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는 한국 영화 최초로 치어리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가 상당히 궁금했는데, 그건 며칠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글을 보았기 때문었다. 그 글의 제목은 이러했다. '솔직히 치어리더 필요없는 직업인건 맞잖아?'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커뮤 특유의 선동적인 어투로 쓰여져 이용자들을 무작정 자극하는 짧은 글이었고, 그런 게시물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단기간에 수백 플이 달리다 바로 삭제되는 운명을 맞았다. 반응이 어땠냐고? 덧글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 했지만, 생각보다 의견이 많이 갈리고 있었다는 것만 얘기해 두겠다.
물론 그런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글이 신경쓰였던 건 그 내용을 많이 순화한다면 누군가는 던질 수도 있는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치어리더는 대부분의 경기장에 있지만 직접 경기에 참가하지 않으며, 관객들을 독려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일을 한다. 물론 프로 스포츠에 관중이 있는 이상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당사자가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일에 임하는지는 남들이 보는 것과는 또 다르지 않겠는가?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창작물로 조명하는 건 흔하지 않은 기회이다. 어쩌면 무척 특별하고 남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빅토리'는 그런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치어리더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직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힙합 댄스를 즐기며 엄정화의 백댄서가 되고 싶어하는 필선(이혜리)이 오로지 연습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전학온 학생 세현(조아람)과 함께 치어리더부를 개설한다는 도입부는 좋다. 필선을 짝사랑하는 골키퍼 치형(이정하)의 존재나 그와 삼각 관계를 이루는 동현(이찬형)의 등장도 괜찮다. 해당 분야에 대해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 그 세계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이해하게 될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특히 비범한 발상은 서울에서 전학온 치어리더이자 팀의 역량을 대폭 늘려주는 단장인 세현이 축구부의 새로운 에이스인 동현과 남매라는 설정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은 필요하지만, 그게 실제 경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얻어내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팀의 전력이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어리더부가 응원을 너무 잘 해서 축구부가 승승장구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된다. 이런 식으로 연막을 쳐 놓으면 보다 교묘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빅토리'는 이 구도를 제대로 써먹지 않는다. 치어리더의 존재는 경기에 왜 필요한가? 몇 줄의 언급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들을 소재로 하는 이상 이 글을 쓴 작가와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그걸 그 이상으로 궁금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관심사는 그에서 살짝 멀어져 있다. 필선과 밀레니엄 걸즈에게 중요한 건 '응원단'으로 멋진 퍼포먼스를 펼쳐 생존하는 것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응원단은 '응원단'이 아니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 구간에 설득력을 주는 건 치어리딩이라는 소재보다는 밝고 가벼운 코미디와 청춘물의 터치이다.
그 때문에 응원단의 이야기는 훌륭한 팀워크로 완벽한 안무를 완성하자마자 힘을 잃는다. 여기엔 필선의 아버지인 우용(현봉식)의 서사가 관련되어 있다. 그는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반장으로, 매우 괴롭고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는 두 이야기가 엮이는 방식이다. 필선의 이야기는 귀엽고 유쾌한 학원 드라마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우용의 이야기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두 가지 상황이 교차할 수 있다. 하지만 분량이 정해져 있는 창작물에서 효율적인 결과를 뽑아내려면 취사 선택을 하여야 한다. '빅토리'는 양 쪽을 모두 가져가려 하기 때문에, 두 세계는 중반부에서 거칠게 충돌한다. 생존과 관련된 노조의 상황은 매우 절박해서, 치어리더부에서 여고생들이 하는 고민과 격려, 응원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문제이다.
갈등이 있어야 해결이 있는 법이므로, 당연히 치어리더부에게는 위기가 닥쳐야 할 것이다. 스포츠 영화이자 청춘물 답게 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마지막 경기에서 벅찬 응원을 펼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기들은 치어리더부 혹은 운동부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 바깥에서 일어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중후반부를 끌고 갈만한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들이 영화 속에는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상대팀이 사용하는 비장의 기술인 '스턴트'는 거제상고의 치어리더가 할 수 없다. 서울에서 전학온 남매의 사연은 작중에서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다. 필선을 둘러싼 남자 주인공들의 관계는 더 복잡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다. 영화는 어떤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빅토리'의 갈등은 치어리딩 혹은 안무나 스포츠, 학생들의 세계가 아닌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들이다. 이야기가 한참 산으로 가다가, 어느 단계가 되면 학원물 혹은 치어리더 영화처럼 보이지가 않을 정도이다. (나는 이 영화가 15분 정도를 잘라냈어야 한다고 믿는다)
'빅토리'는 실제 인물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다. '섬마을의 치어걸'이라는 경향신문의 기사를 토대로 취재한 원래 대본은 이보다도 훨씬 심각하고 어두웠던 모양이다. 조선소 노조 분량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인 모양새가 이렇다는 점에서 원래의 이야기가 어땠는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는 틀린 기대를 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빅토리'는 사랑스럽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박력있고 화려한 안무,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90년대의 음악들은 때론 벅찬 감동을 주기도 한다. 특히 어쩌면 마지막 청춘물일지도 모를 이 영화에서 가히 모든 것을 던진 이혜리와 박세완의 열연은, 이들이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이렇게 능청스럽게 해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욱 아쉽다. 길을 잃은 청춘들이 좌충우돌하는 도중 서로를 만나고 각자의 재능을 발견해, 팀을 만들어 고난을 극복하는 내용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사람들은 왜 있는 거야?'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의 입장을 창작물의 형식을 빌어 자세히 들을 일은 흔치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문 기회를 잃은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다시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