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군대, 현재 대학생인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남자 무리들 안에 있을 때 환멸감과 혐오감을 느꼈던 적이 정말 많았어. 밥 먹듯이, 아니 숨 쉬듯이 하던 여자들 얼평과 몸평, 그리고 성희롱들. 여자 연예인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에게까지 역겹고 토 나오는 말들을 지껄이던 남자들. 듣기 너무나 거북해서 그런 말들을 할 때마다 하지 마라고 뭐라 말해도 '뭐 어때?'라며 내 말을 흘려 듣던 남자들. 그런 모습들이 초반에 너무나 잘 담겨 있더라. 진짜 다 찢어발기고 싶었어. 그냥 진짜 현실에 있을법한도 아닌 무조건 있는 무리의 한 모습이었어. 그런 좆같은 무리들에게 기 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가는 재희가 너무 멋지더라. 재희가 양다리 걸치던 남친 일을 겪은 후 감정이 폭발했던 장면들이 있잖아? 자고 있는 흥수에게 화내던 장면과 산부인과 밖 장면 둘 다 너무 인상 깊었고 김고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
그리고 보면서 흥수라는 캐릭터에게 정말 공감을 많이 했어. 난 흥수처럼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은 못 되서 클럽 같은 곳도 안 가고 누군가랑 사귀어본 경험도 없어. 친한 친구에게도 절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내가 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어. 그래서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보니 짝사랑만 해보고 진짜 사랑은 못 해봤고. 그렇기에 흥수가 게이라고 알려지는 것에 꺼려하던 모습들, 수호가 커밍아웃했다고 말했을 때 그렇게 화내던 이유도 모두 공감이 갔었어.
한때 그래도 부모님에겐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걸 말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많이 고민하다 결국 안 했었거든? 흥수가 학창시절에 남자랑 키스하던 걸 엄마에게 들키고 엄마가 기독교 신자가 되고 흥수에게 밤마다 매일 기도한다는 그런 서사를 봤을 때 만약 그때 내가 부모님에게 내가 게이라는걸 말했다면 우리 부모님도 이랬을까? 라는 생각도 막 들더라.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너 결혼하고 손주 보는거까지 보고 죽을거다 이런 비슷한 말을 하셨던 적이 있었어서. 나는 흥수처럼 들키지도 않았고 내가 커밍아웃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 흥수의 서사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공감이 갔어. 그래서 그런가? 끝내 흥수가 엄마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직접 말하고 엄마가 콜바넴을 보러갔던걸 흥수가 알게된 장면은 보는데 너무 찡하더라. 그리고 한 편으로는 우리 부모님도 과연 저러실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보는 내내 흥수랑 재희의 관계도 부러웠어. 이성 친구인 재희가 있었다는 점이 부러웠다는게 아니라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내가 게이라는걸 정말 저렇게 잘 이해해 줄 친구가 과연 곁에 있긴 할까? 라는 생각도 영화 보는 내내 많이 들었거든. 끝내 내가 내린 결론은 '있다'긴 했는데.. 뭐.. 그럼 된거겠지.
아무튼 영화 전체 후기를 쓰자면.. 퀴어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시선들을 영화 내에 잘 담겨내줘서 좋았고 극의 깊이가 얕지 않아서 정말 좋았어. 퀴어를 소재로만 이용하지 않고 존중한다는게 느껴져서 좋았어. 흔히들 게이하면 여성스러움 이런걸 많이 생각해서 그런쪽으로 강조하고 그런 경우들도 꽤 많이 봤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좋았고.
"네가 너인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너무 좋았던 대사야. 하지만 현실은 이게 약점이 되고 누군가의 뒷담화 대상과 술 안주거리가 되고 그러지. 그렇지만.. 걸레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재희도, 게이라는게 하나의 숨겨야 하는 요소가 됐던 흥수도..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그들은 자신들만의 사랑을 하고 있고 그것 자체가 그들이라고 말하는 그게 너무나도 좋았어. 덕분에 정말 많이 위로받았던 것 같아.
게이 혐오 발언을 주위 남자들에게서 하도 들었고 그러다보니 내가 게이임을 밝힐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겠지만 영화를 보고 그래도 조금의 용기도 얻고 가. 정말 좋은 영화였고 N차도 뛸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 하.. 아무튼 쓰다보니 주절주절 너무 길게 써버렀네 ㅋㅋㅋㅋ 읽어줘서 고맙고 다들 대도시의 사랑법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덬들아 좋은 밤 보내:)
+) 아 근데 영화보니까 나도 사랑하고 싶어지더라.. 조금의 용기도 얻었으니 나도 좀 사랑을 시도해볼까도 싶어지고..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