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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미에리노 카시와기: 적당히 진지한 아이돌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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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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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가 엄청 오래전에 (그러니까 구구더쿠 시절에) 쓴 리뷰글인데 문득 생각나서 올려. 영영 없어진 줄 알았더니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처박혀 있더라고. 기울임체는 내가 지금 다시 읽으면서 더한 사족이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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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많아.

일단 이 드라마는 아무것도 기대 안하고 봤다는 걸 밝힐게.

내가 일드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라—본 일드는 한 6개 정도에 불과하니까. 근데 나는 이 작품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이유는 꽤 많이 들 수 있어.

1. 분위기
극의 분위기는, 뭐랄까, 논찰란트nonchalant하달까? 차분하면서도 경쾌하고, 실소를 자아내는 개그들이 한 개씩 터져주는, 그러면서도 진지한 어프로치를 잃지 않는 그런 태연함이 이 극의 주된 분위기야. 아키P나 릴리 프랭키가 카시와기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지. 막장에 가까운 극의 플롯과는 반대로 말이야. 어쩌면 감독은 만화적, 아니지, 라이트노벨적 효과를 추구하는 걸지도 몰라. 많은 라노베는 (<이야기 시리즈>나 <역시 내 청춘...> 등) 꽤나 무거운 주제(자기희생이나 인간관계 등)를 다루면서도 만담이 플롯을 끌고가는 역할을 해. 그런 면에서 장르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 애매한 드라마는 "라이트 드라마" 라는 장르 속한다고 말해도 좋을거야. 

2. 인물, 캐릭터, 배우
극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단적인 예로 성으로 불리는 사람들 (카시와기, 사노 등)과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 (카오루, 히토미 등)은 확연한 차이가 있어. 히토미와 사토루를 둘 다 ‘마츠오’라고 부를 수 없다는 테크니컬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야. 퍼스트 네임으로 불리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독고다이야.

심지어 이름마저도 생략하고 A코 B코로 불리는 여자들도 있고. 얘네들의 이름의 의미란 생각할 것도 없이 ‘A코 B코는 우리 곁에 널려 있다’는 거지. 우리는 다 타무라 신지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를 헐뜯고, 주욱 알고 있었으면서 까발려진 그들의 혼네에 새삼스럽게 눈물 흘리고, 심지어 칼까지 들어 (실제로 칼을 드는 것과 마음속의 칼을 가는 건 차이가 크지만서도). 물론 감독이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야—이 쇼는 어디까지나 레이멘laymen에 의한, 레이멘을 위한, 레이멘의 드라마니까. 어쩌면 감독 다카하타는 상처받았을 이 세상의 수많은 A코들과 B코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니면 유키링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거지—“너만은 타무라 신지에게 당하면 안 된다!”

2.1 카시와기
유키링은 릴리 프랭키 말마따나 성모같은 존재야. 타무라 신지에게 당하지 말라고 감독과 아키모토가 소리치는 건 이 것 때문인지도 몰라. 레이멘을 위한 드라마지만, 동시에 드라마는 카시와기 한 명을 위한 드라마이기도 하니까. ‘그 나이에 그런 얼굴과 몸을 하고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봤다’(고 주장하)니, 지켜주고싶지 않아? 아니, 성모보다 예수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죄 없이 태어났으니까 죄 없이 보내고 싶은거지. 다른 점은 야훼와 감독이(&아키P가) 다른점은 야훼는 예수를 빡시게 굴리는데 (…) 감독과 아키P는 카시와기를 최대한 지켜주고 싶어한다는 거?

어쨌든 (이야기가 너무 새버렸다), 이 드라마, 극의 이름부터 미에리노 카시와기인데, 카시와기는 대부분의 경우 ‘보지만 보지 못’하지. 그니까 눈으로는 보지만 이해를 못 한다는 거야—예를 들어 ‘콘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가 그 여고생’ 같은 거.  사실상 이 KY함(과 나는 KY하지 않다능!!과 같아보이는 유키링의 몸부림 (…))이 드라마의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수많은 매력포인트 중 하나기도 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건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인지도 몰라. 눈에 보이는 데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알고 있지만 애써 눈을 돌리려고 하는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말이야. '그 나이에 그런 얼굴과 몸을 하고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봤다'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고 시니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라면, 내가 꽈배기를 너무 많이 먹은건가.

다시 2. 인물
그러니까 나츠메 유미(영화 트레일러 제작가)와 카오루(내츄럴 본 낚시꾼), 이시구로 (여경의 소방관 남자친구)와 8화의 바의 손님이 각각 같은 배우 (히라타 카오루, 하마다 마나부)라는 건 우연이 아니야 (나도 긴가민가 했는데 사이트를 보니까 같은 사람이더라고). 두 명 다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다, 이거야. 갖은 아양 다 떠는 카오루와 남친을 계속 발로 까는 나츠메 유미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야. 이시구로는 집착하고 바의 손님은 쿨하며 디스데인disdain덩어리지만 둘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지—그리고 이쪽도 따지고 보면 폭력적이지. 다카하타는 ‘다른사람들, 내지는 그들의 감정을 자기 멋대로 다루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국 폭력적인거다. 그 방식이 어떠하건.’하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카시와기가 중간중간 추는 춤이 다른 것도 아닌 ‘UZA’인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과 걔네가 떼어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레알 짜증나는 사람들 뿐이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폭력적이라고 비판할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과 그걸 얻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어. 결국 타무라 신지도 A코도 B코도 얻고싶은 건 행복이거든. 감독은 이걸 어쩌면 굉장히 드라이하게 담아내면서 ‘결국 판단은 사건에 말린 사람들이 하는 거다’하는 메시지를 담는거야. 사노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지. 표면적으로 그가 어떤 의뢰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가 아이의 양육비를 벌고 있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저지멘탈judgemental 하지 않다는 거야. 단적인 상황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거지. 어쩌면 사노는 이 드라마에서 초능력을 갖고 있는 카시와기보다도 비현실적인 캐릭터일지도 몰라. 어쨌든 사노라는 캐릭터는 카시와기와, 그리고 동시에 관객들에게 이상향을 제시하지. 결국 사람은 모두 폭력적이므로 그런 것으로 다른 이를 폄훼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얻으려는 노력은 결국 숭고하며 불가침적인 것이라고 믿고 그 이상을 항상 실천하고 있는 게 사노라고 생각하는 건 조금 비약일까?

3. 영상
DSLR과 미러리스를 적극적으로 쓰는 활영방식. 배경을 보케(님들이 생각하는 暈け가 맞음.)로 날린다는 건 그 인물 하나에만 포커스한다는 뜻이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 된 현대 사회의 러브라이프를 반영하는 촬영방식이라고 봐. 스토리라인에도 맞고—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거든. 사랑 같은 건, 그러니까 적어도 질풍노도의 시기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가슴 터질 듯 열망하고 사랑 때문에 목숨걸고 활화산처럼 터져오르는 그런 사랑’은 일반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이기적이게 된 현대사회의 절대다수에게는 사랑도 결국 개인의 생활의 일부이고, 극의 분위기처럼 논찰란트하게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인지도 몰라. 

아까도 말했듯 영상은 그저 사실을 던져줄 뿐이야. 시청자는 카메라워크로 ‘아, 감독이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있구나’하는 인상은 전혀 받지 못해. 원샷, 포트레이트와 바스트 샷이 잦지만 캐릭터들의 리액션은 순간순간적인 조각이고, 코히어런트coherent한 감정은 나타내지 않아. 다큐멘터리같지. 아니, 오히려 다큐멘터리도 영상으로 감정을 연출하는 걸 볼 때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적이야.

4. 한 줄 요약
차분한 분위기, 매력적이고 사실적인 인물과 예쁘면서도 팩추얼한 영상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었음.

여담: 다카하타 감독은 한국이랑 관련이 많은 사람이야? 호텔비너스도 그렇지만 미에리 배우중에 두 명이나 마이웨이에 출연했네.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만.
여담2: 이거 원래 더 길어야 하는 글인데… 긔차니즘 발동으로 그냥 이쯤에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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