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소녀 인터뷰 기사를 의역해서 올려!!
영화 배경 이해에 엄청 도움이 되었어😊
⭐️⭐️퍼갈땐 제발 글 출처 남겨주라 ⭐️⭐️
다들 궁금해했을 영화 속 사과 소녀!!(= 피아노소녀)
모두 자연광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서
깜깜한 어둠 속의 사과소녀를 찍기 위해선
열화상카메라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어.
이 사과소녀와 소녀가 한 행동은 모두 실화 기반!
알렉산드라 비스트론 코워지이칙 (1927~2016)
(Aleksandra Bystroń-Kołodziejczy)
폴란드인. 2차세계대전 당시 소녀 레지스탕스.
2016년, 영화 관련해서 조사중이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에게 자기 이야기와 일기를 보여주시며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
당시 이 영화의 어두움과 무거움에 여러번 포기하고 싶었던 감독에게 이 분같은 사람들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대.
안타깝게도 감독과 만나고 얼마 후 2016년에 알렉산드라는 돌아가셨어. 감독은 시상식 소감에서
"그녀의 인생이 빛났던 것처럼 (그녀는) 이 영화 속에서도 빛난다"면서 이 영화를 알렉산드라에게 헌정했지.
"낮에는 수용소에 음식이나 약을 가져다 줄 수 없어서 우리는 밤에 갔었어요."
그 당시 쓴 일기장에 이 여정이 자세히 소개되어있대.
사과소녀 알렉산드라는
1927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0km도 안되는 폴란드의 마을. 브제슈체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마을 광산의 측량사였고 애국자셨대.
1940년 4월. 독일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다른 폴란드 인들은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한테 2주간 감금 된후
독일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지.
"아주 끔찍했대요. 수감자들은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고, 비트 잎과 메밀로 만든 묽은 국물을 하루에 빵 한 조각과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서 나무 껍질을 갉아먹었대요. 어느 날, 수프 냄비에서 쥐를 발견하자마자 즉시 수감자들은 쥐를 잡아먹으려 했대요."
알렉산드라의 아버지는 마침내 풀려났고
"풀려난 아버지를 봤을때, 난생처음 기절할 뻔했어요. 유령같아 보였거든요. 뼈와 가죽만 남았죠. 수용소에 갈때 89kg였던 아버지는 돌아왔을때 32kg 였어요."
1941년에 나치는 아우슈비츠 건설을 시작했고
영화의 배경인 1943년에
회스가족이 바로 옆에 살았던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2 강제수용소를 비롯해
40개 이상의 강제수용소가 있었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건설에는 기존에 거기 살던 폴란드인들을 쫓아내는 강제 이주도 포함됐지.
1940년에서 1941년 사이에 독일군은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 이름)과
인근 마을에서 약 17,000명의 폴란드인과 유대인을 강제이주시켰어.
오시비엥침의 전체 유대인 인구(총 약 7,000명)가
게토(나치의 유대인수용구역)로 이송되었고
8개의 폴란드 마을이 파괴되었고
오시비엥침 마을에 위치한 100개 이상의 건물이 철거되었대.
"우리 모두는, 집에 붙은 표식이 어떤 색인지 보고 싶었죠. 빨간색은 이동하란 뜻이었고, 녹색은 여기 남아도 된다는 의미였어요.”
"끔찍했어요. 몇 파운드의 물건만 등에 짊어져 가져갈 수 있었고 그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남겨두어야했어요. 그래서 우린 옮길 수 있는 것만 갖고 갈 수 있었죠."
알렉산드라는 10대때
폴란드 저항운동 단체(Związek Walki Zbrojnej)에 합류했어.
아우슈비츠 주변 지역에 사는 1,200명 이상의 폴란드인들이 활동중이었고 모두 목숨을 걸고 있었지.
만약 잡히면 수용소로 보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수용소에 가면 죽음이 거의 확실했어.
하지만, 나치 경비대는 수용소를 드나드는 어린 폴란드 소녀들에게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암호명 "올레나"를 쓰던 알렉산드라와, 여동생은 수감자들과 외부 세계 사이의 연락책 역할을 할 수 있었대.
광산에서 일한다는 명분으로 음식, 약품, 따뜻한 겨울옷 등을 밀반입시키고 수감자들의 메시지를 밀수입했고,
주로 밤에 일하면서 수감자들이 찾을 수 있도록 수용소 내부에 물품을 숨겼어. 영화속 소녀가 진흙 속에 사과를 숨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알렉산드라가 말한 내용에 기반한 것!
알렉산드라는 그녀 인생에 영향을 끼쳤던 그 끔찍한 광경들에 대해 말했어. "우리에겐 어린시절이 없었어요. 우리는 너무 이르게 어른으로 살아야했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알렉산드라는 같은 마을에 남았어. 기술연구학원을 졸업했지만,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대. 공산당은 그녀의 2차 세계대전 중의 활동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권위에 대한 저항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해.
그녀가 90살이던 2016년.
영화 초기 작업을 하던 글레이저 감독과 만났어.
자전거를 타고 수용소에 가서 사과를 묻던 이야기,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우슈비츠 포로 요제프 불프(Joseph Wulf)가 작곡한 신비한 악보를 발견한 이야기를 감독에게 들려주었지. 영화에서 우리는 어린 소녀가 집에서 피아노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돼.
(실제 알렉산드라의 집 & 옷 & 자전거 & 피아노로 촬영했어)
글레이저 감독의 가디언과의 인터뷰 :
음식을 두고 오는 그 작은 저항의 행동은, 간단하지만 거의 성스럽기까지하죠.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유일한 '빛'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었죠.
전 정말로 그 시점에 영화를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프로듀서 짐에게 전화를 걸어 계속 "못하겠어. 관둘래.. 난 못해.. 이 영화는 너무 어두워. " 라고 말했죠.
완전한 어둠만 보여져서 (이 영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어딘가에서 계속 빛을 찾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선한 에너지를 갖고있었어요.
🥹🥹
내가쓴 해석번역글 정보글 링크 https://theqoo.net/movie/3279353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