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마음이 진정되어서 글을 써 봐.
4월 14일에 일본으로 가서, 16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왔어.
어머니랑 하는 모녀여행이라 엄청 신경을 많이 썼던 여행이었는데, 결국 어머니한테 지진경험을 안겨드린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안좋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후인으로 이동, 내내 유후인에 머무르는 일정이었어.
사실 나는 여행 직전까지 해놓고 가야할 업무가 너무 많아 전날에는 코피도 쏟는 바람에..
14일엔 너무 피곤해서 저녁 가이세키를 먹고 어머니랑 같이 바로 잠들었어
밤 9시 조금 넘는 시간이었나? 갑자기 건물이 흔들흔들 거리는 느낌, 뭔가 엄청 큰 바람같은 소리가 위이이잉 하길래 깼고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이거 지금 뭐야?" 하시는 소리에 "지진인가봐요" 했어.
방 천장에 있는 등이 계속 흔들렸고 료칸도 흐은들 흔들 이런 느낌이었는데 곧 멈췄어.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지진이구나' 했고, 얼마지 않아 잠들었어.
아침에 구마모토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봤고 그 지진이 우리쪽까지 느껴졌나보다. 했어.
15일 아침부터 밤까지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어. 어머니와 유후인 마을구경이며 메인스트리트까지 싹 다 구경을 했지.
온천목욕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긴린코를 봐요' 라고까지 했지.
어머니께서 너무 많이 걸어 피곤하시다며 먼저 주무셨고, 나는 이것저것 휴대폰으로 덕질을 하다가 잠이 들었어
그러다가 갑자기 진짜
료칸이 엄청 흔들리길래 깼고 옆을 보니 어머니께서는 어제와는 더욱 세진 강도의 지진에 당황하셔서 납작 엎드려계셨어
(16일 새벽의 지진. 진도 한 5-6정도 되었던 것 같아)
도저히 안될거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이불을 두는 이불장이 보여서 저 안에 들어가 숨어있자고 했어.
그래서 어머니랑 이불을 다 꺼내고 숨어있었어.
그렇게 숨어서 한참 있으니 직원이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내가 나갔더니 지금 당장 대피하는게 좋을거같다고 해서 엄마랑 나랑 일단 여권같은 귀중품이 들어있던 보조가방만 챙겨서 밖으로 나갔어.
나오는데 진짜 천정에 있던 등이 떨어져 깨져있었고 냉장고도 이미 다 쓰러져서 음료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꽃병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건물 벽도 붕괴조짐이 있는지 그런 잔해물도 바닥에 떨어져있었어. 진짜 무서웠어.
일단 료칸 밖의 마당같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여기 당분간 있는게 좋을거같다고 하더라고.
거기엔 한국인 몇명과 일본인들이 있었고 여기가 밖이라 안전하다고 직원들이 방 안에 이불이며 타월, 모포나 물이나 포카리같은 이온음료를 계속 가져다줬어.
나는 한자가 많이 들어간 일본어 문장은 바로바로 해석이 좀 힘들거든. 그래서 트위터로 계속 '지진' '유후인' 등으로 검색했는데
지진으로 검색하니까 진짜 뭐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말들이 쏟아지는데 짜증이 났어. (뭐 가령 나쁜짓을 하더니 일본이 벌받는거다 이런 것 같은.. 이런건 나한테 도움이 안되니까.. 난 유후인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한국 사람들은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대처중인지.. 이런것들이 궁금했거든)
결국 일본 글을 번역기로 돌려서 뜻을 대충 끼워맞추거나 이러면서 상황을 주시했어.
이번 새벽의 지진은 오이타현에서 일어난 지진이라고 해서, '아, 어떡하지' 이 생각부터했지만 어머니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진 않았고
혼자 계속 트위터를 돌려보거나 일본인 직원이 갖고 온 라디오를 귀기울이거나 그랬어.
한국인 가운데에는 가족도 있었는데 그들은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라서 직원이 와서 뭐라고 말하면 내가 설명해줬어.
새벽 내내 지진은 계속되었고. 나랑 어머니는 이불과 모포를 돌돌 감은채 꼭 붙어있었어.
위잉위잉 소리와 함께 '지신데스 지신데스' 이 소리는 못잊을거같아. 정말 무서웠어.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
혹시 나와 어머니 사이로 땅이 쩍 갈라지지는 않을까 그런 느낌.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셨대.
사실 아침 뉴스에 구마모토 현의 한 도로가 불룩 솟아있거나 그런 영상이 나왔는데 되게 강렬했거든.
새벽 3시인가 쯤에는 어떤 헬멧쓴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며 곧 아침이 밝아온다. 아침이 올때까지만 힘을 내자고 말하고 가서 아침에는 뭐가 달라지려나?
이런 생각을 했고, 좀 이따가 5시쯤 되니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료칸 프론트로 사람들을 안내하길래 우리도 따라 갔어.
매점에서 파는 쿠키나 사탕, 물과 커피, 그리고 이후에 오니기리를 줬는데 진짜 입안에 들어가지가 않았어. 어머니께서 이럴때 먹어둬야 힘이 나고 머리회전이 된다며 오니기리를 떼어 주셨는데 진짜 입안이 까끌하고 목이 타서 넘어가지 않았어.
그리고 직원이 나와서 지진이 조금 안정된 것 같으니 귀중품이나 짐을 놔두고 오신 분들은 말씀하시면 제가 같이 가겠다. 그리고 체크아웃 하시고 싶은 분들은
체크아웃을 하라고 해서 우린 심히 당황했어. 갈 곳이 없으니까.
그때 트위터로 본 정보로는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갈 수 있는 JR과 버스 모두 끊겼다고 했거든. 고속도로 자체를 막았다고.
난 일단 당황해서 송영버스로 유후인 버스터미널까지는 가고싶어서 짐찾으러 가는 길에 그렇게 부탁을 드렸어. 버스터미널에 가면 한국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거든.
송영이 8시, 9시에는 된다고해서 그럼 그때 되는대로 꼭 나에게 알려달라고했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한국 가족 한 팀에게도 그렇게 설명을 하니 같이 이동하겠다고 하시더라고.
그런데 택시가 몇대와서 일본인들을 태우고 가더라고. 그래서 직원을 붙잡고 뭐냐고 물어보니 후쿠오카 공항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라길래
나도 그럼 부탁한다고 말했어. 그렇게라도 가겠다고. 택시라면 무슨 방법이 있구나, 했어.
그런데 한국인 다른 팀이 우리도 부탁한다고해서 총 택시 3대가 필요한데, 지금 택시가 모두 풀이라 벳부에서까지 택시를 부탁하고있는데, 3대씩이나 와주는 택시는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거기까지 통역은 차마 못하고 벳부에 있는 택시까지 돌리고있는데도 택시가 풀이라 못온다는것같다고 말을 전했어.
이렇게 송영버스냐, 택시냐를 한국인들끼리 정하는 사이에도 크고 작은 지진이 몇번이나 와서 몸을 숙이거나 밖으로 대피하거나를 반복했어.
결국 송영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 직원에게 공항으로 갈 수 있는 추천방법을 물어보니 일단 유후인에서 출발하는 모든 버스는 끊겼고,
유일하게 벳부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그걸 타고 벳부로 가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길래 일단 여기서는 무조건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모두 벳부로 가는 버스를 탔어.
유후인에 계속 있는 것 보단 나은거같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셨어.
벳부역으로 가니 한국인들이 많이 보였고,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벳부도 모든 기차나 버스는 끊겼다더라고.
그래서 그럼 혹시 택시를 이용해서 공항으로 갈 수는 있냐니까 갈 수 있대. 하지만 많이 비싸서 한 오만엔은 생각하라고 하더라고.
내 곁에 있던 일본어를 못한다는 그 가족에게 이 상황을 말하고, 각자 타고 갈 수 있는 택시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 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일단 비상금으로 갖고 있는게 있어서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거같다셔서 그 즉시 택시를 찾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다들 가지 않으려고 하는거야.
겨우 택시 하나를 찾았는데, 그 한국인 가족이 버스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찾으러 떠나더라고.
택시는 자꾸 갈거냐고 묻고, 다른 외국인들이 그 택시를 통해서 가려고하는것같아서 일단 엄마랑 나랑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어.
그 가족들 한국에 무사 귀국했는지 모르겠다.. 걱정되네.
오만엔 생각하라고 하던 인포메이션직원 말과 달리 톨비 제외하고 삼만이천엔 정도가 나왔어.
비싸긴 했지만. 그 난리통에서 절대 공항까지 못갈것 같았는데 공항까지만이라도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한참 공항으로 향하는 중에 유후인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쪽 소학교에 자리한 대피소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는 것을 보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 길이 차단되어 기사아저씨는 몇번이나 우회해서 가야했고, 너무 피곤해하시길래
잠깐 편의점 화장실 간 사이에 커피를 사서 드렸더니 매우 고마워하시더라. 우리가 더 고마운데..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 엄청 많더라. 지진으로 불안한 우리와는 달리 후쿠오카에서는 별 지진을 못느꼈는지 사람들이 웃고 화기애애했어.
공항에서 밥을 먹는데도 계속 지진이 느껴졌어. 처음에는 예민한건가 했는데 아니었어. 미묘하게 지진이 계속 오고 있었어.
토요일 저녁 에어부산 비행기였는데, 마침 부산에서 비와 바람이 너무 심하게 오고있다고해서
자칫 결항이 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했어. 작년에 비바람으로 제주에어측에서 결항해서 후쿠오카 못간 적이 있었거든.
같은 라인의 대한항공은 지금 지진으로 사태가 심각하니 대구공항, 아니면 인천공항이라도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에어부산은 지연 아니면 결항할 거라고 하니까 난 더 불안했어. 결항이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어떻게 왔는데....
다행히 무사히 부산에 올 수 있었어. 비바람으로 기체가 또 많이 흔들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어머니 지진으로 놀라셨을텐데.. 불안하실까봐 비행하는 내내 손 꼭 잡고 탔다.
집까지 오는 내내 긴장해서 잠 한숨 못자다가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서 이제 깼어. 잠에서 깨니 꿈인가? 싶은데 꿈은 아니네.
이번 여행으로 느낀 점은
1. 여행은 진짜 말이 어느정도는 통해야 비상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
난 듣고 말하는 건 어느정도 통해서 일본인들이 하는 말이나 상황이 대충 파악가능한데,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는
계속되는 지진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안함이 엄청 큰 것 같더라고.
2. 비상금은 어느정도 챙기는 것이 좋다.
비상금도 없었다면 비싸든 말든 택시로 올 수 없었을 거고 예약했던 비행기도 못탔을 거야.
그정도 지진을 느꼈다면 정말 동감할거야.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고싶었어.
3. 같이 간 동행의 성격이 침착하면 좋다.
우리 엄마가 아마 이 지진상황에 동요하셨다면 나 역시 패닉이었을 텐데 정말 침착하셨어. 내가 말 전달하고 하느라 이것저것 정신없는 사이
어머니께서도 직원에게 영어로 뭔가를 물어보신다거나, 나보다 더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날 많이 도와주셨어. 엄마 아니었으면 난 진짜 귀국 못했을 수도 있어.
4.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등의 항공을 이용하자.
대한항공에서는 사람이 나와서 부산의 상황은 이러한데 규슈는 더 위험하니 인천이나 대구공항으로 착륙하겠다고 안내하는 반면,
에어부산에서는 기상악화로 지연하거나 결항할 수도 있다고 안내하더라. 지진을 겪은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니 더 불안했어.
더 이상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고,
아직 벳부나 유후인, 구마모토 등 규슈에 있을 한국인들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후쿠오카를 떠나는데 활주로 안내하는 직원들이 우리를 향해서 손을 흔드는데 진짜 눈물 나는 줄 알았어. 아, 떠난다란 생각과 저 사람들도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