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야기 하고 싶다기보다는 내 기억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기에 적어봐
수요일
2시
일하고 있던 중, 심정지로 응급처치 중이라며 빨리 병원으로 와줘야겠다는 전화가 왔다
급하게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오는데 눈물이 조금 나더라
아무런 준비도 안했는데 어떡하지, 아니다 이런 불안한 생각은 하지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4시
병원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함께 아빠를 보러 올라갔는데
아빠의 발끝이 제일 먼저 보였고
마주친 동생과 사촌언니의 얼굴에는 슬픔이 있었다
막상 아빠를 보니 눈물은 별로 나지 않았다
가셨구나 이제 일어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5시
다행스럽게도 언니가 들어둔 상조에 연락해서 빈소를 차릴 수 있었다
장례식장으로 이송하는 아저씨가 올 때까지 아빠를 볼 수 있었는데
늘 다물어져 있던 입은 벌어져 있었고 빠져버린 살로 깊어졌던 주름은 펴져 있었다
살이 빠지면서 없어져만 갔던 생기조차도 아예 없어서 아빠가 진짜 맞나 싶더라
7시
미리 와 계셨던 장례지도사님의 안내에 따라 장례식장 사무실로 들어가니
예상하는 방문객 수에 맞춰 몇호를 2일 사용하고 영정사진은 뭘로 할건지부터 골라야 했는데
미리 찍어놓지 않아 작은 증명사진을 확대해서 쓰기로 했다
장의용품이나 상복, 유골함, 영구차, 친척들이 타고 이동할 버스 등은 지도사님과 따로 상의하기로 하고
손님용 식사, 음료, 간식, 사용할 일회용품, 총 4번의 제사상까지 대충 결정했다
빈소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장례지도사님과 얘기해 선택을 해야했다
꽃장식, 유골함, 화장은 어디서, 안치는 어디로 할지 등등
상조 덕분에 100만원정도의 꽃장식은 65만원대로 줄어들었다
화장도 피켓팅이더라
자리가 잘 나지 않지만 상조 덕분에 조금 먼 시립 화장장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거주하는 도시와 협의된 납골당은 15년정도에 30~50으로 저렴하지만
사설은 250~500으로 열배정도 차이난다는 말에
지금 사는 곳과는 많이 멀어도 협의된 곳으로 안치하기로 했다
이 땐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찾아가서 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결정했었는데
나중에 선산에 할머니랑 형제분들이랑 같이 있는게 더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9시
사진만 있어 휑했던 모습이 꽃으로 채워진걸 보니까
빈소를 차린게 그제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장례지도사님의 안내에 따라 초배상을 치뤘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겪어봤기에 절차는 알고 있었는데
아빠 사진을 앞에 두고 하려니까 조금 묘한 기분이 들더라
혹시 모를 도둑을 대비해 조의금통은 미리 잠궜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 친구들과 회사에는 다음날에 알리기로 하고
우선 친척 위주로 알렸다
10시
늦은 시간인데도 가까이 사는 친척분들이 몇 와주셨다
맞절을 하고 우는 분들도 계시고 위로를 해주는 분들도 계셨는데
생각보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목요일
1시
자려고 누우니 다른 빈소에서 손님들이 아직 안갔는지 고성이 계속 들렸고
덕분에 잠이 안왔다
3시
누워서 아빠 사진을 보다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딱히 아무 생각은 안했는데
6시
제대로 못자서 정신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든든하게 국밥을 챙겨먹고
친구들과 상사에게 부고를 알렸다
8시
상복이 왔는데 머리핀이 없어서 물어보니 나중에 달아준다고 하였다
과정을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깔끔하게 정돈한 상태의 고인을 볼 것인지 장례지도사님이 선택해달라고 하셔서
편하게 진행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후자를 골랐다
10시
친척분들, 엄마 친구분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몇개월만에 연락했는데 와준 친구, 조모상인데도 와준 친구 두 사람이 반갑고 고마웠다
2시
이제 고인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장례지도사님의 말에
수의를 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천천히 눈에 담았다
깔끔해진 아빠의 얼굴을 보니 그래도 가실 때는 괜찮게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같이 관으로 아빠를 들어 옮기고
나보다 더 오래 살거라고 했지 않느냐며 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말라버린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오더라
봉인하고서 안내에 따라 사고방지를 위해 관에 아빠이름을 적었다
빈소로 돌아가니 그제서야 리본을 줬는데
입관하고서야 완장이랑 리본을 주는지는 처음 알았다
리본까지 갖추고 장례지도사님의 안내에 따라 성복제를 치뤘다
내가 장녀기에 영정사진은 내가, 동생은 유골함을 들게 하려고 했지만
동생이 들기엔 유골함이 꽤나 무겁기도 하고
생전에 아빠가 많이 아꼈기도 하고 이 일을 위해 멀리서 찾아와주었기에 장손오빠에게 영정사진을 맡기고, 유골함은 내가 들기로 결정하였다
6시
친척들도 계속 오시고 회사에서도 오셔서
진짜 정신 없었다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리고 맞절도 하고
음식 대접을 위해 자리 안내도 하고 다음손님 오기 전까지 잠깐 앉아 얘기도 나누다보면 손님이 또 오니까
대화하다가도 입구 예의주시하고 누구 들어온다치면 말벌아저씨처럼 튀어나가게 되더라
상식을 올리고 절을 했다
8시
평일인데도 퇴근하고 와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얘기를 하고 있으니 슬픔이 올 틈이 없었다
10시
시간이 늦어서 발인에 함께 갈 소수의 친척만 남기로 했다
금요일
1시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 잘 듣지 않았던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조용히 불러보았다
딱히 아무 생각을 안했는데 눈물이 고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슬퍼지니까 조상님들이 빈소를 차리고 손님을 받게끔 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8시
전날 손님을 맞이하고 남은 음식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떼웠다
11시
장례식장 직원분이 오셔서 안뜯은 음료들, 일회용품들의 갯수를 함께 세어서 반품처리를 했다
뚜껑을 안땄어도 전체 비닐 포장을 뜯은 물은 반품이 안되더라
토마토랑 귤은 얼마 안됐던 것 같은데 박스당 3-4만원이 훌쩍 넘어가서 정말 놀랐다
스테비아가 이렇게 큰 일 한다
12시
장례지도사님의 안내에 따라 발인제를 치뤘다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던 아빠를 위해 호박전에 젓가락을 올려드렸다
남은 종이컵들, 휴지들, 커피믹스들, 제사음식 전부 다 싸서 차에 실었다
영구차에 친척 네분이서 아빠 관을 옮겼고
나와 동생은 영구차로 나머지 분들은 버스로 화장장까지 가기로 했다
1시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화장장이라서 그런지
슬퍼하고 통곡하기보다는 조용하게 눈물을 훔치는 분위기였다
접수까지 1시간을 대기해야했는데
딱히 뭘 먹고 싶진 않아서 카페모카를 마셨다
투머치 달달
2시
신분증과 카드100만원, 현금1천원을 준비해서 접수했는데
안치할 때 제출하기 위해 서류를 2통 신청했다
10분 대기 후
영정사진을 든 장손오빠를 필두로 네 사람이 화장시설 입구까지 운반을 했고
관에 쓴 아빠 이름을 내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옆으로 올라가서 대기 장소에 난 작은 창으로
관이 기계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기 장소 위의 작은 화면에 빨간색으로 화장중이 뜨니까
이제 이 세상에 아빠가 진짜 없구나하는 실감이 조금씩 나더라
3시
총 2시간정도 걸린다기에 멍때리며 앉아있다가
예전에 녹음해놨던 아빠와의 통화 음성들을 들었다
조금 퉁명스러운 내 대답이 지나가면 저녁 먹었냐며 조심히 오라던 아빠의 말이 들리자 눈물이 났다
핸드폰에 귀를 귀울이며 글썽이는 이유를 궁금해하기에
동생에게도 녹음을 들려주었더니
그때까지 눈물이 없더니 같이 그렁그렁해졌다
4시
완료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들렸기에
먼저 돌아간 오빠를 대신해서
동생이 영정사진을, 내가 유골함을 들고 수골실로 갔다
무슨 급식 배급하는 것처럼
유골함 열고 스르륵 넣고 뚜껑 탁 닫고 보자기까지 싸는 시간이 3분도 안걸렸다 세상에
버스로 돌아가는 길의 바람은 되게 추웠는데
유골함은 무슨 밥솥마냥 따뜻하더라
6시
장례식장 복귀
아빠는 불교였기에 절에서 49재를 치르기로 했는데
매주 1번씩 총 7번의 제사에 420만원 정도 들더라
뭔가 혼자 있을 땐 그래도 좀 슬픈데
이제 연말정산 사망신고 상속처리 유품정리 조문답례연락 부의금정리 등등 해야될 게 많으니까
슬플 시간이 없는 느낌
모든게 다 끝나는 2달후에는 조금 많이 슬플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