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그리고 춤.
영화는 두 가지 키워드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익숙한 전개를 빗겨간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과 그 여정에서의 상처와 치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흐름 속에서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뭇 영화들은
불가피하게 주인공의 불편한 신체를 부각하고 세상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곤 했다.
<소영의 노력>은 그런 전형성에서 탈피한다.
주인공 소영이 왜 춤에 빠져 들었는지,
소영의 조력자이자 비장애인인 희정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유로 소영을 서포트하는지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선 이들의 사연이 궁금해질 수 있으나
영화는 오직 현재의 소영과 희정이 주고받는 대화와 함께 하는 연습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관객으로 하여금 소영과 희정 각자의 사연이 무엇인지 집착하지 않고 지금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춤을 다루는 영화라면, 특히나 주인공의 최종 목표인 '꿈의 무대'가 있는 작품이라면
롱테이크 안무씬이 빠질 수 없다.
<소영의 노력>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그 롱테이크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구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배경으로 펼쳐 보인다.
'꿈의 무대'조차 그를 향한 한 단계일 뿐이다.
그러니 무대에 올랐다고 해서 소영의 댄스 라이프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무대는 소영 일상의 수많은 갈래 중 하나다.
무대는 다시 없을 기회가 아닌, 언젠가 또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기쁜 시간인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사연팔이' 과감하게 스킵한 영화는
춤추는 소영의 모습도 몽타주와 플래시컷으로 배치하며 빠른 호흡으로 비춘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배경과 상황이 전혀 다른 조각컷들이 모여
소영이란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영화의 맥락을 만들어냈다.
연습에 힘들어 하기도 하고,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하며
선생님(희정)에게 볼멘 소리도 하고 반항하다가
순순히 말을 잘 듣기도 하는 소영은 흔한 '나'의 모습이었다.
차라리 영화는 짜여진 시나리오가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보단 훨씬 리얼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취사 선택의 종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플래시컷에서 나는 영화가 소영을 전시하려 들지 않고,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했음을 느꼈다. 소영의 평범성이 와닿은 것도 그 덕분이다.
반대로 영화는 소영의 말을 충분히 듣는다.
평소 "너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희정의 말을 소영은 부인한 듯 보인다.
소영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자기가 조금 잘한다고 으스대면
사람들이 자길 찾지 않을 거고, 다시는 춤을 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늘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영은 말한다. 엄마는 너는 왜 자꾸 안 되는 걸 하려고 하냐고 하는데
자기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그 마음이 싫다고 한다.
소영은 말한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그래서 잘 해보려 하는데 쉽지는 않다고.
소영은 말한다. 전동카를 타면 편하지만 그러면 점점 걸을 수 없게 될 거고,
그러면 춤을 못 출 거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두 다리로 걸어다닐 거라고.
소영은 말한다. 감독이 쥐어준 카메라로 뭐라도 찍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쳐다봐서 창피하다고. 그렇지만 "몰라, 그래도 찍을 거야" 라고 한다.
때론 초점도 안 맞고 눈만 대빵 만하게 찍힌 셀프캠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 오가는 출퇴근 길 위에서,
희정 및 동료 친구 해성과의 대화에서,
소영은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의 생각을 듣는다.
영화의 페이크 피날레인 무대 공연이 끝나고 소영은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공연하는데 선생님(희정) 남편이 보여서 눈물이 났다"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자기 때문에 고생만 하는 것 같아서
그 가족인 남편분을 보고도 눈물이 났다는 거다.
아. 그렇구나 인간다운 삶. 그래, 그런 거였구나 인간답게 사는 게.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의 사정도 사려 깊게 헤아리는 것. 그게 인간다운 거였지.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연습실 장면에서 소영은 이런 고백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밥을 안 먹으려고 하는 게,
자꾸 흘리니까.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절대 밥 먹지 말라고 했다고 했단다.
지저분하니까. 불편해 하니까. 토할 것 같으니까.
그런 타인의 시선에 상처 받을 수 있지만, 소영은 그런 현실을 감내하고
'타인을 위해 배가 고파도 밥을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 그렇지. 인간다운 게 그런 거였지. 혹시나 남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행동은 안 하는 것.
소영의 말은 중요하다. 소영의 말에는 소영이 만든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처럼 소영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나 보다.
다들 "알았어"라고만 하지 사실 모른단다. 맞다. 선생님 희정조차 소영의 말을 이해 못할 때가 있다.
소영이 "진짜예요. 진심이에요."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소영은 춤을 춘다. 춤은, 전해지니까.
어느 소설가의 문장처럼 '가슴을 빠개고' 통째로 들어와 진심과 진실을 전할 수 있으니까.
무대에서 혼을 실어 몸으로, 표정으로 말하는 소영을 보면서 나는 전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것.
그렇다. 이 영화는 장애에 관한 작품이 아니다.
인간의 고뇌에 대한 영화다.
소영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다. 소영의 답답함은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다.
장애, 비장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사람, 아무리 외쳐도 안 믿는 사람,
내 자신은 정말 잘 살아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어려움,
다른 사람들 시선에 스스로가 창피해지는 시간들.
우리 다 매일 같이 경험하는 것들이다.
소영에게 춤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발구름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인간다운 삶을 위한 동력은 무엇인가?
소영은 노력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 하나 살기도 빡빡한데 남도 생각하고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겸손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포기하지 않고 해본다.
내세울 건 노력 밖에 없었으나 아무 것도 안 남고 개털된 나는
그래서 노력이란 게 진짜 싫고 미웠다. 그냥 다 싫다 지금도ㅋㅋ
그런데 소영과 같은 노력이라면 그래.. 해볼 수 있을지도 몰루겠어.....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 어떤 도달점을 위한 것이기 보다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력이라면
적어도 내가 괴롭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탁월한 제목 <소영의 노력>.
장애 극복의 서사가 아니라 그냥 보편적인 한 인간의 삶을 담았다.
혼자 진지해져서 지리하게 후기 아닌 수기를 적었는데,
사실 영화는 웃음 포인트부터 도파민 터지는 구간까지
이야기의 흐름과 씬의 연결이 아주 아주 매끄럽게 잘 이어지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재밌다. 극영화를 포함해 올해 본 작품 탑으로 감히 꼽아본다.
많이 특정될 수도 있지만, 내가 영화를 본 날 장애인분들이 단체 관람을 왔다.
집중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걱정이 부끄럽게도 러닝 타임 내내 다같이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설사 시끄러움이 있었대도 그건 장애와 전혀 상관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그냥 사람이다. 그냥 사람. 영화에서 소영이 "나는 내가 일반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보통의 인간 세상의 가치관, 세계관, 관념, 생각, 사상에서
동떨어져 존재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범죄자조차 인권으로 품어주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크레딧을 보는데 프로듀서가 소영의 선생님인 희정이었다.
알고 보니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반부를 넘어 후반부로 접어들면 희정은 희미해지고 오직 소영만이 남는다.
프로듀서라면 자기를 드러내고 조명하고 싶었을 텐데
희정은 철저히 소영의 조력자로, 동료로만 등장하고
모든 말은 소영에게 맡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거구나 싶다.
요즘 한국 영화 분위기 나쁘지 않은데
붐업 흐름을 <소영의 노력>도 얼떨결에 같이 타버려... 소취하게 된다.
블로그로 가야 할 잡썰이었으나
블로그는 쓰다 보면 접어버리잖아..?
그것은 <소영의 노력>을 향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단 영방에 주절거리다 보니 어떻게 마무리까지는 왔다.
영방덬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일 거라고 확신해 본다.
진짜 마지막으로 청룡 아니면 백상 가보자고 주접 떨면서 마무리를 한다.
<소영의 노력> ㅍㅇ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