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로맨스란 여자들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존재 아닌가요?
*구한말 선교사 제임스 S. 게일의 기록
조선인의 사고방식은 서양 사람들과 달랐다. 사랑보다는 실생활의 쓰임새가 우선이었다. 동양 사람들 사고방식으로는 남녀간에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란 개념 자체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다.
남편은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는데 이것은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에게 아내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한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데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진창 속에 깊이 박힌 채 조상으로부터 후손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로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캐나다인 제임스 S. 게일은 1888년 25세에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1890)을 비롯 심청전, 춘향전 등 40여권의 국영문 저서를 펴냈다. 한국에 온지 불과 7년만에 번역서를 낼 정도로 우리말에 통달했다. 그가 한국인들 속에 살며 한학을 공부하고 10년을 살며 발간한 책의 내용이다.
게일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소개하고 있다. 게일은 일행과 함께 시가지 돌담 옆을 걷다가 돌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마치 땅이 꺼져 버릴 듯이 처절하게 통곡하고 있었다. 이에 게일은 그에게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잠시 동안 게일과 그 일행을 멍하니 보다가 자신이 거기에 남아있게 된 이유를 대강 이야기했다. 사연인즉 아내가 자기를 두고 떠나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 중 한 여자가 “그렇게 슬피 우는 것을 보니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을까!”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정색을 하고 “사랑? 누가 마누라를 사랑한다 그랬소? 하지만 그녀가 내 옷을 짓고 내 음식을 만들지요.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 어이구 어이구” 하면서 더 크게 울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외국인들의 눈에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의 편의물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하멜
하멜은 조선의 인구가 매우 많다고 느꼈다. 남자는 이미 아이를 몇 낳은 아내라도 내보내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있다. 처첩을 몇이라도 거느릴 수 있으며 그래도 남에게 흠 잡히지 않는다. 자기 여인을 여종보다 별로 나을 게 없이 취급한다.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아내를 내보낼 수 있으며 남자가 아이를 원치 않으면 쫓겨난 여자는 그 애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 이 나라에 인구가 그렇게 많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인구가 많지만 남부 지방에서 쌀과 잡곡, 목화가 풍부하게 재배돼 풍년에는 충분히 자급자족한다고 묘사했다.
*헤세 바르텍, 1894년 조선
이른 아침이나 오후 또는 저녁에 비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나는 남자들이 일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집 안이나 집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중국식 파이프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거나 잠을 잤다.
반면에 작고 더럽고 고생 때문에 여윈 여자들은 살림을 도맡으며 요리하고 빨래를 했다. 모든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다. 바로 여기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일수록 문화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조선의 여성들은 짐 싣는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남자들은 이른바 노예를 갖기 위해 여자와 결혼한다.
조선의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심조차도 기울이지 않는 게 분명하다. 조선의 여자들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남자들의 노리개였다가, 나중에는 노예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