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주의 관 배정을 보면 원래 '퍼스트레이디'는
그다지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채
사라질 영화였던 것 같음
하지만 지금은 꽤 많은 곳에서 상영되고 있음
계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여파 때문인데
시사회를 여는 것도 쉽지 않을 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출발했던 이 영화가
몇 주 후의 미래까지 예측할 수는 없을 것임
운명이라고 봐야 함
대강의 제작 배경은 다음과 같음
윤석열의 아내 김건희는 대선을 준비하던 도중
'서울의 소리'의 이명수 기자와 50회에 걸쳐
7시간 가까운 분량의 통화를 했음
이 내용은 선거를 앞두고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고
큰 파장을 몰고 왔던 이 녹취가 세상에 나온 이후
끊임없는 고소 고발이 이어졌음
'서울의 소리'에서는 이 녹취록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김건희에 대한 의혹을 더해
인터뷰와 취재를 보강하고 그녀의 실체를
폭로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게 이 작품임
사실 막상 어렵게 공개된
이 영화에 아주 새로운 무언가가 있거나 하지는 않음
'퍼스트레이디'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익히 알려져 있고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더욱
그 내용들을 잘 알고 있을테고
그러니까 이 영화를 시간내서 보러 올 정도의
관객들이라면 아마
'퍼스트레이디'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함
작중에서 다루는 것보다 여러가지 국면이 이미
한참 더 진행된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함
업데이트가 필요한 내용임
시간의 부족도 발목을 잡는 요소임
당사자의 의혹이 너무 많다보니 100분 남짓한
상영 시간동안 짚고 넘어가기엔 버겁기도 하고
양평 땅 특혜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상당수 에피소드가 규모만큼 자세히 다뤄지지 않고
비교적 빨리 지나감
그렇다면 '퍼스트레이디'에서 진정 보여주는 건 무엇인가.
부당한 상황 뒤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으며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임
떨어져 있는 여러가지 조각들의 일부를
알고 있더라도 그걸 100분짜리 영화에서
많은 사건들을 통해 빠르게 붙여서 보여주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걸 '퍼스트레이디'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음
정권의 이면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내용 치고는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윤석열에게 관심이 없고
그건 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표가
명확하다는 이야기임
이 영화를 통해 얻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람과 참여의 쾌감임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걸 미친듯이
싫어하는 누군가가 있음
그런걸 알기에 이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은
2년의 기간동안 불굴의 집념으로
독립 영화 한 편을 완성해
기어코 세상에 내보내고 말았음
'퍼스트레이디'를 보는 것은
그 끈기에 동참하는 일이자
번드르르한 겉치장으로 가식을 떨고 있는
누군가가 끝까지 숨기려 했던 그 실체를
저잣거리에 걸어놓고 내려오라며
손가락질하고 외치는 데 함께하는 일임
지금같은 시국이라면 더욱
이런게 작품 자체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영화적 체험이 될 수 있는 건 물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