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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직장인 덬들에게 소설 '누운 배' 추천하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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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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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회원분이 빌려줘서 읽어봤는데, 

회사에 소속돼서 일하는 직장인 입장에서 와닿는 부분이 참 많았어

 

bRmcKk

 

 

이혁진 작가의 작품이고 2016년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임

(유연석 나왔던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이 작가 원작)

 

주인공은 중국 소재 작은 조선사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진수식이 끝난 배가 어느 날 원인 미상으로 항구에서 누워버려 회사에 비상이 걸리고

이 사태 해결을 위해, 회사 정상화를 위해, 또는 각자의 이권을 위해 움직이는

회사 내 여러 직급의 인간 군상들에 대한 소설인데 

 

무척 재미있기도 하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

 

 

나는 한 회사에서 십수 년을 일했고 지금은 팀장인데

팀을 꾸려야 하는 내 입장에서도 와닿는 부분이 많았지만

사회 초년생이거나 회사 일하면서 고민이 많은 덬들에게

더 괜찮을 것 같아서 추천해

 

회사 굴러가는 모습이 너무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이렇게까지 사실적일 수 있나 싶다가도

자기개발서 100권보다 이 책 한 권이 더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음

 

 

아래는 몇 군데 발췌:

 

그렇다면 그 희망과 기대는 무엇이었나? 남들의 욕망이었습니다. 내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내 마음 안에 있을 뿐 실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바랐기 때문에 나 자신도 따라서 바라고 있던 것, 그런 것일 뿐 진짜 희망과 기대, 내 젊음과 순수한 즐거움 속에서 올라온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닌 것들, 그 욕망들을 쓸어내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마흔여덟이었지요.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뱃사람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요. p274

 

위 구절은 새로 취임한 황 사장이 흘러온 과거를 반추하는 대목인데

남들이 추구하는 갓생, 돈, 집, 승진 같은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목표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줌

 

 

 

최 부장의 마지막 날은 그날 밤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 같았다. 앞서간 사람들은 각자 이정표였다. 그만큼 갔다는 것일 뿐 그곳이 끝이라는 뜻도, 그 길로만 갈 수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꿈이나 이상은 인생이 주는 것, 젊음이 주는 것이다. 가능성이 사그라지고 살아갈 날보다 더 많은 과거들이 자신의 뒤로 퇴적하면 꿈은 가벼워지고 옅어지며 이윽고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자신이라는 지렛대는 꿈과 이상 대신 안정과 평안을 드는 데 쓰이고, 그러다 나중에는 이전 팀장이 말한 것처럼 그것들을 움켜쥐기 위한 세력을 차지하는 데만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일일까?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조차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되는 것뿐이었다. p298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년,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 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나올 것이다. p301

 

회사를 오래 다닌 나에겐 아프게 다가오는 구절이었어

 

나는 입사할 때 3년 채우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왔거든

지금 회사에 만족하고 있어서 후회하진 않지만

그 때 다른 길을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은 가끔 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회사에서 제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려워도 전망이 있거나 아니면 제대로 배워서 내 기술로 삼을 교육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봉이라도 세야 할 것 같습니다. p311

 

꼭 동기들이 아니라도 3년 동안 교실처럼 매일 아침저녁 드나들었다. 정이 붙는 것이 당연했다. 싫은 일, 싫은 사람도 많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아무 상관 없는 것, 오히려 지금 정을 떼려는 핑계였다. 다행이었다. 회사가 그저 월급이나 주고 괴롭기만 한 곳처럼 말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걸까? 하루에 열 시간 넘게 붙박여 있는 곳에서 푼돈에 그저 인생을 끊어 파는 것에 불과하다면, 아무 정도 남기지 않는 것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망할까? p320

 

마지막 출근 전날이었다. 내일이 마지막 퇴근이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자, 이제 제가 말씀드릴 건 다 드린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새로 받은 업무까지 인수인계하고 나서 내가 말했다. 하 고문이 작지만 맑은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잔잔히 웃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하 고문이 대뜸 말했다. “사는 거 별거 아이데이, 문 대리.” “네?” “지금이야 막막하고 답답하겠지만, 별별 생각 다 들겠지만 살아보면, 살고 보면 참 별거 아이라, 사는 거.” 나는 웃었다. 감추고 억누른 불안과 두려움이 꿰뚫린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명심할게요." 하 고문이 덧붙였다. "연연할 것 없는 기라. 지나고 나면 다 좋은 것만, 좋았던 것만 남는데이." 하 고문과 한 마지막 대화였고 인사였다. p324

 

덜덜 떨리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자유의 촉감이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내가 내 목적이자 결과가 된다는 것, 자유였다. 글을 쓰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했다.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 지,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될지 몰랐다. 자유는 그것에서 비롯하는 불안과 현기증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씨 뿌려 거둔 것들로 사료가 아닌 밥을 해 먹고 일을 할 터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이 성벽뿐인 가짜 성의 내부에서 의자에 푹 파묻혀 자신을 감춘 채 거미줄 아래에서 늙고 쇠약해져가는 사람들을 봤으니 젊은 내가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고생길이 훤했다. 내가 해야할 고생이고 나를 위한 고생이었다.

나는 내 젊음을 고생스럽게 써서 내가 늙어서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익힘이 되고 경험이 돼 젊은 사람은 결코 할 수 없을 만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해내야 했다. 내 젊음과 노력, 삶에 대한 애착을 모두 쏟아부어 할 일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늙어서도 소일거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의 피를 빨아 젊음을 유지하려는 괴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p327

 

나는 아득히 펼쳐진 구름을 봤다.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 같았다. p331

 

 

 

휴일 끝이라 내일 출근 힘들 텐데 다들 화이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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