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터 아빠는 엄마와 내 인생에서 지옥이었어. 매일 술마시고 들어와서 큰소리로 화내거나 집을 부수거나 했어. 엄마는 몇 번이나 도망갔었지만 결국 아빠한테 끌려왔댔어. 아빠가 해코지할까봐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같이 산 것 같아. 엄마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엄마한테 칼들고 협박을 한 적은 있어. 그래도 나는 딸이라고 나한테는 함부로 대하진 않더라. 대신 아빠는 착하고 만만한 엄마한테만 늘 지랄했지.
아빠는 말이 안통해. 술먹고 새벽에 들어와도 엄마가 밥을 차려줘야 했고, 술만 먹으면 밤새 시끄럽게 욕을 해댔어. 엄마는 심지어 다음날 출근하는데도. 그런 날이 일주일에 4번은 된 것 같아.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았어 어릴 때 내 소원은 딱 하나였어.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야지.
내가 경제력이 생기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아빠한테 대들기 시작했어. 아빠는 내눈치를 보는 척 했지만, 내가 대들수록 집요하게 엄마를 괴롭혔어. 그러다가 엄마한테 큰 병이 생겼어. 그 이후론 본인도 반성을 좀 했는지 예전처럼 술먹고 지랄 하지는 않더라.
나는 결혼을 해서 집을 나왔고, 아빠에게 사위가 생기고 나니 예전보단 훨 나아졌어. 그 고집불통에 도라이 같던 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다. 살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네 싶었거든. 이제 내눈치도 사위눈치도 함께 봐야 하니까.
그러다가 최근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집안에서 담배를 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오래된 아파트에서 거주 중이신데 그전에 아파트 복도 구석에서 담배를 폈는데 (그동안 복도에서 담배 핀 것도 놀랍지? 진짜 말 안통해.....)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 해서 눈치 보여서 아예 집 안 베란다에서 핀다는거야... 주민들한테도 민폐인데 같이 사는 엄마는 오롯히 간접흡연에 노출되잖아. 그 소리를 들으니까 당장 집에가서 아빠한테 뭐라고 하고 싶은데, 분명히 그렇게 하면 또 끔찍하게 엄마를 괴롭힐 것 같아서 걱정되거든.
그냥 눈 딱 감고 세게 나가볼까? 엄마를 우리집에 데리고 올까 생각도 했는데 그럼 아빠가 혼자 집에다 불지를것 같아 진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서....
제발 소원인데 아빠가 그냥 어디서 죽었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죄책감 드는데, 동시에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하는지 자괴감이 들어. 엄마가 너무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