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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는 죽고싶은 이유랑 방법 말고도 여러가지를 질문했는데
그럼에도 자살을 시도하지 못하는 (않은) 가장 큰 이유,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실패했을 때 척추마비, 반신불수 등 중증 장애인이 돼서 다시 시도조차 못하게 되는게 두려워서 라고 했고
몇몇은 슬퍼해 줄 거 같긴한데 머릿속에 당장 죽고싶단 생각밖에 없어서 그거까진 내 알바가 아니라고 했어.
새삼 다른 사람 생각해서 살라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건지 피부로 와닿더라.
그 외에 가족, 대인관계, 학업, 취업, 직장 등등 여러가지 관계와 상황들에 대해 물어봤는데
쓰기도 힘들고 가독성이 떨어져서 여기서부터는 질문-답변식으로 쓸게.
일이 많이 힘든가?
나랑 성향이 완전 상극이라 이전에도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고 종종 죽고 싶단 생각도 했다.
그래도 지금껏 바쁘게 지내다보니 그럭저럭 괜찮아 진 줄 알았는데, 여유가 생기자 내가 살고싶지 않음을 깨달았다.
만약 일을 그만두면 어떨 것 같고 무엇을 하고 싶나?
당장은 좋긴 하겠지만 앞으로 내가 새 직원 월급만큼의 돈을 벌어야 할테니까 그리 오래가진 않을 거 같고
원래 이 일을 하기전에 오랫동안 하고싶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들로 그게 어그러졌고,
지금은 그때만큼의 열정으로 하고싶은 게 없다. 그래서 가족사업을 목적으로 이 일을 하게 되었고.
당장 구체적으로 정한건 없지만 막연하게 음악계열이나 작가 등 예술쪽에서 일을 해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예술계열은 워낙 천재들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재능이 있는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배우는데 있어 돈이 많이 드는데 모 아니면 도로 극단적이라 투자에 비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할 것 같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아라. 지금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인데 미래가 무슨소용이냐.
당신은 지금 분명 하고싶은 것도 있고, 예술하는 사람들은 감수성도 풍부하고 예민한데 틀에 짜여진 일을 하려니까 아주 좁은 방에 갇혀있는 꼴이다.
그건 맞다. 나는 사람들을 대하는것도 무섭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사려면 천재 혹은 부자, 또는 둘 다여야한다. 나같이 성격은 더러운데 능력은 없는 사람한테 예술일은 너무 사치같다.
그런데 또 당장 해볼 거 생각하면 답이 안나오고.. 그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가족들은 당신이 이러는 것을 아나?
모른다. 그래서 이 문제로 내가 굉장히 히스테릭해져있다. 뭐라고 말은 해야겠고 하고싶은데, 돌아올 반응들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별 거 아닌데도 신경이 머리 끝까지 곤두서있고 짜증이 치솟는다.
무엇이 두려운가?
겨우 이정도 가지고, 너 그래서 어떻게 사회생활 할래, 너처럼 편하게 일하는 애가 어딨니,
너 아니어도 지금 신경쓸 게 한두개가 아닌데 너까지 이러니,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등등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런 답변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나는 그냥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위로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비난만 안하면 좋겠다.
또, 그러면 그냥 그만둬라, 그럼 너는 어떻게 할건데? 식으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역으로 질문하는 것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 문제로 죽고싶단 생각까지 하고있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 내 버린다고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고 끔찍하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답이 없어서 미칠 것 같은데 내게 결론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시간정도 상담하고 일은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꼭 병원가서 약을 받아보라고했어.
그 때 정말 눈물도 안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눈 팅팅 부을정도로 펑펑울었다ㅎㅎ
아무튼 그렇게 상담 마치고나서 어디가 잘 하는지 몰라서 그냥 집 근처에 보이는 병원으로 갔어.
가서 우울증 때문에 왔다고 하니까 문장완성검사지를 줬는데
1.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때
2.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
3. 우리 윗사람들은
4. 나의 장래는
5.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식으로 50개의 문장을 완성하는 거였어. 완성하고 바로 진료를 봤는데
의사가 작성한 거 보더니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안하고싶은데 죽고싶다고 써놨네요? 굶어죽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굶어죽는건 안해요?
뭐 그런식으로 틱틱 비아냥 거려서 거기서 부터 기분이 더러웠어.
그러고나서 이거저거 얘기하는데 xxx씨는 날 때부터 들쑥날쑥하고 예민하게 타고났다, 성격이 그렇게 타고난거다,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을 거고, 잠도 많이 잤다가 안잤다가 할거고, 밥도 많이 먹었다 굶었다 할거다,
이런 사람들은 태생인지라 임신했을 때 빼고 평생 약으로 조절하는 거 밖에 방법이 없다, 요즘은 좋게 나와서 부작용도 없다 등등
자기 할말만 열심히 쏘아대더라고. 멍하고 분한데 하는 말마다 족족 다 맞아떨어지니까 또 대꾸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연설듣고 약을 받았는데 약값+진료비 해서 2만7천원인가 내기준에선 엄청 큰 액수가 나왔어.
일주일어친데 평생 먹을 생각 하니까 아득해지더라. 참 하다하다 이런걸로도 돈지랄하네 돈귀신이네 싶고.
어쨌건 기왕 받아왔으니까 약을 먹었는데, 내가 하루 16~18시간씩 자는데도 이 약만 먹으면 잠이 쏟아지는거야. 5알정도? 되게 많기도하고.
그냥 온 몸에 힘도 다 빠지고 사고회로가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어. 억지로 약에 취하게 해서 안정시키는 그런느낌.
생각을 안 해도 되니까 편하긴 한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병원을 옮겼어.
첫 진료를 받았는데, 가니까 문장완성 검사같은것도 없이 걍 어떻게 오셨어요? 뭐 때문에 힘드세요? 그러더라고.
그리고 그때 아.. 그래 이게 순서지. 그러고 보니까 거기 왜 왔냐고도 안물어봤네 이런 ㅆ.. 싶더라 ㅎ
그래서 앞서 있었던 일들 다 얘기하고, 그만두고 싶긴 한데 상황이 어려워서 죄책감도 있고 등등.. 그런것들 다 얘기하고
의사선생님은 묵묵히 들어주다가 그 가수 누군지 물어봐도 되냐고 해서 뜻밖의 덕밍아웃도 하고 (...)
그리고 저번에 받았던 약 보여드렸는데 이건 너무 독한 약이거니와 평생 먹는건 절대 아니라고 그랬어. (정말 속으로 갖은 쌍욕함)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 다 하고 진료비내고 약 받았는데 8천원+약값 4천원 정도 나왔고 (갖은쌍욕2)
상담도 잘 해주시고 약도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잘 받아서 이 병원으로 정착했어.
병원 진료받고 약 먹는다고해서 한번에 낫는건 아니어서 여전히 눈 떠 있을땐 죽고싶고, 죽을 방법들 궁리했는데
확실히 약을 먹으면 그런 생각들이 좀 덜하고 일어나서 움직일 기력을 주더라고.
그리고 매 주 진료 받을 때 마다 어떠셨어요? 잠은 잘 자요? 밥은 잘 먹어요? 안부 물어주는데
밥은 안먹고 16시간씩 자고요, 눈 떠 있을때는 어떻게 죽으면 한번에 죽을 수 있을까, 저기서 목매면 될까, 저기서 떨어지면 될까 그런생각해요.
이렇게 얘길 해도 그냥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 먹었어요 하는 것 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줘서 진료받으면 마음이 한결 편했어.
나는 한 한달정도? 계속 저런 상태이다가 그 이후로 조금씩 호전됐던 것 같아. 일상생활도 어느정도 가능해지고
정말 배가 고프다못해 속이 쓰릴때만 조금 먹었었는데 먹고싶은 것도 생기고, 두 세달 째 부터는 그래도 많이 괜찮아 졌던 거 같아.
음.. 그리고 집에는 콘서트, 자살예방센터, 정신과 다녀왔던 그 날들의 일기를 쫙 인쇄해서
나한테 어떤 대답이라던가 결론을 요구하지말고 그냥 한번 읽어달라고 했어.
정말 가감없이 여기 쓴 글보다 더 노골적으로 썼는데 아마 집에서도 충격받아서인지 가장 힘들었던 한달정도 그냥 아무말 없이 놔뒀어.
그 이후에 바로 그만둔건 아니고 5개월정도는 더 일했어. 대신 낮에 손님들 상대하는 일에선 빠졌고
밤이랑 새벽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서류 같은거 꾸미면서 조용히 일했어. 그거만 안해도 훨씬 할만 하더라.
그렇게 약 먹으면서 좀 더 일하다가 손님이랑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때는 정말 못견디겠다 싶어서 결국엔 그만뒀어.
진짜 웃긴게 일 그만두니까 병원안가도 되더라 ㅎㅎ 내가 그만두고나서 괜찮다니까 의사선생님이 약 처방 안해줬는데
약 안먹으면 히스테릭 해지고 분노조절이 힘들었는데 2주동안 안먹어도 멀쩡했어.
그렇게 반년동안 쭉 다니던 병원을 그만다니게 되니까 이게 정말 나한텐 스트레스가 심한일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지금은 새로 온 직원도 여기가 첫 직장이어서 내가 과거에 힘들게 삽질했던거 떠올라서 계속 일 봐주고 알려주고있고
나머지 시간엔 아르바이트도 하고, 사업장 청소도 전담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전히 뭘 할지 생각도 하고.
여전히 그 생각에 답이 안나오긴 하는데 예전만큼 아득해서 숨이 막힌다거나 그러진 않아.
사실 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까 여전히 삶에 애착이라던가 미련이 없기는 해.
당장이라도 안락사나 존엄사같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어.
근데 아직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죽는것도 사는것도 아니니까 마음을 고쳐먹어보려고 시도중이야.
하나하나씩 작은거, 사소한 것들 부터 시작하려고. 그래서 여기에 글도 써본다 ㅎㅎ
뭐라도 시도해 보다보면 적어도 차악으로 삼을만한 일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관심갖고있어.
만약 지금 힘들어 하는 덬들이 이글을 본다면 해주고 싶은 얘기는
우선 가까운 상담기관이나 자살예방센터 같은 곳 찾아서 상담 받아보면 좋겠어. 별도로 비용도 없고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더라.
상담 안 받았으면 난 병원 갈 시도도 못해봤을 거 같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라도 한번 가보길 권할게.
그리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이상하다 싶고 나랑 안 맞는거 같다 싶으면 바로 옮기고.
나도 처음 갔던 병원 계속 다녔으면 더 이상해졌을거 같아. 지금도 볼때마다 속으로 욕한다ㅎㅎ
또 이번일들을 겪으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말은 '그럴수도 있다' 야.
여태껏 내 뜻대로 된게 하나도 없어서 난 왜이럴까, 쓰레기야, 혐오스럽다 하는 생각 많이 했고 지금도 하는데
생각해보면 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긴 하더라. 내 뜻대로 되는게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
지금도 난 계속 불안정한 상태이고, 다시 우울한 증상이 언제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근데 그럴수도 있지 어쩌겠어. (이렇게)
나한텐 너는 아름다워, 언젠가 꽃이 되어 피어날거야 하는 식의 위로의 글들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됐어.
마찬가지로 이 글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덬들한테 작은 실마리로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긴 글 읽느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