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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오동운 변호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오동운 과거글 찾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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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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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사랑을 잃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하는 시를 쓴 시인 기형도처럼 사랑하던 짧았던 밤들과 흰 종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 본 적은 있으신지요?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에 마음 아파하며, 달랠 수 없는 마음으로 무언가 끄적이던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오늘 위헌제청신청서를 쓰면서 기형도 시인의 『빈집』을 다시 읽어 봅니다.

 저도 한때 사랑을 잃은 적이 있다고나 할까요. 때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비교적 경미한 사건의 유무죄를 따지거나 벌금을 깎아 달라는 형사단독 고정사건 전담재판부를 맡을 적입니다. 형사단독 고정사건 전담재판부가 다루는 사건은 아무래도 중요도가 떨어져서, 그 당시 판사들이 그리 선호하는 업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 당시 법원을 향하는 제 발걸음에 힘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간단하고 작은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직무와 소명 그리고 법에 대한 사랑의 권태기를 맞았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권태기를 겪으면서도 제 눈을 반짝이게 했던 것은, 고정사건 전담재판부가 취급하는 무수한 법률들을 상대하면서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법률들이 눈에 뜨인 점입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쏙 들어온 것이 구 조세범처벌법1) 제13조 제1호 규정이었습니다. 법에 의한 정부의 명령사항을 위반하면 벌금 50만 원에 처한다는 조항이었는데, 위 형벌조항으로 구 주세법 제40조2)에 의한 국세청고시를 위반한 행위(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사 온 주류를 일반음식점에서 판매하는 행위 등)를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위 규정의 ‘법에 의한 정부의 명령사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 판단해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하였고, 결국 2006헌가10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위 규정이 위헌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 후 제가 헌법연구관으로 파견 근무하는 계기가 되는 등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라는 말씀을 하신 가인 김병로 선생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된 것도 같아 제 소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헌적인 법률을 바로잡아 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감사하고, 우리에게 아직 법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형사재판에서의 변호사비용 보상에 관한 결정문을 받아들고, 다시 한번 열망들로 가득 찼던 그 시절로 돌아갈 채비를 해 봅니다. 사건의 발단은 피고인이 도박공간개설방조죄 등으로 무려 344일 동안 구속 기소되어 대법원까지 치열하게 다투어진 형사사건에서 결국 공소기각 판결을 받게 된 것에서부터였습니다.

 아시겠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일죄에 대해 공소기각, 면소, 무죄사유가 경합하는 경우 형식재판우선의 원칙에 따라 공소기각, 면소, 무죄사유 순서로 선고해야 합니다. 이는 위법한 공소제기를 억제하고, 법원과 피고인에게 절차적 부담을 면제시켜 소송경제 및 피고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에서 나온 원칙입니다. 즉, 유·무죄에 대해 다툴 필요도 없이 공소가 위법하다면 억울하게 기소된 피고인을 최대한 빨리 형사절차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법관이 본인은 유·무죄에 대해서 심리하고 싶다고 나서서 피고인을 장기간 고통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죄사유가 있더라도 공소기각이나 면소사유가 있다면 이에 집중하는 것이 변호인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무죄 판결보다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이 변호사로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도박공간개설방조죄 등으로 구속 기소된 사건에 대한 2018도13166 사건 역시도 정범의 공소사실이 특정되어 있지 않아, 방조범의 공소사실 역시 특정되지 않았기에 ‘방조범의 정범종속성 이론’에 따라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진 사건이었습니다. 변호사로서의 경험이 일천하지만, 참으로 가슴 뛰게 하는 판결이었습니다. 그 옛날 위헌심판결정문을 받아든 젊은 시절의 법관처럼 판결문을 받아들고 ‘대박이다!’라고 외친 그날을 저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감한 권리의식과 냉철한 이성으로 사건을 분석하여, 변호인의 의견에 귀 기울여 준 재판부와 우리의 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받아든, 형사보상청구에 대한 결정문은 저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습니다. 고액의 형사보상금을 인정해 준 반면, 1, 2, 3심 합계 600만 원의 변호사비용을 전혀 보상해 주지 않았습니다. 형사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자가 국가로부터 그 재판에 소요된 비용을 보상받기 위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하므로 변호사비용은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근거는 바로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 제1항입니다. 판결 주문만 공소기각일 뿐 무죄이기도 한 사건이었는데, 법 규정으로 인하여 변호사비용을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공소기각 판결은 반의사불벌죄에 대하여 처벌불원의사가 있거나, 친고죄에 대하여 고소가 없는 경우에도 내려지므로 이런 경우까지 변호사비용을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의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는 무죄를 받은 자와 무죄와 공소기각사유가 경합하여 공소기각을 받은 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공소기각이 부정될 시를 대비하여 무죄주장을 펼쳐야 하는 변호인 입장에서는 더 큰 노력이 드는데도 국가로부터 비용 보상을 받을 수 없게 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한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1항 제1호가 공소기각의 재판이 확정된 경우라도 무죄재판을 받을 현저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구금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점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 제1항을 적용함에 있어 공소기각의 재판이 확정된 경우라도, 무죄재판을 받을 현저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변호사비용 보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재판을 받을 권리에 반한다고 봅니다.

 위 형사소송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의뢰인인 피고인이 받게 될 변호사비용은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로 하여금 다시 한번 더 법률가로서의 소명과 법에 대한 신뢰, 나아가 그 모든 것에 대한 저의 열망을 담아 헌법재판소에 질문을 하게 합니다.

 오늘, 저는 『빈집』 시구절을 다시 읽으며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글귀가 새로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포기와 실연의 탄식으로만 들렸던 그 문구가 이제는 “잘 있거라,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읽히네요. ‘나만의 것’이 아닌, 앞으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많은 변호사들의 것이기도 한, 열망들이 보입니다. 그 사이로 가난하게 식당을 운영하다가 벌금을 받았던 분들이 재심을 통해 50만 원을 돌려받을 것에 기뻐하던 젊은 법관 시절의 제 모습 역시 떠오릅니다. 오늘 저는 그 옛날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법조인으로서의 사명을 담아 위헌제청신청서를 써 봅니다. 마치 기형도 시인이 『빈집』을 쓰는 시인의 느낌으로, 우리 법이 더 이상 ‘빈집’이 아닌 ‘정의로 빛나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혹은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모든 법률가에 대한 응원문을 쓰는 마음을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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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법 감성인가? 인터넷 돌다보니 옛날에 쓴 글이 있길래 ㅋㅋㅋ 가져와봄

글이 너무 오동잎스럽긴해 ㅋㅋㅋ 뭔가 유약한 감성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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