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에서 “내가 얼굴로 검사됐냐는 댓글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능청스레 말하는 잘생기고 야욕 넘치는 검사 서동재에서 막 빠져나온 이준혁은 화려한 외모를 제외하곤 캐릭터와 대척점에 있다.
촬영장의 조명이 꺼진 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는 기존 인터뷰에서 자주 묘사되던 모습 그대로였다. 느릿한 말투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내용을 말하는 사람. 조명이 꺼지고 배우의 직업을 벗으면 집으로 퇴근해 평범한 이준혁으로 돌아가 한껏 늘어져 있을 사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머릿속에 느낌표가 반짝 켜졌다. 13년 동안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 소모되지 않고 계속 배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균형감각 때문은 아닐까. 인생을 사는 비기 하나를 전수받은 기분이 들었다.
Q
'비밀의 숲 2'가 종영했다.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살펴봤나.
A
이런 인터뷰나 화보를 진행하면서 드라마의 반응을 알 수 있다. 뵙는 분마다 재밌게 봤다고 해주셔서 '비밀의 숲'이나 서동재라는 인물에 호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Q
종영 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연기한 야욕 넘치는 캐릭터 서동재에게 “말을 좀 줄여라.”라고 조언했다. 현실에 동재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땠을 것 같은가.
A
예전에 지인 가운데 동재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좀 힘들더라.(웃음) 배울 점이 물론 있다. 사회 시스템에 굉장히 잘 녹아들어 있고 일할 때 아주 유리한 것 같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로는 피곤하고 힘들 것 같았다.
Q
서동재는 '비밀의 숲 1'에서 비열한 행동으로 ‘느그동재’라는 별명이 붙었다가 시즌 1 후반부와 '비밀의 숲 2'에선 다소 짠한 개인 서사와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호감도가 높아졌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였나.
A
'비밀의 숲'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보기에 시즌 1과 2의 온도와 정서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시즌 1이 더 이성적이고 심오한 세상을 그린다면 시즌 2에는 여진(배두나)의 감성을 더 많이 그리지 않나 싶더라. 사람의 속내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게 2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동재의 내면도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2편 작업에 들어가면서 동재도 힘들게 살아가는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Q
시즌 2의 동재는 시즌 1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의도적으로 연기 톤에 차이를 뒀나.
A
시즌 1의 동재가 허세를 심하게 부린다면 시즌 2에선 깃털처럼 가벼워진다고 생각했다. 시목(조승우)과 여진이 보는 앞에서 의정부지검으로 좌천됐고, 이제 아무런 권력도 남아 있지 않다. 전에는 지킬 게 있었다면 이젠 지킬 권위도 없고 윗자리로 올라가야 한다는 갈망밖엔 없어서 말도 행동도 가벼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Q
실제 성격은 나무늘보 같은 스타일이라고 자주 이야기해왔다. 얄밉고 뻔뻔한 면이 있는 서동재와 정반대일 것 같은데 극과 극의 성격을 오가는 게 낯설지는 않았나.
A
시즌 1을 시작할 때는 그 전에 얌전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터라 동재가 도전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이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시즌 2에선 동재가 납치되면서 자주 출연하지 못했다. 분량이 아쉽진 않았나.
A
좋았다.(웃음) 시목 형과 여진 누나가 날 애타게 찾아줄 줄 몰랐다.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여진이 “서동재!” 하면서 반지하실 문을 두들길 때 뭉클했다. 날 이렇게 찾아주다니. 시목과 여진은 참 좋은 사람들이다. 완벽한 인간상이다. 한 수 배워간다.
Q
'비밀의 숲'은 시즌 1의 이창준(유재명), 영은수(신혜선) 등 주요 캐릭터가 정을 붙였다 하면 죽곤 해서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컸다. 살아 돌아온 서동재는 운이 굉장히 좋다.
A
나는 오히려 서동재가 죽는다면 죽음으로써 구원받을 수도 있다고 봤다. 실존 인물이 아니니까 이 캐릭터는 죽었기 때문에 연민의 여지가 남고 더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동재는 다시 구렁텅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찌 보면 동재가 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정의를 위해 싸운 것도 아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 왔으니 허무한 죽음이다. 살아 돌아오는 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Q
필모그래피를 보면,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고, '신과함께-죄와 벌', '언니', '야구소녀' 등 최근 1년에 한 작품씩은 영화도 하고 있다. 작품을 고를 때 주로 어디에 기준을 두나.
A
그때그때 최선의 기회를 잡는 편이고 그 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고르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라는 형식에 따라 선택에 차이를 두는 건 아니다. 한동안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으면 다음엔 다른 느낌의 인물을 찾는다. 내가 지루하지 않은 정도면 되는 거 같다. 나도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는 시간이 있지 않나. 쉴 때 보는데 소비자로서 다른 작품이 더 재밌으면 시간 낭비다. 그러면 안 된다.(웃음)
Q
까다로운 시청자 같다. 최근에 보고 만족한 작품이 있나.
A
영화 '테넷'을 봤다. 복잡하다는 평이 많던데, 나는 오히려 심플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멘토' 시절에 추구했던 바와 '인터스텔라'의 느낌이 잘 융합된 거 같다. 과학적인 이야기와 문학적인 장치가 굉장히 잘 섞인 거 같다. 과학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문학과 철학에 더 가깝다.
Q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자주 하더라. 작품을 챙겨 보고 찾아보는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A
맞다. 영화 자체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배스킨라빈스 같은 데 가면 수십여 가지 맛이 다 괜찮다. 그중에 내 취향에 더 잘 맞는 게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시간 낭비로 느껴지지 않는다. 보는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느낌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유독 애정이 가는 특정 감독이 있기보다 다 좋다.
Q
예전에 실제 본인과 비슷한 역할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 이준혁은 어떤 사람인가.
A
나는 없는 존재인 것 같다.(웃음) 생각해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다는 건 그 시간 동안 남의 얘기를 듣는 거고, 일할 땐 가상의 캐릭터로 사는 거니까. 나는 그냥 퍼져 있는 존재 같다. 그게 딱 나답다. 가장 나다운 시간을 생각해보면,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나 일할 때의 동선을 배제하면 나는 그냥 퍼져 있는 존재다.
Q
그러면 다른 작품에서 본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캐릭터도 없겠다.
A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워낙 극적이기 때문에 비슷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비슷하면 무척 피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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