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실시된 헌정사상 최초로 유신헌법의 찬반을 물었던 국민 투표, 훗날 무죄를 선고받은 이른바 ‘인민혁명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 집행(4월), 5월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이 그해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위기상황이었다.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한 충격이 나타나면서 물가가 급등하면서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면서 벌인 일련의 범죄(?)들이 연예인 대마초 사건으로 다묻혀버린 것이다. 총칼로 국민을 짓누르던 정권이 배운 건 연예인들을 앞세운 사건을 정권의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대마초 사건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강성발언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내부의 국민정신 속의 녹슨 것을 벗기는 것”이라면서 “대마초·마리화나 또는 남녀를 분간하기 어려운 머리 모양을 비롯하여 음악·영화·책 속에 나타나기 쉬운 불건전 요인들이 그것”이라고 콕 집어서 언급했다.
이걸 끌고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