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튭 링크는 이거고 방송국 pd님이라는데 본인도 취미로 피아노 치시는 클잘알 클덬후이신 듯
마음에 와닿는 멘트 받아적다가 영상 아직 못 본 덬들 있을 거 같아서 일부만 텍스트로 공유해본다
당연하지만 전문 아니고 후반부에서 특히 와닿은 내용만 발췌한 거니 다소 길어도 풀영상 보는 걸 추천함
난 이 분이 ‘비평’이나 ‘평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조금 더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하신다는 첫 마디부터 연주가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너무 좋더라
———————-
임윤찬이라는 음악가를 조금 더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창의적인 해석과 아이디어 때문에 임윤찬의 팬이 된 부분이 큽니다. 요즘 이런 걸 감행하는 피아니스트가 누차 말씀 드리지만 진짜 잘 없거든요.
이미 베토벤의 바가텔들을 신중하게 오랫동안 공부해온 임윤찬이기에 이 25번째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에서도 그는 그 퇴색, 변색이 될 대로 된 레퍼토리에 어떤 불멸의 가치가 여전히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닳고 닳은 곡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쇼팽 녹턴 2번을 앵콜로 연주해도 또 신선하게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더군요.
이런 지점들이 임윤찬에게서 바로크 레퍼토리로 확장되면 더 재밌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임윤찬은 일단 전체적으로 완결도가 높은 연주의 이상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재미있는 파격들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그가 앵콜로 연주한 바하의 <플륫 소나타 시실리엔느>를 들어보면 도돌이표 반복할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음이 끼어든 것처럼 중음역대(내성부)를 도드라지게 들리게 하거나 혹은 악보에 없는 갑작스런 스타카토를 구사한다든지 해서 관객이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임윤찬의 파격의 재미는 오히려 바하처럼 정격화 된 음악에서 더 쉽고 뚜렷하게 들려옵니다. 네모반듯한 격자무늬에 그려진 자유로운 곡선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그의 용기를 통해 바하가 얼마나 낭만적인 멜로디를 쓴 사람이었는지를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가치 있는 경험도 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죠.
호로비츠가 말년에 남긴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그건 “결국 모든 음악의 이상향은‘노래’에 있다“였습니다. 모든 기악 연주자들도 결국 그 평생을 걸친 악기 연마의 궁극에는 ‘노래’라는 목표점에 수렴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가끔 너무 기계적인 비루투오소를 과시하는 몇몇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게 왜 그렇게 공허하고 경박해보이는지 호로비츠의 말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듯합니다. (……) 그냥 피아노 잘치는 사람과 레전드의 간극은 이런지점에서 생기는 것이겠죠.
임윤찬의 앵콜 무대들은 그가 뛰어난 멜로디를 뽑아내는 ‘가수’로서의 역량이 태생적으로 탑재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순간이라서 더욱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점은 솔직히 아주 열심히 연습한다고 얻어지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많아도 레전드는 가물에 콩나듯 나오는 것일 겁니다.
그냥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친다고만 해서 이렇게 삽시간에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그의 연주에서 은연 중 사람의 목소리로 울려나오는 호소력 짙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지점은 클알못인 사람들에게 조차 직감적으로 어필이 되었을 것입니다.