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W, 런던 라이브
목소리와 본능, 그리고 스타 파워로 끌어낸 밤
글: 하산 베야즈
사진: 라이언 콜먼
유럽은 오랫동안 ONEW를 기다려왔다. SHINee의 메인 보컬인 그는 2011년 런던에서 짧게 공연한 후 유럽 무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2025년, 오랫동안 지켜보며 기다려온 그 목소리를 드디어 현실에서 듣게 되는 그의 첫 월드투어가 런던 O2 인디고에 도착했다.
이건 너무나 늦은 순간이었다. 기다림이 거의 하나의 존재처럼 공연장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아시아와 남미 투어를 거쳐 유럽에 도착한 이번 공연은 각기 다른 악센트와 국기,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공연장 곳곳에 모여들며 모두가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연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보게 되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스크린도 없고, VCR을 위한 장비도 없었다. 소품도 없었다. 조명 장비와 텅 빈 무대뿐. 이런 최소한의 준비는 자칫 불안하게 보일 수도 있다 — 특히 화려한 스펙터클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K-pop 공연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렇게 최소한으로 비워진 무대는 최고의 실력만이 견딜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불이 꺼지고, 극적인 인스트루멘털 사운드가 영화 예고편처럼 공간을 채웠다. 푸른 빛이 무대를 가르고, 그때 그가 등장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추는 순간, 관객의 환호는 공연장을 깨트릴 듯 터져 나왔다.
ONEW—약간 헝클어진 머리, 크롭된 밀리터리 스타일 재킷, 슬로건 티셔츠, 카고 팬츠, 낮은 운동화.
충격을 노린 스타일도, 과한 연출도 없었다. 그냥 그 자체.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완벽했다. 오히려 그 단순함이 압도적이었다. “PERCENT (%)”의 첫 음이 울렸을 때, 이 최소한의 무대가 제한이 아니라, 그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첫 라인부터 그의 보컬은 완벽히 제자리를 잡았다. 마이크 스탠드를 손끝으로 스치며 노래하는 그는, 저돌적이기보단 단단하고 안정적인 존재감으로 공연의 톤을 만들어냈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SHINee와는 전혀 다른 방향. 과잉이 아니라 ‘덜어냄’의 미학을 가진 솔로 아티스트의 모습이었다.
공연 초반의 “No Parachute”, “여우비”, “Far Away”는 절제와 감정의 균형을 섬세하게 걸었다. 그 사이 첫 멘트를 꺼냈다.
“라이브에 정말 집중하고 있어요.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려 세계를 돌고 있어요.”
관객은 이미 충분히 좋다고 외치며 답했다.
“Conversation”에서 분위기가 조금 더 밝아졌고, “MAESTRO”에서는 에너지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마이크 스탠드는 떨어지고, 돌려지고, 들려 올라갔다. SHINee 시절의 카리스마가 번쩍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의 토크는 무대의 미니멀함처럼 자연스럽고 솔직했다.
“여기 너무 오래 안 온 것 같아요. 10년? 11년? 여러분도 나도 다 나이를 먹었죠.”
“런던아이 잘 있어요? 빅벤도 잘 있나요?”
과하게 웃기려고 하지 않아서 더 웃긴 순간들. 이어진 말은 의외로 깊었다.
“여러분 삶에서 행복을 계속 지켜줘서 고마워요.”
그 말엔 지난 10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 군 복무, 불확실함, 큰 상실, 솔로 아티스트로의 재탄생, 그리고 결국 SHINee의 복귀를 기다리는 시간들.
어쿠스틱 섹션이 분위기를 다시 차분하게 만들었다. “Winner”와 “Epilogue”가 공연장을 부드럽게 감싸던 중, 그는 갑자기 한 관객을 향해 말했다.
“폰 보고 있는 당신.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관객이 무언가 외쳤고, 그는 귀엽게 따라갔다.
“제 행복은 100% 넘어요~”
스툴에 앉은 다음 파트는 공연의 가장 매끄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Silky”는 제목처럼 말 그대로 실키했고, “Beat Drum”에서는 과하지 않은 절제된 동작으로 쉐이니 시절의 명성을 떠올리게 했다.
“MAD”를 부르기 전 그는 마지막 멘트라고 했지만, “물론 앙코르가 있을 경우는 제외입니다”라고 농담을 곁들였다. “MAD”는 특유의 R&B 보컬 라인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쏟아냈고, “Caffeine”에서는 마이크 스탠드를 발끝으로 차올려 다시 세워 올리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도 중심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목소리’였다.
그리고 “ANIMALS”.
마지막 곡에서 모든 것이 폭발했다. 재킷은 벗겨졌고, 무대의 모든 공간을 휘젓고 다녔다. 보컬은 끝까지 라이브로, 숨 한 번 숨기지 않은 채 이어졌다. 거친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생생함이 더 크게 꽂혔다.
앙코르에선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회색 후디와 겹겹이 입은 청바지, 은은한 유니온잭 패치, 나이키 쇼크스.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 그는 선물도 던지고, 조금이라도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를 폭발시키는 한 줄.
“대한민국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SHINee를 사랑해줘서 고맙고, SHINee 안에 있는 저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공연장은 거의 지진처럼 흔들렸다.
“다음엔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요.”
그 말과 함께 “Oreo Cake”, “Yay”, “Happy Birthday”를 부르며 공연은 따뜻하고 가벼우면서도 믿기 힘들 만큼 친밀한 공기로 마무리됐다.
공연장을 나서며 드는 질문은 하나였다.
과연 이 공연에 스크린이나 댄서, 화려한 무대 장치가 필요했을까?
정답은 명확했다.
아니다. 여기에선 아니었다.
ONEW는 꾸밈을 필요로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곧 스펙터클이고, 그의 존재감이 무대 연출이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도 공연장을 장악하는 능력 — 그것은 드문 재능이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노래와 무대 그 이상의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10대에 그를 만났던 팬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고, 삶의 기쁨과 상실을 함께 지나왔다. ONEW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거의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서 있었던 순간은, 공허함이 아니라 진실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큰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스포트라이트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실.
그게 바로 이 콘서트가 담아낸 핵심이었다.
오랜 기다림이 끝나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 열리는 순간.
그 긴 14년의 기다림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키는 밤.
그리고 때로는 가장 단순한 밤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