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배우 이종석
만화 속 설정인 걸 참작하더라도, 문화방송(MBC) 드라마 <더블유>(W·2016)의 주인공이자 극중 만화 ‘더블유’의 주인공인 강철은 너무 뻔한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있는 캐릭터다. 취미 생활로 했다는 사격으로 국가대표가 되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온 가족을 잃은 슬픔을 채 벗기도 전에 존속 살해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누명을 벗은 뒤엔 스타트업 벤처를 시작해 개인 자산 8000억원의 청년 갑부가 되어 방송국을 통째로 사들이는가 하면, 직접 무술을 익혀 손수 강력범죄를 퇴치하는 데 앞장선다. 천재적인 두뇌와 유머 감각,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 기질까지. 심지어 이름까지 강철이다. 가히 고 박봉성 화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1987) 속 최강타나 김혜린 화백의 <북해의 별>(1983) 속 유리핀을 연상시키는 인물 설정은 확실히 요즘 만화라기보단 지난 세기 만화 속 무결점 주인공들을 닮았다. 너무 멋진 것만 모아놓은 탓에 자칫 촌스러움의 영역으로 굴러떨어지기 쉬운 강철을, 이종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뻔뻔스레 연기해낸다.
뭘 그려내도 좋을 순백의 도화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종석이 분한 인물 중 상당수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었으니까. 천재적인 작곡 능력과 서늘한 미모를 한 몸에 지닌 에스비에스(SBS) <시크릿 가든>(2010~2011)의 작곡가 썬이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고 친구들을 챙기며 심지어는 기간제 교사 담임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지원군으로 활약하는 한국방송(KBS) <학교 2013>(2012~2013)의 해결사 고남순,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면 상대의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속 초능력자 박수하, 촉진만으로 심장에 뼛조각이 박혔다는 걸 알아내는 <닥터 이방인>(2014)의 천재 외과 의사 박훈, 책 전질 수준이 아니라 아예 도서관 소장 장서를 모조리 외울 정도의 두뇌를 갖춘 <피노키오>(2014, 이상 에스비에스)의 최달포 기자까지. 심지어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배역이었던 영화 <관상>(2013) 속 진형조차 아버지의 만류와 역적의 가문, 장애라는 삼중고를 뚫고 어떻게든 자력으로 중앙관리가 되는 청년이었다. 이종석은 줄곧 어딘가 심각할 정도로 비범한 청년을 연기했고, 그 비범함을 어떻게든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재주를 발휘하곤 했다. 이쯤 되면 이종석이 <더블유>의 강철을 연기한 건 논리적인 귀결처럼 느껴진다.
판타지의 뼈대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건 당연히 논란 한 번 없이 꾸준히 다져진 연기력이겠으나, 판타지의 외관을 완성하는 마무리는 렌즈 앞에 선 피사체로서의 이종석이 지닌 외모적 강점이다. 얼굴의 깊이감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먹을 듬뿍 묻힌 붓으로 그려낸 것 같은 진한 눈썹, 도톰하고 붉은 입술에 길고 마르되 단단한 몸, 이종석은 마치 어느 장르의 만화에 던져 놓아도 자연스레 주인공 자리를 내줘야 할 것 같은 모범적인 만화 주인공의 육체를 지녔다. 여기에 뭘 그려내도 좋을 순백의 도화지가 얹힌다. 사람들이 흔히 이종석이 20대 중반까지 교복을 입은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소년의 얼굴’은 아직 인상에 명확한 방향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덕분에 그의 얼굴은 그 위에 어떤 종류의 판타지를 그리든 그럴싸하게 뒷받침해주는 훌륭한 도화지 역할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나는 나이 먹어서 근사한 얼굴이 아니다. 주름지면서 그게 멋있는 얼굴이 아닌 거다. 지금은 어리고 탱탱하니까 괜찮은 얼굴. 그래서 연기를 정말 잘하지 않는 이상 나는 없어질 거다.”(‘더 저니’(The Journey) <마리 끌레르> 2015년 3월호. 이지연 에디터)라고 박하게 평가하는 얼굴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종석의 얼굴은 보는 이들에게 믿고 싶어지는 판타지를 약속하는 보증수표다.
만화 속 무결점 주인공 캐릭터
피사체가 지닌 외모적 강점 탁월
모범적인 주인공 떠올릴 육체에
판타지 약속 보증수표 얼굴까지
패션모델·아이돌 기회 박차고
오로지 배우 열망으로 버텨내
데뷔 7년차 드라마·영화 수두룩
강철 묘사에 필요한 핵심 조각
저 자신의 얼굴에 대한 평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종석은 자신에게 후한 사람은 아니다. 배우 데뷔를 하고도 아주 오랫동안 제 연기를 부끄러워한 탓에 데뷔 6년 차가 되어 공동 주연작을 여섯 작품이나 남긴 2015년에야 간신히 자신에게 ‘배우’라는 수식어를 허락했고, 혹시나 같이 작업하는 이들에게 누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현장에서 따로 캠코더로 자신의 출연분을 찍어 모니터링한다. 인터뷰 자리 때마다 기자들이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단점을 먼저 고백해버리고, 촬영할 때 어땠느냐는 질문마다 심심찮게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제 인기를 금방 꺼질 거품이란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 거품이 꺼진 뒤에도 잘 보아달라는 당부를 건네는 20대 청춘스타라니. 이렇다 할 연기력 논란 없이 성장한 배우치곤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자기평가. 어쩌면 자신을 평가하는 이종석의 엄격한 잣대는 그만큼 좋은 연기자가 되기를, 자신의 꿈 앞에 창피하지 않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마음으로 다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사실 배우가 되기 이전에도 이종석의 커리어는 화려한 축에 속했다. 첫 번째 소속사에선 그를 패션모델로 데뷔시켰다. 16살의 나이에 서울컬렉션 역대 최연소 남자 모델 데뷔 기록을 세운 그는 국내 유수의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활약하며 톱모델의 자리를 꿰찼다. 두 번째 소속사에선 독보적인 보디라인과 특유의 소년미 넘치는 외모를 보고 그를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종석은 그 모든 걸 뒤로했다. 전자는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후자는 자신의 그릇이 아닌 거 같다는 이유로. 무릎인대 부상으로 집에서 쉬는 동안 티브이를 끼고 살다가 문득 한국방송 <풀하우스>(2004) 속 정지훈을 보며 그처럼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던 중학생 시절 이후, 이종석은 오로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세 번째 기획사에서도 처음 몇 년을 ‘방치’되다시피 했던 그는 연기의 기회를 잡자 한을 채우듯 쉬지 않고 일만 했고, 자신이 소진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쉴까 하다가 고작 3개월을 쉰 다음 자신은 쉬지 않고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며 다음 작품으로 뛰어들었다. 기껏 자유시간을 주면 남들은 대체 남는 시간에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초조해하는 사람, 이종석은 데뷔 7년 차에 아홉 편의 드라마와 두 편의 특별출연,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한 편의 독립영화를 남겼다.
허황된 판타지까지 믿게 만드는
어쩌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타협 없이 몰두하고 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이종석의 성격이야말로, <더블유>의 강철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조각인지도 모른다. 극 중 등장하는 만화 ‘더블유’의 주인공 강철은 의지박약의 알코올 중독자 만화가 오성무(김의성)가 자신의 판타지를 투사해 만든 캐릭터이고, 그렇기에 오성무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투지,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추진력과 집중력을 지닌 인물이다.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 오성무를 마주한 상황에서조차 주눅 들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집요함이나, 작품의 자장 안에 종속된 존재임을 자각한 이후에도 치밀하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플랜을 설계하는 객관성까지. 강철을 강철로 만든 요소들은 어딘가 이종석을 지금의 이종석으로 만든 그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
물론 이종석은 개인자산 8000억대의 청년 갑부도 아니고, 천재적인 사격 실력과 두뇌를 지닌 해결사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20대 남자 배우들 중 강철의 내면세계를 가장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이종석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허황된 판타지마저 믿고 싶게 만드는 불굴의 의지와 성실한 몰입을 선보이는 사람. 본인은 자신을 배우로 인정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라며 서른 즈음까지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던 신인 시절의 다짐을 아직도 되새기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강철의 겉과 속을 모두 연기해낼 수 있는 배우는 유일무이, 이종석뿐일 테니까.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8&aid=0002330102
좋아하는 기사라 복습하다 같이 보려고 갖고왔어
배우 이종석
만화 속 설정인 걸 참작하더라도, 문화방송(MBC) 드라마 <더블유>(W·2016)의 주인공이자 극중 만화 ‘더블유’의 주인공인 강철은 너무 뻔한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있는 캐릭터다. 취미 생활로 했다는 사격으로 국가대표가 되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온 가족을 잃은 슬픔을 채 벗기도 전에 존속 살해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누명을 벗은 뒤엔 스타트업 벤처를 시작해 개인 자산 8000억원의 청년 갑부가 되어 방송국을 통째로 사들이는가 하면, 직접 무술을 익혀 손수 강력범죄를 퇴치하는 데 앞장선다. 천재적인 두뇌와 유머 감각,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 기질까지. 심지어 이름까지 강철이다. 가히 고 박봉성 화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1987) 속 최강타나 김혜린 화백의 <북해의 별>(1983) 속 유리핀을 연상시키는 인물 설정은 확실히 요즘 만화라기보단 지난 세기 만화 속 무결점 주인공들을 닮았다. 너무 멋진 것만 모아놓은 탓에 자칫 촌스러움의 영역으로 굴러떨어지기 쉬운 강철을, 이종석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뻔뻔스레 연기해낸다.
뭘 그려내도 좋을 순백의 도화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종석이 분한 인물 중 상당수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었으니까. 천재적인 작곡 능력과 서늘한 미모를 한 몸에 지닌 에스비에스(SBS) <시크릿 가든>(2010~2011)의 작곡가 썬이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고 친구들을 챙기며 심지어는 기간제 교사 담임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지원군으로 활약하는 한국방송(KBS) <학교 2013>(2012~2013)의 해결사 고남순,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면 상대의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속 초능력자 박수하, 촉진만으로 심장에 뼛조각이 박혔다는 걸 알아내는 <닥터 이방인>(2014)의 천재 외과 의사 박훈, 책 전질 수준이 아니라 아예 도서관 소장 장서를 모조리 외울 정도의 두뇌를 갖춘 <피노키오>(2014, 이상 에스비에스)의 최달포 기자까지. 심지어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배역이었던 영화 <관상>(2013) 속 진형조차 아버지의 만류와 역적의 가문, 장애라는 삼중고를 뚫고 어떻게든 자력으로 중앙관리가 되는 청년이었다. 이종석은 줄곧 어딘가 심각할 정도로 비범한 청년을 연기했고, 그 비범함을 어떻게든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재주를 발휘하곤 했다. 이쯤 되면 이종석이 <더블유>의 강철을 연기한 건 논리적인 귀결처럼 느껴진다.
판타지의 뼈대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건 당연히 논란 한 번 없이 꾸준히 다져진 연기력이겠으나, 판타지의 외관을 완성하는 마무리는 렌즈 앞에 선 피사체로서의 이종석이 지닌 외모적 강점이다. 얼굴의 깊이감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먹을 듬뿍 묻힌 붓으로 그려낸 것 같은 진한 눈썹, 도톰하고 붉은 입술에 길고 마르되 단단한 몸, 이종석은 마치 어느 장르의 만화에 던져 놓아도 자연스레 주인공 자리를 내줘야 할 것 같은 모범적인 만화 주인공의 육체를 지녔다. 여기에 뭘 그려내도 좋을 순백의 도화지가 얹힌다. 사람들이 흔히 이종석이 20대 중반까지 교복을 입은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소년의 얼굴’은 아직 인상에 명확한 방향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덕분에 그의 얼굴은 그 위에 어떤 종류의 판타지를 그리든 그럴싸하게 뒷받침해주는 훌륭한 도화지 역할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나는 나이 먹어서 근사한 얼굴이 아니다. 주름지면서 그게 멋있는 얼굴이 아닌 거다. 지금은 어리고 탱탱하니까 괜찮은 얼굴. 그래서 연기를 정말 잘하지 않는 이상 나는 없어질 거다.”(‘더 저니’(The Journey) <마리 끌레르> 2015년 3월호. 이지연 에디터)라고 박하게 평가하는 얼굴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종석의 얼굴은 보는 이들에게 믿고 싶어지는 판타지를 약속하는 보증수표다.
만화 속 무결점 주인공 캐릭터
피사체가 지닌 외모적 강점 탁월
모범적인 주인공 떠올릴 육체에
판타지 약속 보증수표 얼굴까지
패션모델·아이돌 기회 박차고
오로지 배우 열망으로 버텨내
데뷔 7년차 드라마·영화 수두룩
강철 묘사에 필요한 핵심 조각
저 자신의 얼굴에 대한 평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종석은 자신에게 후한 사람은 아니다. 배우 데뷔를 하고도 아주 오랫동안 제 연기를 부끄러워한 탓에 데뷔 6년 차가 되어 공동 주연작을 여섯 작품이나 남긴 2015년에야 간신히 자신에게 ‘배우’라는 수식어를 허락했고, 혹시나 같이 작업하는 이들에게 누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현장에서 따로 캠코더로 자신의 출연분을 찍어 모니터링한다. 인터뷰 자리 때마다 기자들이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단점을 먼저 고백해버리고, 촬영할 때 어땠느냐는 질문마다 심심찮게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제 인기를 금방 꺼질 거품이란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 거품이 꺼진 뒤에도 잘 보아달라는 당부를 건네는 20대 청춘스타라니. 이렇다 할 연기력 논란 없이 성장한 배우치곤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자기평가. 어쩌면 자신을 평가하는 이종석의 엄격한 잣대는 그만큼 좋은 연기자가 되기를, 자신의 꿈 앞에 창피하지 않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마음으로 다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사실 배우가 되기 이전에도 이종석의 커리어는 화려한 축에 속했다. 첫 번째 소속사에선 그를 패션모델로 데뷔시켰다. 16살의 나이에 서울컬렉션 역대 최연소 남자 모델 데뷔 기록을 세운 그는 국내 유수의 디자이너들의 뮤즈로 활약하며 톱모델의 자리를 꿰찼다. 두 번째 소속사에선 독보적인 보디라인과 특유의 소년미 넘치는 외모를 보고 그를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종석은 그 모든 걸 뒤로했다. 전자는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후자는 자신의 그릇이 아닌 거 같다는 이유로. 무릎인대 부상으로 집에서 쉬는 동안 티브이를 끼고 살다가 문득 한국방송 <풀하우스>(2004) 속 정지훈을 보며 그처럼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던 중학생 시절 이후, 이종석은 오로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세 번째 기획사에서도 처음 몇 년을 ‘방치’되다시피 했던 그는 연기의 기회를 잡자 한을 채우듯 쉬지 않고 일만 했고, 자신이 소진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쉴까 하다가 고작 3개월을 쉰 다음 자신은 쉬지 않고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며 다음 작품으로 뛰어들었다. 기껏 자유시간을 주면 남들은 대체 남는 시간에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초조해하는 사람, 이종석은 데뷔 7년 차에 아홉 편의 드라마와 두 편의 특별출연,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한 편의 독립영화를 남겼다.
허황된 판타지까지 믿게 만드는
어쩌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타협 없이 몰두하고 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이종석의 성격이야말로, <더블유>의 강철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조각인지도 모른다. 극 중 등장하는 만화 ‘더블유’의 주인공 강철은 의지박약의 알코올 중독자 만화가 오성무(김의성)가 자신의 판타지를 투사해 만든 캐릭터이고, 그렇기에 오성무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투지,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추진력과 집중력을 지닌 인물이다.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 오성무를 마주한 상황에서조차 주눅 들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집요함이나, 작품의 자장 안에 종속된 존재임을 자각한 이후에도 치밀하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플랜을 설계하는 객관성까지. 강철을 강철로 만든 요소들은 어딘가 이종석을 지금의 이종석으로 만든 그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
물론 이종석은 개인자산 8000억대의 청년 갑부도 아니고, 천재적인 사격 실력과 두뇌를 지닌 해결사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20대 남자 배우들 중 강철의 내면세계를 가장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이종석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허황된 판타지마저 믿고 싶게 만드는 불굴의 의지와 성실한 몰입을 선보이는 사람. 본인은 자신을 배우로 인정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라며 서른 즈음까지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던 신인 시절의 다짐을 아직도 되새기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강철의 겉과 속을 모두 연기해낼 수 있는 배우는 유일무이, 이종석뿐일 테니까.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8&aid=0002330102
좋아하는 기사라 복습하다 같이 보려고 갖고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