라버니쪽은 처음부터 이성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자기는 몇년 못 살고 죽을 거이므로 표현은 못 하고
여주 쪽은 단지 친척으로, 친구로서 오빠를 좋아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 중 제일 좋아했었음.
여주 처녀 적 구혼자중 한 명은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인데, 그야말로 직진남이고 여주를 엄청 사랑하지만
'너를 사랑해.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니 나만 따라와' 이런 타입이고...
한 명은 영국귀족 - 자작이자, 대지주이자, 상원의원인데 잘생기고 인성까지 훌륭하지만
결혼한다면 엄청난 배경속에 빨려 들어가 그 일부로서의 삶 밖에 살지 못할 인물이야.
그러나 여주는 자유를 가장 사랑하고, 뭐든지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뜻대로 결정해서 하고 싶어해.
그런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뜻대로 해 주고 싶어하는 게 사촌오빠임. 둘이서 대화할때도 가장 케미가 좋음...
하지만 여주는 자기 생각대로만 판단한 결과, 상속녀인 여주의 재산을 노린 이상한 놈팽이같은 놈과 결혼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에 시들어가는데...
남편놈은 위의 두 남자 (결혼 후에도 사교계에서는 교제를 이어감.. 서양인 마인드란..) 에 대해서는 대놓고 적대시하기보단
어떻게 이득을 뜯어낼까, 아니면 어떻게 자신이 대인배인지 과시할까 하는 생각으로,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아주 기껍게 대해줌.
하지만 사촌오빠는 대놓고 적대시하고 집에 발도 못들여놓게 함... 누가 위험한 놈인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한편 맨날 능글거리고 농담따먹기만 해서 입만 시한부인줄 알았던 랠프(사촌오빠 이름)는 진짜로 오늘 내일 하게 되는데
이저벨(여주)에게 영국으로 와 달라고 전보를 쳐. (여주네는 로마에 거주)
남편은 당연 못가게 하려고, 영국 갔다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야!라며 으름장을 놓지만
여주는 남주... 아니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큰 슬픔에 사로잡혀 당장 기차를 타고 유럽 종단...
도착하니 오빠는 이미 혼수상태고, 사흘 만에 깨어나. 그리고서 지금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린다는 '그 때'임을 알게 되지.
여주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며, 내가 계략을 짜서 받게 만든 유산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서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세상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말하고,
여주는 자기도 오빠를 많이 사랑한다고 대답하면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엉엉 울면서 얘기해.
그리고 그날 새벽, 혹시 모를 사태에 옷도 안 갈아입고 선잠을 자던 여주는 다정하게 웃고 있는 오빠의 환영을 보게 되고, 그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돼...
이저벨에게는 그녀를 긍정하면서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 랠프였고
랠프에게는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 이저벨이었고
어쩌면 가장 잘 맞는 짝이었을 랠프를 시한부로 설정해놓은 작가양반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아무튼 여러 타입/계층을 대변하는 남자들 중에, 랠프가 가장 주인공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해...
(전형적인 미국인인 캐스퍼, 영국의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워버튼 경에 비해 랠프는 애초에 하버드와 옥스포드를 다 다니며 반반으로 키워진 존재이기도 함.)
ㅠㅠ 작중에서는 안 죽었으면 했는데... 게다가 죽기 전에 캐스퍼에게 내가 간 후 이저벨을 꼭 돌봐달라고 하고 감...
이 소설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걍 얘네들 망한 사랑(?)이 젤 슬프다ㅠㅠ 둘이 같이 있을 때 제일 행복해 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