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4포 들어있구요. 식사 평소보다 양 좀 줄이시고, 먹는 거 좀 조심하세요. 식사 후 30분에서 1시간 후에 챙겨 드시면 되요."
하얀 가운의 약사는 평소와는 다르게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길 부탁하였다. 더부룩하고 속이 약간 쓰릴때에 처방해주는 연탁액의 알마겔을 받아든지 약 5분 전의 일이었고, 5분 전의 전문의의 주의였다.
이 말을 그 때 5분 전에 놓고 왔으면 참 좋았을텐데, 왜 이제서야 모든게 다 끝나서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1분 전에 떠올랐다면 난 여기에 서 있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난 약을 받고선 유유히 내 자전거에 몸을 싣고 독서실로 가는 길이었다. 언제나의 편의점을 지나면서 여전히 허니버터칩이 없으리라 여기며 스쳐지나자 새로운 떡볶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이 동네는 뭔가 이상해졌어. 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더니 음식점이 파죽지세로 늘어서고 있잖아. 골치아프게 괜히 한 입 해보고 싶은 가게들로 말이지..."
요 몇 달 사이에 이 상권에 벌써 3곳의 음식점이 새로 들어왔다. 저녁시간대의 맘스터치는 이미 학생들로 들어가기조차 버거워 보였고, 가장 새로 오픈한 짬뽕집은 "사나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껄끄러웠다. 쓸데없이 매울거 같아서, 그리고 딱히 지금 짬뽕을 포장해 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독서실에 누가 짬뽕을 포장해서 가져가겠나. 데스크를 지키는 주간총무가 깜짝 놀라거나 웃거나 둘 중 하나일 게 뻔하였다.
떡볶이. 먹어본 지 1년은 넘은거 같다. 신규 매장이라 그래도 신경을 많이 쓸 것 같기도 하고, 포장하기도 딱이니까 얘가 나아보였다. 정말이니 오픈식 주방은 시선으로 입맛을 강탈한다니까... 그런데 양이 문제다. 떡볶이를 정말 떡볶이만 먹자니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튀김없이 떡볶이를 먹으라니 굳이 옆에 우유가 있는데 깡으로 콘프레이크를 씹어먹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둘이 하나일 때 완벽해 보인다. 독서실에 전화를 걸어 누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이미 머리속에 그려진 메뉴는 1인분을 넘어섰다. 급한 사정이 생겼는지 주간총무는 휴무를 냈고, 대신 비번총무가 대신하고 있었다. 3인분 까지는 아니더라도 2인분정도만 되어도 되겠구나 싶어서 전화를 끊자마자 얼른 메뉴판을 훓었다.
순대... 모듬 어묵...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분식을 1년간 안 먹었더니 뭔가 보자마자 팍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랄까 땡기는 감정같은것이 그저 머리 속에서 실타래처럼 얽혀선 도저히 풀릴 생각을 안 했다.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이럴 때에도 적용되는 건가. 그냥 꼬인 실타래 푸는데 내 시간을 날릴 생각은 없었다.
"모르면 1번부터지. "
예전에도 모르면 그냥 왼쪽에 제일 상위메뉴를 골랐다. 일본에서 라멘집 식권자판기가 대체로 왼쪽 젤 윗줄의 메뉴가 간판메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를 땐 그냥 좌!상!
"세트메뉴1번 포장해 주세요."
음식이 준비가 되고 결제가 완료 되었다. 난 멀뚱히 서 있기만 하였다. 튀김 옷을 입고서 180도 못 미치는 기름이 담긴 튀김기에 들어가는 새우의 차르르륵 노랗게 올라오는 소리가 30초, 테이블 주문으로 나가는 오뎅이 탱글한 속내를 감추듯 국물과 함께 그릇속에 담겨지는 데 15초, 붉은 떡볶이가 담겨진 포장지 위에 파고명이 곰바지런히 올라가는데 7초. 이들이 이렇게 주방에서 알버둥대는 동안 내 머리속에는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약사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 이거 제 껀가요??"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는 포장된 봉투가 어느새 카운터 옆 쪽에 놓여져 있었다.
"아... 네. 그거 가져가시면 되요." 던져진건지 받은건지 모를 어색한 봉투를 쥐고 선 매장을 나오면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놓은 점원의 무뚝뚝함에 아직 따스한 음식의 따뜻한 온기가 괜시레 실감나지 않았다.
"아니에요 오빠 칼 있다니까요? 튀김에 있어요. 내가 장담해요."
젓가락으로 연신 칼을 뒤지는 비번총무의 말투에서 분식애호가의 경험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세계의 상식에는 맞지 않았던건지 포장을 뜯는 칼은 나오지 않았다.
"어휴, 호갱님. 어디 금가루 뿌린 떡볶이만 드셨어요? 칼같은 소리 하지 마시고 그냥 젓가락 끝 날카롭게 뽀개서 뜯을테니 절로 좀 가세요."
내가 모르는 분식의 세계는 아직 몰라도 되니까 그냥 젓가락으로 뜯어재꼈다. 아직도 올라오는 김에서 맵지않길 빌고 또 빌었다. 쫄깃한 떡을 한 입 넣고선 긴장된 혓바닥과 이를 놀렸다. 난 매운게 싫은게 아니다. 그냥 괜히 안 매워도 되는데 쓸데없이 매운게 싫다. 그냥 뭔 맛인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매울거면 여러 식재료를 넣은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어서 그런거다. 적당히 매우면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이 떡볶이는 떡볶이라는 매운 느낌 딱 그정도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어? 순대 살짝 매운거네요?"
안심하고 한 입 두 입을 넘길때 즈음 비번총무가 순대에 대해 한마디 하였다. 순대가 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어리둥절한 개념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는게 맞는 표현이다. 저 빨건 것 때문에 그런건가 싶기도 하면서 입에 넣었다.
"안 매운데? 우리 막내총무님 공부 빡세게 하시더니 뇌에 마비가 안 오고 혀에 마비가 오셨나봐요."
그냥 찰순대인데 뭐가 맵다는거지? 프로 분식커들에게는 그런게 구분이 되는건가 싶은 의문을 삼키면서 튀김을 집어삼켰다. 난 고구마를 막내총무는 김말이를 떡볶이에 걸맞는 튀김의 히로인이라며 치켜세우는 사이에 거진을 먹어치웠고, 입가심으로 쥬스를 들이키며 한마디 내뱉었다.
"그냥 딱, 그 가격인거 같다. "
튀김 기름은 좋아보이는데 그거 말곤 난 딱히 평가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 내겐 평범했다. 떡볶이, 분식, 그 느낌 그대로의 적응된 맛이랄까 흔한 맛이랄까 뭐 그런 맛이었다. 그냥 순대말고 어묵으로 먹었으면 더 나았으려나 싶지만 그렇다고 다시 찾아먹는다는건 좀 글쎄올시다였다. 씨앗호떡은 맛있어보였으니 그거 먹으러 가는 겸 다 먹어볼 순 있지만 아마 내 옆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도전할 것만 같았다. 대식가가 아니라면 2인분으로 살짝 낭낭한 양일지도 모르니까.
씨앗호떡이 괜시리 궁금해질 즈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우린 자리를 비웠고 각자의 자리로 평범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