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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동생의 빨래감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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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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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차 얼마 안 나는 남매인데 서로를 절친으로 생각하는 친한 사이야. 취향은 다르지만 성향은 비슷하고, 부모나 다른 친구들보다도 더 편하게 생각해.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내가 우울증+대인기피로 휴학할 때 동생도 심한 우울증으로 자퇴했어. 부모님 일하는 곳이 각기 다른 지역이라, 모종의 이유로 떨어진 채로 생활하다가, 내 우울이 나아갈 때 쯤 다시 동생과 살게 됐어.


내 병의 원인은 내가 상처받은 걸 외면하고 참으려고만 하다 병이 났던 거라, 더는 내가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 그걸 아무렇지 않은 척 참고 싶지 않았는데. 위태로운 동생에게는 그럴 수가 없는 게 너무 힘들고 무서웠어. 다들 나 보고 참아달라고 하는데, 모두가 동생 마음은 살펴주지만 내 심정은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어.


그냥 의사 확인하려고 밥 먹을래? 라고만 해도 밥 먹으라는 압박 같다고 불만 가지고 화내곤 했어. 근데 부모님은 잘 달래서 자꾸 동생이 뭔가를 게 만들어 달래. 네가 제일 친하니까, 동생이 널 제일 좋아하니까. 나도 알바 경험 하나 없이 취업해서 첫 사회생활 중이라 아침 저녁으로 구역질하고 종종 무서워서 휴게실 구석에 박혀서 버티고 있었는데. 내가 조금만 말을 잘못 해도 동생이 자해하고 오는 게 너무 버거웠고, 숨막혀서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어. 동생도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아는데, 나도 걔가 딱하고 안쓰러운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걔가 나를 벌주고 괴롭히는 것 같았어.


차라리 말을 해주면 되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말도 안 해주고. 나 때문에 기분 나쁘다는 티는 있는대로 내고, 자해해서 난 상처 치료하기도 싫어하고, 부모님한테는 내가 말을 열받게 한다고 하는데. 뭐가 싫었던 건지 알아야 고칠 거 아니야. 물어봐도 말도 안 해줘.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거짓말만 해. 걔가 내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걸 알아도,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공격받는 상황이 무서웠어. 내가 이걸 견디다가 또 우울에 빠지면 어쩌나 싶은데, 그렇다고 마주 화내면 진짜로 내가 걔를 망가뜨릴까 봐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


하루는 내가 퇴근하면서 저녁 먹게 지금부터 조금씩 잠 좀 깨보라고 했는데 화가 났어. 내가 하는 말이 비꼬는 것 같았대. 실제로 생활 패턴 고쳐가고 있었는데, 도로 자고 있어서 화가 난 상태였어. 직접 화낼 수는 없어서 일부러 더 상냥한 투로 말했는데, 그 포인트를 느꼈나 봐. 우리는 서로 비슷하고 잘 아니까. 뒤늦게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연락을 안 받아. 급하게 집에 오니까 걔가 없더라. 칼이나 불을 들고 나갔으면 어떡하지? 너무 힘들어서 현관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방문 열고 나오더라. 평소 방문을 열어놓고 지내다, 그날은 내가 보기 싫어서 그냥 닫아놨던 건데. 나는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순간 나간 줄 알았던 거라. 손 떨리고 눈물 나는데 그냥 아무 일 없던 척 방 들어가서 씻고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우울증에서 벗어나면서 다시는 내가 부당하게 상처입고 숨죽이지 않게 지켜주고, 나를 위해 맞서 싸워주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어. 그게 내가 가장 지키고 싶고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어. 그런데 동생을 지키려면 내가 나를 억누르고 깎아내야 한다는 게. 내가 나를 상처입히는 기분이었어. 걔만 나한테 화나는 거 아니고, 나는 걔 행동에 상처받는데. 나도 너무 속상하고 힘든데. 난 그런 티를 내는 것조차 허락이 안 되는 거잖아. 억울하고 힘들었는데, 그렇다고 동생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오래 고민했고 많이 울었는데, 그냥 기꺼이 나를 깎아주자고 겨우 결심했어. 나도 약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동생보다 상황이 나은 사람이고. 나는 더 오래 산 누나니까.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동생이 일방적으로 내 말을 오독하고 화를 내도 더는 상처받지 않았어. 약속을 어겨도 실망하지 않았고, 다그치지도 않았어.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이 괜찮아질 때까지 그저 기다려주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걔한테 뭔가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포기하게 됐는데. 기대가 없으니까 걔가 못나게 구는 게 밉지가 않더라.


동생한테도 자주 얘기해줬어. 나는 네 행동에 상처받고 힘든 순간이 많지만. 그걸 기꺼이 감당해도 괜찮을 만큼, 너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도 마찬가지라고. 내가 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포기했을 정도로 널 사랑한다는 걸 알 필요가 있고. 너는 이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지 말되,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느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동생도 많이 안정됐어. 전에는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감정적으로 버겁거나 힘든 상황이 오면 내게 제일 먼저 연락하더라.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푸념을 하기도 했어. 자해 빈도도 줄었고 취미 생활도 시작하고 가끔을 아르바이트도 했어. 여전히 우울한 시기가 오면 방에서 잘 나오지 않지만, 내가 밥 먹겠냐고 묻는 거로 상처받지 않아.


지금도 완전히 괜찮은 상황은 아닌데, 약속이 늘고 외출도 많아졌어. 술 마시고 들어오면 새벽인 것도 까먹고 내 방에 들어와서 나를 깨워. 그리고 바닥에 누운 채로 자기가 오늘 재밌었던 일을 들려주고, 좋아하는 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얘기해. 내가 뭔가 대답하면 귀기울여 듣고 나서 그래야겠다 긍정하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전에는 나가지도 않고, 잘 씻지도 않아서 동생 몫의 빨래가 아예 일주일 내내 안 나오는 날도 많았는데. 요즘은 수건도, 외출복도 많이 있어. 새삼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 나도 그렇지만, 동생도 계속 강해지고 있어.


불안한 사람 곁을 오래 지키는 건 버거운 일이지. 지탱하기 위해서 계속 나 자신을 소모해야 하니까. 그래도 계속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다고, 그렇게 결정한 덬들 모두 파이팅이야. 아득하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모든 일들도 버티다 보면 출구가 보이는 날이 온다. 나도, 동생도, 다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괜찮아지자. 계속 그렇게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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