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지진으로 시끄러운 거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그때 기억을 적어보려고 함
때는 2011년 3월 11일
최애의 이벤트가 3월 12일 예정이었고 귀한 티켓도 확보했기 때문에
나는 유학하던 친구와 만나 즐겁게 놀 생각으로 도쿄행 비행기를 탔음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점심쯤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찾고 신주쿠행 표를 끊었음
열차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열차가 묘~하게 좌우로 움직이는 것 같았음
일상적인 흔들림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점점 지하철이 좌우로 출렁거리기 시작함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던 가족이 "에? 지진 아니야? 어?" 하면서 내렸음
바로 그때 직원이 부리나케 와서 "빨리 내리세요!"라고 외쳤음
얼른 캐리어를 끌고 플랫폼으로 나오는 순간
"엎드리세요! 입간판이 쓰러지지 않는 곳에!"라는 말이 들림
뭣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어영부영 플랫폼 바닥에 엎드리자
지하철 전기가 전부 나가서 캄캄해지더니 땅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함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지진이었음
놀란 나머지 옆에 엎드려 있던 사람에게 "일본에서 이 정도 지진은 흔한 건가요?"라고 물어봤을 정도
"이건 꽤 큰 지진이네요"라는 대답을 들었음
그렇구나... 꽤 큰 지진이구나....
하지만 이제 끝났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모두 실외로 나가라는 안내를 받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일단 계단을 올라 바깥으로 나왔더니 공항 주차장이었음
거기서 한동안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두 번째로 흔들리기 시작함
우르릉쾅쾅 하는 땅울음에 사람들 비명소리
이번에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엎드렸음
어차피 바닥이 흔들려서 서 있을 수도 없었음
고개를 쳐들어보니 건물 안테나가 미친듯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음
두 번째 진동이 지나가고....
낙하물이 떨어지지 않는 개방된 주차장에서 대기하게 됨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휴대전화(스마트폰 보급 초기라 내 폰은 아직 피처폰이었음)로 한국의 집에 전화를 해봄
전혀 걸리지 않았음
양해를 구하고 옆사람 폰을 빌려서 전화해봤지만 여전히 안 걸렸음
(나중에서야 통신량 폭주로 마비됐었다는 걸 알게 됨)
한참 시도한 끝에 간신히 전화가 연결됨
"어, 엄마 이차저차해서 지금 좀 큰 지진이 온 거 같아... 다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호텔로 들어가면 다시 연락할게"
하지만 지하철로 다시 보내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음
한참 대기한 끝에 사람들을 인도하더니 전부 나리타 공항의 남쪽 윙에 몰아넣음
사람들은 불안하게 웅성웅성하고 있었음
땅이 계속 조금씩 출렁거렸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이 "아까처럼 큰 흔들림이 또 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음
조금만 크게 흔들려도 소리 지르는 여자가 있었음
어떤 남자는 "아니야 이건 큰 거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음
나는 놀라고 당황스럽고 무섭고 아무튼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와중에 너무 추웠음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듯)
캐리어를 열고 니트를 두 장이나 겹쳐입고 바디타월을 둘렀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음
그때부터 무한정 기다렸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방송도 꺼져있고 스마트폰 일상화 전이라 모든 정보가 차단되어 있었음
공항에서는 "조금 전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는 없습니다"만 반복하고 있었음
그런데 왜 지하철도 재개하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라는 거야?
뒷사람이 "아마 오늘은 여기서 나가지 못할 거래요"라고 했음
참다 못한 어떤 아저씨가 공항 직원들을 붙잡고
"TV를 켜든 라디오를 켜든! 뭔가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라고 화나서 호통치고
다른 사람들은 "저건 모두의 목소리야"라고 했던 게 기억 남
나도 직원에게 뭔가 물어봤던 거 같은데 직원도 곤란해하면서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못했음
그렇게 저녁이 되도록 계속 기다렸음
어느 순간 구호물자로 물 500ml 짜리를 하나씩 나눠줌
그때 내가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고 나리타로 갔었는데
유나이티드 항공은 되게 빈약한 샌드위치를 기내식으로 주거든
그거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였는데 물까지 다 먹어버리면 안 될 거 같아서
최대한 물을 아끼면서 입안을 조금씩 적시는 느낌으로 먹었음
제크 과자를 또 나눠줬던 거 같은데(통이 여기저기 굴러다녔음) 나는 못 받았고
침낭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침낭 실은 카트가 오는 걸 보자마자 사람들이 와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한꺼번에 달려드는 바람에
사람 틈바구니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간신히 하나 건져왔음
공항에서 자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음
한국에서 걱정하는 문자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었는데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더 걱정할까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게 제일 정신적으로 힘들었음
그대로 공항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
아무데서나 잘 자서 잠은 왔음.....
사상자가 없다는 아나운스가 계속 나오고 있건만 이상하게도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계속 나고 있었음
새벽에도 땅이 계속 흔들려서 몇 번 깼는데
제일 크게 왔을 때는 내 눈앞 공항의 커다란 유리문이 덜컹덜컹덜컹 흔들려서 무너지지는 않을까 했었음
다음날 3월 12일 오전 5~6시쯤에 다시 깸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단 공항을 돌아다녀봄
공항에 설치된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계속 초토화된 풍경만 보이니까 뭐가 뭔지 잘 몰랐음
사태 파악이 잘 안 되니까
'어떡하지? 일단 도쿄 시내의 호텔로 가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자판기에 남은 음료수라도 없을까 하고 돌아다녀봤지만 다 털려 있었음
간신히 빈 코드를 찾아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더니
뭔가 불쌍해보였는지;;; 일본 아줌마들이 과자를 나눠줌 (고맙습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친구와 통화했는데
"윗지방은 정말 큰일났대" "이벤트는 취소됐다니까 시내로 무리해서 들어오지 마"라는 말을 들음
그렇다면 한국으로 가야하는 건가....?
그래서 그거 먹고 일단 위층으로 올라가봄
항공사 부스가 열려 있었음
식당은 모두 닫았는데 유일하게 맥도날드만 열려 있었음
어떻게 열 수 있었던 걸까 지금도 궁금한데
아무튼 빅맥을 주문해서 바닥에 앉아 억지로 먹었음
굶다가 먹는 건데도 스트레스받아서인지 별로 맛이 없더라고
부모님은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음
마침 활주로가 복구돼서 아시아나 비행기가 오후에 간신히 한 대 뜬다는 소식이 있었음
그것만 믿고 아시아나 부스에 가서 어찌어찌 편도행 티켓을 끊었음
되게 비쌌던 걸로 기억함.... 백얼마....이백얼마.....?
결국 그걸 타고 점심 때쯤 서울로 돌아옴
돌아와서 인터넷에 접속하고나서야 얼마나 대형사고에 휘말렸는지 실감함
그뒤로 일본을 못 갈 정도로 트라우마가 남은 건 아니지만
땅 흔들림에는 예민해져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움찔움찔함
그리고 재난영화에서 지진이나 붕괴되는 묘사를 볼 때 긴장해서 굳어버리게 됨
벌써 13년이나 지났는데도 한순간 한순간이 기억나는 거 보면 뇌리에 깊게 새겨지긴 한 듯.....?
나는 일본어가 자유로운 편이라서 주위에서 말하는 거라도 주워들을 수 있었지만
일본어가 안 되는 사람이면 아마 굉장히 힘든 게 재해 상황일 거임
스마트폰 시대라서 라떼보다는 정보를 얻기 쉬워졌을지도 모르지만
통신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는 모르는 거니까.....
지금 일본 가도 괜찮을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해는 복불복이고 나도 지진 이후로 일본을 드나들었지만 (최애 봐야한다구요)
요즘처럼 경고하는 상황은 또 일본에서도 전례없는 사건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봄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내가 당연하게 발 딛고 있는 땅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절망감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