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둘다 고학력자이신데 경제적 능력은 마이너스인 사람들이야
그래서 자식들은 다 미납, 연체 인생을 살게끔 해주셨어
급식비, 인터넷 요금 밀리는 건 예삿일이고 학교 준비물인 문제지도 못 살 형편이었어
대학 입시에도 관여해주신 바가 없어서
그냥 자식들 모두 성적 맞춰서 집 근처 국립대 진학
학자금 대출+생활비 대출+알바로 근근히 살아가다
모가 50 중반에 뇌졸중으로 편마비 얻어 부가 간호한 게 8년
다들 취직하고 대출 갚아 가고 이제 일반적인 삶 사는구나 싶을 때
부가 대장암 말기 진단
수술은 의미없고 6개월 시한부 판정, 항암으로 생존 연장 가능하다 들었어
부는 항암은 싫다며 공기 좋은데로 방 얻어서 지내고 계셔
가까운 지인인 한의사가 한약재로 처방해주면 그걸 맡겨서 약 먹고 자연주의 생활 중
그간 부모 관련해서는 언제나 빚 뿐이었고
빚쟁이들이 찾아오고, 독촉하는 삶의 연속이었어
그렇다고 자식 키우느라 생활비가 많이 들었냐?
아니, 고기구워먹는 외식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졸업식이나 되어야 중식집 가서 짜장면 먹는 정도
학원도 단 한번 간적 없고 샤프도 용돈으로 사본 적 없어
대학 원서도 고3 담임이 돈 내줘서 1군데만 써서 갔고
급식비 지원받아달라고 담임 찾아다닌 것도 자식들이 했어
막내에겐 속옷 한 번 사준 적이 없어서
막내는 중3부터 알바해서 자기 용돈 충당해서 썼어
정서적으로 학대했냐? 글쎄 나쁜 말을 하거나 그렇진 않았어
경제적으로 파생되는 모든 것들이 한숨 투성이어서 죽고 싶었을 뿐
첫째인 내게 경제적 사정이나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 부모 덕분에 자아가 생길 때는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었지
현재 모는 요양병원에서 지내시고
부는 다른 지방에서 방을 얻어 지내셔
지금 이딴 글을 쓰는 건 엊그제 부로부터 전화를 받아서야
부는 예민 까다로운 사람이고 현재 살고 있는 방이 마음에 안들어 해
현재 살고 있는 방은 한달 65만원으로 부의 예산 초과로 35만원은 자식들이 분담하고 있어
처음에는 부가 마음에 들어하길래 계약했으나 살다보니 여러가지가 더 보이니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아
그래서 다른데 알아보고 옮겨라 라고 내가 말했고
부는 즉시 다른 방을 알아보고 괜찮은지 봐달라며 나보고 방문해달라 한거야
내가 추가적인 지불을 하기 때문에 결정권자라고 생각하는 듯해
나는 정말 이 상황이 모두 버겁거든
난 일찍이 결혼을 했고 자식도 낳아 기르고 있어
아주 어린 아이들은 아니라 애들만 두는데는 문제 없어
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들에게 에너지를 더 쏟는 게 아니라
사춘기 이래 내 평생 어떤 결정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부모에게 쏟는 에너지가 더 많다는 점이 너무나도 빡쳐
하지만 부모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자괴감을 느낀다는 게 이해가 안돼
이론적으로는 내가 미안할 것도 없고, 나 살기도 벅차다는 걸 알거든?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괴로운 걸까
나는 결혼을 해서도 당시 미성년자인 동생들을 챙기느라 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고
남편은 그걸 느끼고 나에 대한 복수심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기도 했어
그걸로 난 우울증 약을 복용했고 지금은 그냥 다 내버려두고 사는데 집중하자 하고 있는데 와중에 부까지 저 지경에 이르렀지
사는 게 정말 버거워
나는 여전히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방안을 준비해야 하는데
부모가 뱀파이어처럼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빨아먹는 것 같아
내가 다 놓아버리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이 지경에 이르렀겠지..
그냥 다 내버려두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