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속편의 제왕이라는 카메론의 별명이
처음으로 어색해지는 순간이 닥치고 말았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이게 아닐까 함
아무리 위대한 영화 감독이라도 소설가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
아바타는 5편을 넘어 7편까지 계획된
초장기 연대기 프로젝트로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서사는 거의 예외 없이
탄탄한 원작 텍스트를 전제로 성립함
이건 재능의 문제와 상관없는
매체의 메모리 용량 차이임
톨킨, 롤링, 마틴 같은 소설가는 연재를 하면서
수천 쪽 분량의 세계관, 인물, 시간선을
텍스트로 고정해 둠
그리고 작품을 쓰는 내내 정보를 숨기고,
지연시키고, 회수 타이밍을 조절해서
독자가 기다리게 하는 기술을 구조적으로 사용함
초반의 작은 단서가 세 권 뒤에 회수되고
중간 권에서는 일부러 답을 미루며 독자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정면 승부하고
이 과정 전체가 연재와 탈락의 압박 속에서 검증됨
망한 2권, 3권은 조용히 사라지고
살아남은 극소수만 판권 계약에 성공해 영화화됨
해리 포터, 헝거 게임, 심지어 트와일라잇조차
출판 시장이라는 잔혹한 필터를 통과한 생존자임
하지만 아바타는 다름
이 장대한 이야기의 공급자는 감독 한명 뿐임
내용 검증 이전에 5편 이상을 계획했다는 점에서
이미 구조적으로 위험함
카메론은 7편까지 각본을 쓰겠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카메론이 그런 분량의 연대기를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다는 것임
카메론은 대단한 감각 설계의 기술자이고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천재적이지만
장편 연대기는 그의 분야가 아님
이건 롤러코스터 설계자가 놀이기구를
매일 타면서 고친다는 발상에 가까움
그래서 3편쯤 되면 이상한 감각이 발생함
분명 한 편 한 편은 재밌는 것 같고
장면 단위의 밀도, 감정 폭발의 순간
클라이막스 연출이나 시청각 리듬은 압도적인데
서사는 누적되지가 않아서
같은 상황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임
매번 나비족이 하늘의 사람들에게 침략당하고
쿼리치에게 아이들이 납치되고
부모들이 구하러 가고
비슷한 갈등이 장소만 바뀌어서 반복되고
전개가 아니라 팽창이며 축적이 아니라 마모임
2편에서는 새로운 환경(바다)
자녀 세대의 등장, 쿼리치의 재등장이라는
초대형 변수가 있었기 때문에
반복 구조가 마치 확장처럼 보였음
하지만 3편에서는 사건 배열 자체가 재현되어
관객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보다는
'언제 또 같은 일이 벌어질까'를 기다리게 됨
사실상 연대기 소설 전개가 아니라 테마파크
놀이기구가 왔다갔다하는 구조라 할 수있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 카메론의
영화적 마술은 더욱 극단적으로 체감됨
이야기는 분명 흥미롭지 않은데
시선을 화면에서 떼기는 불가능하고
눈과 귀는 과부하에 가까운 자극을 받고
아름다움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옴
3시간을 리클라이너에 앉아 있어도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끝나면 안도감이 드는 경험
이건 재미나 쾌감이라기보다는
시청각 과부하에 가까운 황홀임
여전히 대단한 작품이고 최대의 영화 이벤트이며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긴 함
하지만 이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임
이 정도로 축적되지 않은 이야기를 같은 구조로
5편 이상 끌고 갈수 있냐고.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슬슬 고개를 젓게 되는 시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