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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남태령에서 밤 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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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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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1일 저녁부터 22일 아침까지 남태령의 기록

 

12월 3일 계엄이 발표되던 날, 나는 그 사실을 다른 친구에게 전하며 메시지 앞뒤로 [ㅋㅋㅋㅋㅋ]를 붙였다. 시간을 되돌려 2022년 10월의 그 날에도, 나는 사람들이 쓰러진 동영상을 보고 왜들 저러냐고 웃었다. 나는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서야 당시에는 파악하지 못했던 상황을 인지했고 그제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항상 퍽 늦되었다.

우리 집은 국회까지 차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3일 새벽, 나는 나갈까 말까 갈팡질팡 하다가 침대에 깔아둔 온열매트가 너무 포근하고 품에 안긴 강아지가 따뜻해서였는지 그냥 스르륵 잠에 들었다. 아니 나는 사실 거기에 가서 차를 댈 곳을 찾을 생각에 골치가 아팠을지도, 귀가해 다시 샤워할 일이 귀찮았을지도. 그런 마음을 합리화하려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내가 가도, 가지 않아도 상황은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 힘이 없다고.

무력했던 밤들이 지나고 나는 계속 어떤 가책을 느꼈다. 금방 갈 수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2차 계엄을 막기 위해 칼바람이 부는 국회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걸 인터넷으로 보았다. 그래도 나는 나가지 않았다. 밖은 춥고 낯설고 안은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아끌기에.

 

12월 7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국회로 나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간 친구와 피켓을 흔드는 동안 나는 여전히 죄책감을 덜지 못했다. 혼자서 식당에도 잘 가고 공연장에도 잘 가면서 왜 그럴까, 생각하면서 다시 만난 세계를 화음 넣어 따라 불렀다.

 

21일에는 친구들과 이른 점심을 먹고 함께 집회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조금 늦잠을 잤고, 꼼꼼하지 못한 옷차림으로 사탕 몇 개와 바닥 깔개만 챙겨들고 서둘러 나섰다. 식사로는 하이디라오 훠궈를 먹었는데 생전 처음이었어서 꽤나 즐거워하며 먹었다. 그 자리에서 집회에 가지 못하는 친구에게 빌린 응원봉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동안 트랙터 시위가 가로막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민원글을 복사해다 올리며 아마 상황이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몇 주간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게 윤석열은 퇴진하라! 하는 구호를 외쳤다. 중간중간 훠궈에 든 기름 탓인지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고작 몇 시간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일곱 시 경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친구와 헤어져 핸드폰을 보며 남태령의 상황을 보았다. 깨진 유리창을 보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가 기다리는데 오고 있던 버스가 눈 앞에서 우회했다. 나도 우회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잠깐이나마 자리를 지키자고. 계속 안 했으니까 이번엔, 하면서. 핸드폰 배터리는 고작 20% 정도 남았고 갖고 있던 핫팩은 행진 중에 추워보이는 사람에게 모두 주었어서 나는 정말로 두어 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집에 돌아가 강아지들에게 저녁밥을 주고 산책을 시킬 생각이었다.

 

남태령역에 도착했을 때 역 안은 퍽 한산하여서 나는 조금 불안했다. 2번 출구로 나와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 동안 소리도 들리지 않고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만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았기에 내가 맞게 가나보다 하고 계속 걸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해 다가가자 거기에는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농민 분이 계셨다. 누군가는 “의식을 잃었다고!” 하고 경찰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핫팩이며 담요를 가져다 그 분을 덮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는 낮 열두 시부터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 느끼는 두려움이 솟았다. 저 사람이 죽으면 어떡하지. 죽으면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를 둘러싼 몇몇이 필요한 인원 말고는 돌아가달라고 했고 나는 이상한 박자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스피커 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숱하게 사진이 찍힌 그 박살난 트랙터 문의 유리조각을 밟고 도착한 시간은 저녁 여덟 시였다. 집까지 가는 막차 시간을 확인하고 앉아 빌린 응원봉을 흔드는데 다른 시민이 다가와 응원봉 불을 꺼달라고 했다. 집회로 몰리면 안 된다고. 그렇게 불 꺼진 응원봉을 들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도와달라 외쳤다. 구급차가 왔는데 경찰들이 차를 빼주지 않는다고. 단숨에 앞쪽에 앉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경찰은 슬금슬금 차를 뺐다. 겨우 들어온 구급차에 그 분이 실려나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사람들은 도로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무대로 쓰이는 트랙터가 보이는 방향으로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었다. 거기에 앉아있다보면 누군가 달려와 무슨 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소리가 파편처럼 들렸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물대포를 쏠 지도 모른다고 웅성거리기도 했다. 하필 면 추리닝을 입었는데. 젖으면 엄청 춥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와 자유발언이 이어졌고 일어나서 체조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찰 버스에서는 해산하라는 방송이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열어라- 차 빼라- 하는 구호를 연호했기에 나는 그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아직도 다는 모른다. 내가 들어왔던 길은 이미 막혔는지 경찰차가 가로막은 반대편에서도 차 빼라- 는 구호가 계속 들렸다.

 

열 시쯤에는 집에 가야지, 했는데 막차를 타야지, 하고 계속 앉아있었다. 농민 분들이 트랙터에 올라가 “같이 밤 새주실 거죠?”라는 말보다 “먼저 가시는 분들은 미안해 하지 마시라”는 말이 더 무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발언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생일카페에 가기 위해 나왔다가 이리로 왔다는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도 있었고 데이트하러 나왔다가 이리로 왔다는 얇은 코트를 입은 남자도 있었다. 트랙터에 올라간 것이 신이 난다는 소녀들도 있었다. 나는 응원봉을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나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고작 경찰 버스로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니 점점 눈물이 늘어서 몇 번은 울컥하기도 했다. 투쟁!

 

사회 보시는 분이 “막차가 끊겼습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환호했다. 막차가 끊긴 게 좋아서 그랬겠나.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였지. 나눔 받은 핫팩을 무릎에 비비며 버티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보조배터리를 사러 나가려는데 아까 올라왔던 길목마저도 경찰 버스로 막혀있었고 경찰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다시 들어가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도로 들어가 앉았다. 그때부터는 죽과 빵과 음료수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나는 아직 버틸 만해서, 더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먹지 않았다. 다들 그런 생각이었는지 음식은 계속 뒤로 넘어갔다.

 

내 앞과 옆에는 대학 동문인 듯한 친구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에게 부탁해 배터리를 조금 충전한 사이에 낭보가 들렸다. 경찰이 차를 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함성을 지르는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앉았던 자리를 정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바닥의 쓰레기들을 주워 모았다. 나는 집까지 가는 심야 버스가 있는 것을 보고 그래도 집에 가서 잘 수 있겠구나, 했다. 나는 기념 삼아 트랙터 사진을 몇 장 찍고 가방을 챙겼다.

 

고작 몇 미터를 가서 우리는 멈춰섰다. 경찰이 이제는 사당에서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화가 났지만 폭도가 아니었다. 다시 자리를 정비해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식들이 정말 물 밀듯이 도착했다. 피자, 햄버거, 김밥……. 고기국수며 쌀국수처럼 뜨끈한 음식들도 잔뜩 와서, 어떤 시민은 일어나서 먹방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제대로 된 걸 먹었다가 배탈이 날지도 몰라 불안해서 콘치즈 페스츄리를 하나 받아서 먹었는데 그걸 먹었더니 몸에 피가 돌아서 조금 더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옆에 앉은 사람을 흘긋 봤는데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색이 익숙해서 혹시 더쿠 하시느냐고 물었다. 아는 체를 하고 싶거나 친목을 하고 싶어서는 전혀 아니었고, 단지 너무 외로웠다. 너무 춥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짧게 몇 마디를 나누고 나란히 앉아서 응원봉을 흔들었다. 그녀의 존재가 내심 든든했다.

 

그때부터는 서서 몸을 움직였다. 얼어붙은 다리와 앉아있느라 굳어버린 골반이 욱신거려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하기도 하고 아무 노래에나 춤을 췄다. 자꾸 들어오는 핫팩을 들고 뒤에까지 가서 전달하기도 했다. 트랙터 무대에 올라선 농민은 “여러분께서 지금처럼 여덟 시까지만 버텨주시면!” 하고 호소했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나서 마음이 아팠다. 첫차가 뜰 무렵이면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도 가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히 그 시간에 사람들은 우르르 집에 갈테고 그러면, 여기가 텅 비어버리면, 저들이 원하는 것처럼 규모가 줄어들까봐. 해가 뜰 때까지는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 화장실에 갔는데 이미 역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데군데 핫팩과 마스크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의 통제로 역 안의 남자화장실도 여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에게는 밖으로 나가 다른 화장실을 이용해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큰 소리 내지 않고 돌아서는 모습에 또 조금 감격했다.

 

화장실을 쓰고 나와 맨 뒤로 가자 인원이 많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불안했다. 응원봉을 이 손 저 손으로 갈아 쥐며 계속 흔들었다. 목이 아파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려서 더 춤을 췄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한 줄씩 더 길게 늘어서는 것 같았다.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먼저 떠나는 더쿠 친구와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이별하고 해가 뜨는 걸 바라보았다. 이제 세상은 환했다. 함성은 더 젊고 강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들어섰다. 핫팩과 물이 잔뜩 쌓여있어서 또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내 편한 침대에 누워서 밤새 보지 못한 핸드폰을 보았다. 밤새 함께 투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은 죄책감 없이 볼 수 있었다.

 

계엄 이후로 부모님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 부모는 2찍이었으므로. 혹시나 아직도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을까봐 그 사실을 알기가 두려워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 22일 저녁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느냐고, 잘 지내고 있느냐고. 전 같았으면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갔을 텐데 왜인지 그게 잘 되지 않아서 나라가 이 모양이라 잘 못 지낸다고 해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던 말을 쉴 새 없이 했다. 그럼 종북 빨갱이당을 찍으라는 거냐. 이거 그런 계엄 아니다. 우리는 광화문에 나간다. 머리가 차갑게 식어 엄마 아버지는 그렇게 사시라고, 나는 그런 엄마아빠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비웃었다.

야,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엄마는 모른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나 같은 애 백 명, 천 명, 만 명이 뭘 할 수 있는지. 그런 애들이 십만 명, 백만 명이 모이면 뭘 할 수 있는지.

 

내가 좋아하던 노래 중에 “난 비록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네”라는 가사가 있다. 그 길던 밤은 내가 강한 우리를 확인한 밤이었다. 난 비록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그래서 나는 강자의 편에 설 것이다. 우리가 모이면 약한 자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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