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베테랑2’(2024)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공통된다.
서도철(황정민) 형사의 아들이 겪는 학교폭력의 문제가 끼어들면서 플롯의 중심을 흔들어 극의 시선이 분산되고 어수선해졌으며, 강력수사대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팀워크의 잔재미를 살려낸 전작 ‘베테랑’(2015)에 비하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조연들의 존재감이 옅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다소 당혹스럽다. 단점이라기보다는 작품의 지향점이 달라진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창조적인 걸 바란다지만 실상은 익숙한 틀에 머물고자 하는 대중문화의 모순과 관성. 극장에서까지 사유하고 싶지 않은 오늘날의 대중지성은 표준화된 서사 모델을 준거로 삼고는, 그로부터 벗어나있는 영화에는 거부감을 드러내며 평점의 칼날을 휘두르곤 한다.
가장 손쉽고 안전한 길은 ‘베테랑’의 공식을 답습하고 소재와 악역만 바꿔가면서 변주한 속편을 내놓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창작자로서 류승완의 결기는 그러한 기대를 거스르면서 일그러져가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 데에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풀어보고 싶다.
‘베테랑 2’는 합법과 불법의 영역에 놓인 두 명의 집행자(영문 제문이 ‘I, THE EXECUTIONER’이다)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서도철로 대표되는 아버지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각각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아들과 사적 응징의 가해자 박선우(정해인)로 분열되어 버린 자식 세대의 양상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들은 해치의 활약에 대한 유튜브 영상에 조용히 ‘좋아요’를 누르고, 사이버 레커와 자경단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법질서의 무능,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의 정념에 영합해 번성하면서 악순환의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가학마저 대중의 호응을 등에 업고 정의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사태는 ‘선’을 넘게 된다.
법은 믿고 의지하기엔 미덥지 않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정의에 대한 광기 어린 요청이 도리어 정의의 실종을 불러오는 역설, ‘선’의 딜레마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이다. 여기에는 갈수록 정의를 빌미삼은 폭력의 정당화, 파시즘화에 무감각해져가는 한국영화와 사회의 윤리적 무감각에 대한 근심, 그리고 파국의 현실을 자식 세대에게 떠넘기면 안 된다는 어른의 고민이 있다.
쓰러진 박선우를 서도철이 심폐소생술로 살려내는 장면은 ‘선’을 지킴과 동시에 다음 세상의 사람들을 걱정하는, 성숙한 기성세대가 된 류승완의 자세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이래 액션활극을 다루는 류승완의 태도는 언제나 양가적이었다.
반응 숏을 길게 잡고 때리는 동작 못지않게 맞는 반응에 중점을 두면서, 폭력은 엄연히 고통스럽고 나쁜 것임을 전달하는 걸 그는 잊지 않았다. 활동사진적 쾌감에 대한 흥분과 매혹은 있지만, 그 이면에는 폭력을 혐오하며 결단코 미화하고 정당화하진 않겠다는, ‘선’은 넘지 않겠다는 한 줌의 윤리, 결연한 소신이 깔려 있었다.
‘츠바키 산주로’(1962)를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가 말했듯 ‘진정 좋은 칼은 칼집에 들어있는 것’이다. 대중영화로서 성실한 만듦새를 추구하면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 ‘베테랑 2’의 결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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