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방금 보고와서 정리가 확실하게 안되긴 하지만
이 상태로 이야기하는 쪽이 더 맞을것 같긴 함
내가 있던 상영관에서는 조인성이 살아나는
쿠키조차도 안 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첫날부터 ㅠ 상당한 위기에
처했다는 걸 의미함
잠깐 검색해보니 역시나 호불호가 극심하고
점잖은 영화 커뮤니티에서도 비난이 적지 않던데
이건 나홍진이 중후반부에서, 초반부에 맺은
관객과의 중대한 약속을 위반했기 때문임

원래 우리는 150분 가까이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크리처 호러 액션 영화를 보았음
인간이 주인공이고 외계인은 적이고
주인공들의 목표는 살아남거나
괴물(외계인)을 물리치는 거였음
한데 마지막에 갑자기 외계인들의 말이 번역되고
이름이 생기고 사연과 정체가 드러남
그들은 사실 단순한 에일리언같은 짐승이 아니라
혈통, 신분, 운명, 함선, 제국을 가진 존재들이었음!
분명 농촌을 배경으로 한 괴물 액션 호러를 보았는데
막을 내리는 순간에 다른 영화로 바뀌어버리는 것임
그리고 그 영화의 정체는 스페이스 오페라임

호프를 좋게 보는 관점에서는
인간 중심주의 전복이나 타자화된 괴물에게
이름과 얼굴을 돌려주고, 관점을 달리 한다
외계인도 생명이었다
정도로도 말할 수 있을 것임
하지만 이것만 강조하면 이 영화가 너무 점잖아짐
나홍진의 엔딩은 그보다 훨씬 무례하고 악랄함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니들이 본 호러 영화의 야만적인 크리처가 사실
왕조의 비극을 짊어진 황후, 세자, 귀족들이며
아바타나 듄 같은 우주 대서사시의
고귀한 주인공들이었다
이기 때문임

이렇게 되면 외계인은 인격과 이름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장르적 신분 상승을 함
반대로 인간들은 악당으로 격하되는 것보다
모욕적인 일을 당하게 됨 ㅠ 마을의 운명을 걸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용감한 주인공들에서 장엄한
우주 왕조 서사시의 지방 엑스트라로 강등되는 것
이 논리에서는 얼굴도 잘 나오지 않는
외계 괴물 역할로 패스밴더 같은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필수임
왜냐면 그들은 숨어있는 우주 영화의
혈통 있고 아름답고 고귀한 주연들이기 때문임

이건 마치 20매짜리 단편 소설과 같은 결말인데
이 영화의 미친 점은 제작비와 장난의 규모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임
그 많은 시간, 제작비, 세트장, 촬영 기술, 스태프
황정민의 한시간짜리 원맨 호러 퍼포먼스
조인성의 말타기, 정호연의 액션 연기
이런걸 때려부어 놓고 마지막에 하는 말이
참고로 저 괴물들 우주 황실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므로.. 숭고하고 저질이며, 치밀하고 허무하고
예술적이고 장난스럽고 내 눈에 펼쳐지는게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대작의 결말인 것인지
실화가 맞는지 믿을 수가 없는 것

산업적으로 얼마나 과격하며
무모한 행동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거고
마지막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허무해하는 건
실패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성취이기도 함
호프는 마치 속편으로 연결되는 내용 같지만 사실
농담이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속편은 필요 없음
이 엔딩이 완전한 이유는 더 큰 영화가 있을 것처럼
문을 열어놓고 그 영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시켜주지 않는데 있기 때문임
보통 속편으로 연결되는 결말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기 위한 약속임
하지만 호프에서는 다음 편이 있을 법한 우주
프렌차이즈 오프닝으로 바뀌는 형식 자체가 중요함
내가 본게 1편인지, 프롤로그인지, 쟤들이 뭔지
그 혼란 자체가 펀치라인인 것
관객들이 본 영화를 마지막 순간에 없애버리는 것

놀라울 정도로 어처구니 없고 대담하고
관객에게 적대적인 엔딩임
괴물 영화인줄 알았는데 걔들이 사실
장대한 우주 비극, 슬픈 영웅담의 주인공이고
인간들의 이야기는 대서사시에서 발생한
에피소드 1이고
이제 진짜 영화가 시작될 것 같다 (끝)
이 허무개그를 700억을 들여서 한 것이고
그래서 속편이 없어도 되는 것임
호프는 다음 이야기를 보여줘야 완성되는 영화가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보여줄 것처럼 행동하고
사라지는 순간 완성되는 영화이기 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