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의 말대로 현상은 과거 러시아 유학 시절,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군인이 아닌 다른 꿈을 꾸었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결국 북한으로 돌아와 남들에겐 위압적이지만 자신에겐 족쇄에 불과한 직위에 영원히 묶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탈주를 꿈꾸는 규남을 눈치 채고 그에게 거짓된 상을 만들어서라도 자신처럼 북한에 매어놓으려 하지만, 끝내 도망치는 그를 향해 결국 마지막까지 총구를 들이대게 된다.
“현상을 연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장면마다 감정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복잡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었으니까요. 제일 먼저 시작은 규남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마음이 움직여요. 어떤 신에서는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고, 반대로 또 어떤 신에선 일부러 놓아주기도 하죠. 규남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 것이 제게 있어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만일 끝까지 ‘규남을 잡아야 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면 저는 아마 현상을 연기하지 않았을 걸요(웃음).”
이 같은 현상의 규남에 대한 다소 진하고 끈적끈적한 집착 탓에 이들 사이를 놓고 형제 같은 우정 이상의 관계성을 해석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여기에 특별 출연으로 송강이 연기한 선우민이 현상과 묘한 기류를 형성하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삼각관계가 아니냐”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주연 배우들은 모두 이런 해석이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역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라며 감탄했다.
“저는 현상에게 있어 규남은 친밀한 존재이면서도 제거 대상이고, 또 지금 현재의 현상이 꾸는 꿈이라고 해석했어요. 반대로 선우민은 과거 러시아에 두고 온 현상의 꿈이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는 만질 수도 없고 저기 멀리에 서 있는, 유령 같은 존재거든요. 동시에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기엔 굉장히 창피한 상대이기도 하죠. 그렇게 해석해서 접근했더니 이들 간의 관계가 확장되는 것 같더라고요. 관객 분들이 그렇게 넓은 의미로 해석해주시는 것도 좋은데요, 아마 현상이 가장 사랑하는 건 피아노가 아닐까요? 피아노와 무생물과의 사랑을 꿈꾸는(웃음).”
“사실 이전 작품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그걸 신경 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태준기 같은 경우는 정말 굳은 심지를 지닌 인물이거든요. 그냥 완전히 ‘스트레이트’한 애요(웃음). 반면 현상이는 비선형으로 계속 곡선을 그려요. 인물 자체가 완전히 다른 캐릭터인 거죠. 특히 현상이를 보시면 포마드로 넘긴 헤어나 롤렉스시계, 잘 정돈된 재킷처럼 겉을 굉장히 꾸민 모습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 캐릭터가 화려한 모습 뒤에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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