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춰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
대안 교육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맥스무비= 조현주 기자]
"공부 절대로 안 하겠습니다!" 한 학생의 도발적인 선언에 모두가 웃는다. 대신 곧바로 조건을 붙인다. "1년 동안만"이라고 말이다. 교과 공부 대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탐구하기로 결심한 이 청소년의 다짐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괜찮아,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
'괜찮아, 앨리스'(감독 양지혜)는 각기 다른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청소년들이 학업과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꿈틀리 인생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입시가 최우선인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1년간의 쉼'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방향성과 기회를 모색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담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꿈틀리 인생학교'는 덴마크의 교육 시스템인 '애프터스콜레'를 본보기로 삼아 설립된 대안학교다. '애프터스콜레'는 14~17세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이전에 입학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전환기 학교로,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길을 갈지 고민하는 걸 돕는다.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도록 돕는 곳"을 지향한다.
시험으로 모든 걸 평가받는 일상에 대한 극도의 불안함으로 무너진 아이부터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며 섭식장애를 겪었다는 아이의 진솔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친구들은 모두가 앞으로 치고 달려 나가는 시기에 '잠깐 멈춤'을 눌렀다.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간 뒤 이상한 나라로 모험을 떠나게 된 앨리스처럼, 꿈틀리 인생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여정을 떠난다.
그래서 이곳의 교육과정은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독후감을 쓰고 모두가 모인 앞에서 낭독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보태는 스토리텔링의 시간을 갖는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다 함께 밭으로 나가 모내기도 한다. 기숙학교이지만 청소나 빨래를 누군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함께 사용하는 방의 규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립심과 책임감을 키운다.
무엇보다 '괜찮아, 앨리스'는 제목 그대로 잘하지 않아도, 잠깐 멈추고 쉬어도,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남들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어쩌면 뻔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그 자체가 감동이고 위안이 됐다"는 극 중 한 학생의 말처럼 성적에 대한 압박과 지나친 경쟁으로 내몰린 청소년들에게 '괜찮다'는 말에는 힘이 있었다.
지난 10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0대 자살률이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자살률은 2018년 이후 6년 연속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어느 한 가지 원인만을 꼽을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맞물렸지만, 전문가들은 과열된 입시 경쟁과 성과로만 평가받는 구조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어린 나이부터 사교육 전쟁터에 내몰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등 의대반' '4세 고시' 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나는 것과 이 같은 문제가 마냥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하루 전날인 오는 13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난다. 이는 "수능과 맞짱을 떠보자"는 양지혜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양 감독은 "1% 성공자와 99% 패배자가 갈리는 상징적인 지표의 기점이 수능"이라며 "수능 때가 되면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도 힘들다. 그때 우리 영화가 '괜찮다'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감독 : 양지혜 / 제작 : 오마이뉴스 / 장르 : 다큐멘터리 / 개봉 : 11월13일 /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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