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이 27일 작성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구상과 선포 당일 행적이 상세히 담겼다. 윤 대통령 쪽은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전 장관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군 지휘관을 채근한 발언이 담겼다. 정치적 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기 위해 최소 올해 3월부터 ‘비상대권’ 행사를 꿈꿨다는 정황도 함께였다. 윤 대통령과 직접 대면·통화한 당사자들의 진술을 수사 단계에서 종합한 것으로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에 가까운 증언으로 판단된다. 이에 검찰 설명자료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의 ‘내란 일지’를 정리했다.
■ “내가 2번, 3번 계엄 할 테니까 끌어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저녁 7시께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안전가옥으로 불렀다. 김용현 장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계획을 밝히며 1장짜리 지시서를 하달했다. 이날 저녁 8시께에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가정보원에도 대공수사권 줄 테니까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밤 10시28일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전화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포고령에 대해 알려줘라”고 지시했다. 11시25분 포고령이 공포된 뒤 윤 대통령은 조 청장에게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고 명령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로 출동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게도 전화해 수시로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아직도 (국회에) 못 들어갔냐”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 하고 있느냐”고 질책하면서 “문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 끌어내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며 구체적으로 국회를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헬기로 이동 중인 공수부대 상황도 점검했다. 그는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전화해 ”아직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을 모두 제압하라는 윤 대통령의 명령은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윤 대통령은 여야 의원 190명이 모여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한 직후인 지난 4일 새벽 1시3분께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전화해 “국회의원이 190명이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되는 것”이라며 “(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말했다. 검찰 특수본 관계자는 “ “대통령의 진술 내용은 인적, 물적 증거를 통해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마치 계엄군 최고 지휘관처럼 군에 국회 장악을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시민들이 막아선 국회에서 그의 명령과 지시는 그저 반향 없는 ‘격노’일 뿐이었다.
■ 제왕 꿈꾼 대통령의 내란…망상은 최소 3월부터
친위 쿠데타로 제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망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검찰은 최소 올해 3월부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여러 차례 계엄을 논의했고 11월부터 실질적인 준비가 진행됐다고 결론 내렸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과 군 주요 지휘부 등이 모인 자리에서 나라 걱정을 늘어놓으며 “비상대권(국가위기 때 대통령이 시행하는 비상한 조처)밖에 방법이 없다”고 수차례 발언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계엄을 언급한 시기는 올해 3월 말~4월 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김용현 당시 대통령 경호처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을 불러 나라를 걱정하며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5~6월 김 전 장관과 여 사령관과 삼청동 안가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며 계엄의 필요성을 거듭 언급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 발언과 함께 추후 체포 명단에 오른 주요 정치인과 노동계 인사 등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초 대통령 관저에서 김 전 장관과 여 사령관을 부른 뒤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 등을 언급하며 “현재 사법체계 아래에서는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다.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국군의날에도 계엄 언급은 이어졌다. 10월1일 시가행진을 마친 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과 여 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도사령관 등을 관저에 불러 직접 준비한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언론·방송계, 노동계에 있는 이른바 ‘좌익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비상대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지난달 9일에도 김 전 장관과 특전·수방·방첩사령관을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모아놓고는 “(시국 문제를)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선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비상대권·비상조치’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윤 대통령은 올해 11월 말부터 구체적으로 비상계엄 실행 계획을 세웠다. 김 전 장관은 지난달 24일부터~이달 1일까지 자신의 공관 등에서 2017년 3월 박근혜 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가 주도로 만든 계엄령 문건과 과거 비상계엄 포고령 등을 참고해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다. 계엄 사흘 전인 지난달 30일엔 김 전 장관은 자신의 공관에서 여 사령관에게 “계엄령을 발령해서 국회를 확보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 자료를 확보해서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이틀 전엔 김 전 장관에게 병력 동원 상황을 묻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관저에서 김 전 장관에게 “지금 비상계엄을 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냐, 계엄을 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김 전 장관은 “소수만 출동한다면 특전사 및 수방사 3000~5000명 정도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리 준비한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윤 대통령은 포고령 중 ‘야간 통행금지’ 부분만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검찰 특수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계엄 모의를 최초로 시작한 시기에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의 계엄 발언이) 확인된 부분을 나열하다 보니 3월에 이른 것”, “지난해 상황 등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구상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수도 있는 셈이다.
김 전 장관 공소장을 통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명확해지자 김 전 장관 쪽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침을 종합한 결과 보고서를 공소사실로 구성한 픽션”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재판에 앞서 예단을 촉발하고 부족한 증거를 여론선동으로 채우려는 검찰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고 즉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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