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까 그동안 봐온 후기들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영화였어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오락영화와는 거리가 좀 있는 차갑고 느릿한 영화였어. 감정의 변동 폭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고 주로 앉아서 길게 펼쳐놓는 대화가 많더라. 볼거리라면 초반에 나오는 전투 장면과 후반부에 나오는 몇몇 장면 정도였어
광활하게 펼쳐지는 자연과는 달리 벽지 하나 없이 울퉁불퉁한 건물 안에서 그저 뻑뻑대며 뿜어내는 담배 연기와 거사를 어떻게 할지 꺼내놓는 얘기들.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어두운 가운데 약간의 조명만이 발하며 떡진 머리와 수염이 드글드글해서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는 외모들이 가득하고 감정적 변화도 생각보다 크지 않고 드라마틱한 요소도 다소 민숭맹숭, 군상극처럼 보이긴 하지만 캐릭터들의 매력도 차별화가 잘 안되는 어떻게 보면 되게 뭉뚱그려진 모습이었어
그런데 말야 그게 오히려 매력이랄까? 그런 요소들이 튀어나오지 않으니 자연스레 화면과 음악과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 깔아준 그 마음가짐과 이 영화의 분위기가 더 도드라지는 거지.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듯한 차가운 겨울, 나라를 잃고 모든걸 빼앗겨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영화 내내 계속 진행되지. 차가운 얼음 위로 흘러가는 한기와 입에서 퍼져나오는 입김, 그리고 얼어버린 시대의 몸과 마음을 조금 녹여주는 작은 불빛의 담배 연기가 계속 퍼져나가는 모습들.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는데 제일 아쉬운건 중반부가 지루해. 그 묵직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참 좋긴 한데 이제 배우들 얼굴도 익혔고 대충 영화 분위기도 읽었어 그런데 결말을 알고 있는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거지. 한끗한끗씩 늘어지는 것 같은 대사와 장면들이 지속되고 거사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그만큼 빠른 편집과 전개로 이어지든가 아니면 다른 요소를 투입해서 흥미진진하게 해줘야 하는데 뚜벅뚜벅 걸어가는게 답답하더라. 그래도 후반가면 원하던 그 장면이 나오고 갈증이 해소되긴 했어
배우들 연기는 잘한다 싶은 부분이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편, 음악은 좋아. 느린 부분도 음악이 살려줘
영상미도 좋아서 풍광이 확 펼처지는 장면은 장관이더라. 석양 장면도 멋있어서 그 장면을 왜 넣었는진 알겠으나 사실 영화의 전체적인 결과는 맞질 않아서 울림은 없었거든. 앞서 언급한대로 캐릭터들이 도드라지지 않는 만큼 주인공인 안중근도 생각보다는 무뎠거든. 그렇지만 그 인물이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든 장면들이 참 좋더라. 두만강, 진흙밭, 그리고 까레아우라
그 장면들은 진짜 또 보고 싶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